[Opinion] 이토록 찌질한, 그러나 밉지 않은 [영화]

내 삶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그녀들
글 입력 2022.09.1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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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만화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다양한 만화를 봤지만 가장 좋아했던 건 역시 성장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소년, 소녀 만화였다. 어떤 난관이 닥쳐도 씩씩하게 문제를 해결하며 회차를 거듭할수록 완성되어가는 주인공은 지금도 당연한 공식 중 하나다.

 

그러나 현실은 만화가 아니다. 고꾸라질 듯하지만 끝내 모든 걸 이겨내는 만화 속 주인공들과 달리 나를 비롯한 현실의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실패를 겪고 좌절감, 수치심에 허우적대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 어른들의 성장이란 소년만화에 나오는 용감한 소년, 소녀들과는 다르다. 찌질하고 답답하고 무모하기 마련이다. 영화 <프란시스 하>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그런 어른들의 현실 성장 스토리를 그려내고 있다. 이루지 못할 꿈에 대한 지독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프란시스와 불분명한 욕망을 쫓아 끊임없이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율리에는 어딘가 닮아 있다.

 

일단 둘 다 어지간히도 찌질한 캐릭터라는 점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 사이의 프란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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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 프란시스는 어렸을 때부터 쭉 무용을 하고 있다. 세계적인 무용수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있지만 스물일곱이 되도록 여전히 연습생에 불과하다. 작가를 꿈꾸는 친구 소피와 브루클린의 작은방에서 함께 미래를 그리며 즐거워했던 프란시스. 그러나 소피가 이사를 하고 약혼을 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멀어진다. 그리고 이때부터 프란시스에게 진짜 현실과 맞서야 할 때가 찾아온다.


어느덧 서른이 성큼 다가온 프란시스의 반짝반짝 빛나던 꿈은 기약 없는 미련이 되고 무용단에서는 크리스마스 공연을 함께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는다. 비싼 뉴욕의 월세로 경제난에 허덕이고 사랑보다 중요했던 소피는 자신을 떠나고 직장까지 사실상 잃게 된 프란시스. 그녀가 가장 애처로워 보였던 순간은 같은 극단의 전속 무용수인 레이첼의 집에 갔을 때다. 누군가 프란시스에게 어떤 일을 하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설명하기 복잡해요. 진짜로 하고 있진 않거든요.”

 

무용을 하고 있지 않는 무용수. 그게 당장의 프란시스가 처한 상황이다. 곧이어 자신의 처지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늘어놓는 프란시스를 보고 있자니 나까지 부끄러워지는 기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프란시스는 그 자리에서 소피가 남자친구와 함께 일본으로 가게 된다는 소식까지 전해 듣는다.

 

프란시스에게 소피는 그가 질척이며 버리지 못하는 꿈과 비슷하다. 대학시절부터 함께 지내며 미래에도 같이 있을 것이라 믿었던 관계. 프란시스가 자신이 원한다고 말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어도 둘만 아는 비밀스러운 세계를 공유하는” 그런 관계. 세계적인 무용수라는 꿈도 친구 소피도 자신에게 그런 운명적 존재일 것이라 믿어 왔던 프란시스는 점점 더 그것이 이상일뿐이었다는 아픈 사실을 마주해 나간다.

 

 

 

실체 없는 욕망에 자꾸만 뛰어드는 최악의 인간, 율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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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이 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는 없다.'라는. 그러나 율리에는 이런 말이 우습다는 듯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충동적으로 실행하는 즉흥적인 인물이다.

 

의대에 진학했던 율리에는 진짜 의학을 배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의대가 점수 컷이 제일 높아 자신의 성적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의대에서 인간의 몸을 다루며 마치 목수가 된 것 같다던 율리에는 정신이 진짜 관심 있는 것이라며 심리학을 배운다. 또 이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사진이라며 포토 그래퍼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렇듯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 율리에는 끊임없이 방황한다.


스물아홉, 서른을 목전에 둔 율리에는 관계에 대해서도 실체 없는 욕망에 휘둘린다. 그녀는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악셀이란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여전히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율리에와 중년의 성공한 만화가 악셀은 각자 인생의 다른 페이즈를 지날 때 만났다. 당연하게도 둘은 갈등에 부딪히게 된다.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악셀과 아직 정해지지 않은 자신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율리에, 이미 직업적으로 성공한 악셀과 그 옆에서 자꾸만 초라해지는 율리에는 관계 안에서 끝내 양립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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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결국 율리에는 악셀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그와 이별을 택한다. 악셀과 헤어지고 율리에가 만난 사람은 에이빈드라는 남자. 악셀의 출판 기념행사에서 그와 자신을 비교하며 위축된 율리에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모르는 사람들의 피로연에 슬쩍 참석한다.

 

그곳에서 만난 이가 바로 에이빈드다.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서로 연인이 있음을 밝히고 바람 아닌 바람을 피운다. 예를 들면 키스는 하지 않지만 상대가 피우던 담배 연기를 흡입하거나 섹스는 하지 않지만 서로의 소변보는 모습을 지켜본다던가 하는 등이다. 결국 악셀과 헤어진 율리에는 에이빈드에게로 향하며 흐르던 시간도 멈춘 듯이 느껴질 만큼 환상적이고 흥분 넘치는 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에이빈드와도 영원하지는 못했다. 언제나 다정하지만 문학을 좋아하지 않는 에이빈드와는 악셀과 했던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우연히 자신의 글을 본 에이빈드가 한 칭찬에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율리에는 악셀이 그의 글을 칭찬했을 때와 사뭇 달랐다. 강렬한 끌림에 충동적으로 시작된 관계는 악셀과의 관계가 주던 신뢰와 안정감을 주지 못 했던 것이다. 결국 율리에는 에이빈드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유산하게 되고 둘의 관계도 끝을 맺는다.

 

 

 

불완전한 모양으로 완성한 성장 이야기


 

꿈과 우정이라는 이상에 갇힌 프란시스와 진로도 사랑도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율리에. 답답하기도 하고 찌질해 보이기도 한 두 사람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한편으로 공감하게 된다. 이는 누구에게나 현실의 밑바닥을 지나야 하는 때가 오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두 사람의 행동은 모두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발버둥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주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수많은 어른들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프란시스와 율리에를 미워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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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는 되지 못했지만 안무가가 된 프란시스는 자신의 이름으로 작은 공연도 올린다. 애증 같았던 소피도 공연에 초대해 서로 마주 보며 웃는다. 영화의 마지막, 프란시스는 혼자 살게 된 집의 우편함에 자신의 이름표를 끼우는데 길이가 맞지 않아 뒷부분을 접어 넣는다. 구겨진 이름표가 끼워진 우편함은 성장한 프란시스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낙관적 이상만을 좇던 그는 마침내 현실에 맞추어 자신을 유연하게 접을 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럼에도 프란시스는 자기다움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춤춘다. 그곳이 무대 아래일지라도 말이다.

 

작가가 되려던 율리에는 결국 영화 촬영장의 스틸컷 포토그래퍼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신인 배우는 자신이 잘 못하는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린다. 마치 이도 저도 끝까지 제대로 해내지 못해 좌절했던 과거의 율리에처럼. 별다른 말없이 그 감정을 그대로 사진에 담아낸 율리에는 집으로 돌아와 신인 배우의 사진 작업을 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자신의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조차 설명하지 못하던 율리에가 자신이 거쳐온 시기를 지나는 타인의 감정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악셀도, 에이빈드도, 가족도 없는 공간에서 홀로 일하는 율리에는 어딘가 이전보다 편안해 보였다. 아마 율리에는 이후로도 끝없이 자신을 탐구하고 욕망을 좇아 행동할 것이다.

 

그러나 성장한 그는 분명 전보다 더욱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최악의 인간이 될지언정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율리에는 최고가 될 자격이 충분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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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도 율리에도 마지막에는 웃으며 영화가 끝난다. 두 사람의 미소는 원하던 바를 마침내 성취하고 짓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과 현실을 받아들인 뒤 얻은 안정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대단한 성공을 거둔 영웅적 신화는 아니더라도 두 여자의 이야기는 사랑스럽다.

 

결점투성이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주인공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약간의 타협은 하더라도 말이다. 비록 상처받고 최악으로 전락하더라도 온몸으로 부딪쳐 성장해 나가는 현실의 모든 프란시스와 율리에에게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친다.

 

 

[이혜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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