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른도 아이도 아닌 애매한 그 무언가 [영화]

글 입력 2022.09.01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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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지만 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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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으로 성인이 되고도, 많은 생일을 보낸 나는 사회적으로 완연한 어른이다. 이제 어리다는 이유로 용인되는 것은 없고,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어른'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어색하다. 한 것이라곤 나이를 먹은 것뿐인데, 내가 어른이라니. 사회적 기준과 별개로 나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스스로 어른이라고 말할 자신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어른'이란 첫째 사랑하고 있으며, 둘째 사랑하는 것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어릴 때는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또 달랐다. 그렇다고 어린아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머리는 커질 대로 커져 버렸다. 나는 어른도 아닌 아이도 아닌 '어른 아이'였다. 아는 것은 많아졌지만 마음은 연약한, 어른과 아이의 혼종. 어른 아이.


'어른 아이'가 서글픈 점은 어릴 때 가졌던 환상은 다 잃어버리고 현실의 팍팍함만 알아버려, 힘든 것을 견디며 뭔가를 이뤄야겠다는 용기와 열정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용기와 열정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간절함과 절박함이 없어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이 덜하기에 오히려 좋은 것이 아닌가도 싶었다. 하지만 최근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을 연달아 보면서 내면의 변화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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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원래 무거운 거야.'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대사 중 하나였다. 하울이 잃어버린 심장을 되찾은 후 몸이 무겁다고 하자, 소피가 당황스러워하는 하울에게 건넨 말이다. 그의 작품들을 보고 난 뒤 하울처럼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마음은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나보다 어린아이들이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어른의 기준에 더 부합했다. 그들은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끝내 사랑을 지켜냈다.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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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은 은빛 머리칼을 가진 '소피'를 사랑했으며(하울의 움직이는 성), '키키'는 좋은 마녀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을 사랑했다(마녀 배달부 키키). '치히로'는 낯선 세계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도와준 '하쿠'를 사랑했으며(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시타'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평화'를, '파즈'는 라퓨타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던 아빠의 못다 한 꿈을 사랑했다(천공의 성 라퓨타).


물론 그들의 사랑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순수한 마음은 악한 개인 혹은 이기적인 집단, 부조리한 사회에 의해 간섭받고 방해받기 때문이다. '하울'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는 전쟁을 겪어야 했으며, '키키'는 마녀를 아니꼽게 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치히로'는 강력한 마법으로 누구든 무력하게 만드는 마법사를 대치해야 했으며, '시타'와 '파즈'는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아이를 위협하는 어른들로부터 살아남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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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맞서야 하는 대상보다 어리고 연약했지만, 사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세상과의 싸움에서 수반되는 고난과 역경, 예상되는 수고로움과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으며 부족하더라도 그 일들을 차근차근히 해낸다.

 

'하울'은 전쟁을 멈추기 위해 밖으로 나섰고, '키키'는 빵집에서 배달일을 하며 마을 사람들을 돕고 소중한 인연을 만들어 간다. '치히로'는 다들 꺼리는 오물신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도와 결국 하쿠를 살려낼 약을 선물 받는다. '시타'와 '파즈'는 라퓨타에 가기 위해 해적선에서 고된 일을 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힘들게 찾은 라퓨타의 성을 인류의 평화를 위해 망설임 없이 무너뜨린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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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사랑하는 것을 위해 모험을 강행했고, 서툴고 미약했지만 끝내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냈다. 나는 어떤가. 사랑만을 위해 모험을 시도하기에는 늦은 나이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지금 나이에 남들에게 부족한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냐며 잘하는 것만 찾아다녔다. 그래서 나는 얼마나 사랑과 멀어진 것일까.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용기가 부족해서 사랑과 멀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한 시간이 오래였고,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지키려 고생하면서 얻은 것은 그다지 보람되지 않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용기도 없었지만, 솔직하지도 못했고, 비겁하기만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사랑과 열정에 빛나는 눈동자는 아름다웠고, 고통의 대가로 얻은 것들은 가치 있었다. 영화 속 그들의 시간은 지루할 만큼 잔잔했던 내 마음에 벅찬 감동을 주었다. 훗날 나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만큼 감격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영영 크지 않은 어른으로 남아있을지,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지 선택을 내려야 했다.


고민에 잠 못 이루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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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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