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당신, 지금 낭만하신가요 -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

불안하고 막막한 시대를 건너고 있는 당신에게.
글 입력 2022.08.2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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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로애락애오욕에서부터 자유로운 삶을 향한 갈망, 아름다운 것에 대한 매혹, 인생의 무상함과 회한을 극복하고 싶은 심정 그리고 자연에 대한 동경까지..., 이 섬세하고 다양한 감정들은 오직 인간만이 느끼고 추구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저는 이 감정들을 오롯이 향유할 줄 아는 삶을 '낭만적인 삶'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기계가 인간의 능력을 따라잡는 시절이 온다고 해도,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 삶에 부여된 낭만성을 놓치지 않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 <프롤로그. 낭만이 필요합니다> 중에서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

_김성중

 

 

낭만을잊은그대에게_표지(띠지버전).jpg

 

 

[PRESS]

당신, 지금 낭만하신가요

 

 

평범한 하루다. 고로 이 글로 다른 시공간에서 마주한 당신에게 건네는 평범한 질문 하나, "오늘 어떤 하루를 사셨는지요." 아쉽게도 당장 대답을 주고받을 수가 없으니 나의 대답이라도 남겨보겠다. 필자는 평소처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주어진 시간에 일을 했다. 집에 돌아온 피곤한 저녁엔 밀린 집안일을 하다가 어영부영 밥을 먹고 마감을 위해 자리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특별히 덧붙일 만한 얘깃거리가 없는 무난한 하루다. 하지만 마냥 그렇지도 않았다. 은은하게 계속 되새기던 기억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혼자 다녀온 바다가 그 주인공이다.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며칠을 머무른 덕에 처음으로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를 하루 종일 지켜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새벽 바다가 말이다, 얼마나 신비로운지 아는가. 지평선마저 사라진 자정의 암흑 속에서 어선의 섬광이 번뜩이는 순간의 묘한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느꼈다. 선명한 빛은 정말로 네 변이 가운데로 곱게 휘어진 마름모 모양이란 것도 목격했다. 새벽 4시 즈음에는 더 많은 어선들이 까만 허공 위를 여러 모양의 섬광으로 비춘다. 빛과 어둠이 선명하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자니 꼭 우주를 보는 것 같아서 잠잘 시간을 미뤄두고 멍하니 창밖을 응시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요약하자면 몇 없는 고요한 순간의 아름다움이었다고 서술하고 싶다.

 

그렇다고 그 시간과 기억이 내 삶에 아주 대단한 변화를 준 건 아니다. 다만, 무어랄까 잔향처럼 내면 어딘가를 맴돌기 시작한 이 기억은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 아늑한 기류를 불어 넣어주었다. 그런 순간이 안겨주는 정서가 유독 짙은 사람이 나라고 소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재질의 순간에서 비롯된 감정에 깊은 인상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워즈워스는 시인이 "고요함에서 회상되는 감정"으로부터 시를 쓴다고 말했다. 과거의 경험을 지금 여기에서 생생히 회상하려면 주변은 아무런 자극 없이 고요해야 한다. 시인은 홀로 적요한 상태가 되었을 때 솟아오르는 감정을 비로소 시로 쓸 수 있다. 워즈워스는 그것을 "고독의 기쁨"이라고 표현했다. 수선화를 목격했을 당시에는 그 기쁨이 지속되리라는 사실을 몰랐지만, 시인이 경험한 인상적인 장면은 "마음의 눈"에 계속 남아 있어 시간이 흐른 후에도 시인에게 큰 희열을 건넨다.

 

- <고독이 주는 기쁨> 중에서

 


누구나 추억을 떠올리며 그날의 감정을 다시 선명히 느끼는 순간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어엿한 사람으로서 어떤 것을 바라보는 순간과 되뇌는 순간에 선연히 느끼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인용구 속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의 말을 빌리자면 필자는 혼자 남은 때에 바다를 두고 "고독의 기쁨"을 느끼고, 그런 순간에 마음이 기울어지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오늘 리뷰할 책의 주인공 단어를 끌어오자면, 필자는 이런 낭만을 지닌 사람이다.

 

도서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는 현시대를 성찰하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낭만적 삶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얼핏 보기엔 낭만이란 단어가 겉치레에 불과한 허황된 꿈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 속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낭만이야말로 사람다운 삶을 영위해온 불변의 가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낭만을 찾아가는 여정의 길잡이는 19세기 유럽을 살았던 낭만주의 시인들이다. 산업혁명과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이성을 가치의 중심으로 두고, 과학 기술을 따라 빠른 속도로 거듭되는 혁신 속에서 인간성이 뒤처지던 시대에 피어난 예술, 낭만주의. 19세기 유럽의 초상은 지금 우리 시대에 오버랩 된다. 빠른 변화가 충분히 성찰되기도 전에 거듭되는 시대, '팩트'만을 맹신하는 시대, 타인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한 유행과 물질적인 욕망을 추구하는 시대 말이다.

 

 

영상이 지배하는 시대로 나아갈수록, 글자로부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섬세한 감수성은 점점 더 무뎌지게 된다. 감수성은 영국 낭만주의에서도 핵심적인 개념이다. 최근 '레트로', '복고풍'이라고 해서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낭만'이라는 단어가 자본주의 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성을 가진 가치로만 소비될 뿐, 정작 현실에서 감수성을 가지고 자기만의 낭만을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가는 것 같다.

 

- <영상의 시대, 낭만의 위기> 중에서

 

 

19세기 유럽을 돌아보며 현재를 예리하게 성찰하는 저자는, 그처럼 감정이 메마른 시대에 피어난 낭만주의를 소개한다. 낭만주의 시에 담긴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 후에, 당대 시인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낭만의 여러 모습을 살펴본다. 어린 시절의 순수함, 어른의 경험, 수동적 삶이 관조할 수 있는 순간, 사랑, 자유, 자연, 고독, 아름다움 등 여러 주제들이 시와 함께 이어진다.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가 선사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 있다면, 바로 천천히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문장의 의미를 나와 작품의 속도에 맞춰 하나하나 음미하기란 쉽지 않은 요즘에는 왠지 귀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시의 주제는 무엇인지, 구절과 어휘에 담긴 예술가의 이유는 무엇인지, 무엇보다 작품이 지금 우리 삶에 무엇을 일러주는지 살펴본다. 낭만주의 시를 길잡이 삼아, 원석을 매만지며 제 빛깔을 찾아가듯이 우리가 잊었던 낭만의 가치를 차근차근 발견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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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의미를 잘 헤아릴 수 있도록

시의 원어와 번역을 모두 실은 세심함.

 

 

필자가 이 도서를 통해 얻은 가장 큰 통찰은 '낭만' 그 자체였다. 그 단어가 가진 무게와 의미. 낭만은 마냥 아름다운 순간이나, 환상, 이뤄보고 싶은 꿈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라는 한 사람으로서 나를 헤아리고 주변을 관조할 때 비로소 느끼는 기쁨과 아름다움, 온몸의 감각이 생동하는 사람의 순간에 관한 것이었다. 타의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감정에게 솔직하게 귀를 기울이고, 때론 가만히 흘러들어오는 것들을 나의 감수성으로 받아들이며 존재하는 삶의 면면들에 대한 성찰. 그러기에 낭만은 곧 내가 오롯이 존재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도 했다.


 

채스터턴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어떤 법칙을 찾아 필연성을 부여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가령, 동화에서 한 마녀가 '나팔을 불면 도깨비의 성이 무너질 것이다"라고 말할 때는 '나팔을 부는 것'과 '성이 무너지는 것' 사이의 필연성을 따지지 않지만, "사과나무를 치면 사과가 떨어질 것이다"라는 말에서 과학자는 필연성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필연성이 없기란 마찬가지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 <자연의 모든 생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중에서

 

 

책을 읽으며 고독이란 주제와 더불어 필자가 인상 깊게 읽은 것은 낭만주의 시인들의 자연관이었다. 자연적인 현상을 반복되는 원칙으로 명명하지 않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 신비로운 존재이자 사람과 교류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

 

어찌 보면 과학은 인간 중심의 사고로 자연을 보고, 반복되는 현상이라 여겨지는 것을 묶어서 원칙으로 정리한 것이다. 오늘 뜨는 해가 내일도 뜨는 건 분명 필연이고 사실이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오늘의 해와 내일의 해가 떠오르는 순간은 각각의 존재들에게 매번 다르게 다가간다. 떠오른 해를 목격한 시간, 그때 떠올린 감정, 눈에 밟힌 색채와 주변의 온도 등 주변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엮여 이루어진 순간을 어찌 매번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법칙에서 벗어나 존재 대 존재로 자연을 마주하면 신비로운 것도 많아지고, 인식할 수 있는 감정과 감각들도 많아진다. 채스터턴의 말처럼 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것 마법이고,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도 마법이고, 석양의 아름다운 모습도 마법이 된다. 단지 필연성에 가두기엔 미세하고도 숭고한 호흡을 무수히 엮어내어 만든 순간과 감정을 매번 새롭게 선사해온 자연은 과연 홀로 남은 이와 형언할 수 없는 범위의 대화를 할 수 있는 존재다.

 

필자의 생각은 이 즈음에서 다시 고독의 기쁨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자연스러운 순간에 나만이 남을 때 펼쳐지는 세상이 얼마나 다채로워질 수 있는가,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목소리에 의하면 분명 우리의 기대보다 더 많은 감각과 아름다움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낭만은 내가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순간의 가치와 아름다움에 대한 것이 아닐까.  적어도 필자의 삶에서 낭만은 그러한 것으로 자리 잡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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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혹은 낭만주의는 역사 저편의 철 지난 생각이 아니다. 낭만은 생각보다 우리 삶 가까이에 늘 존재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문득 귀에 익은 옛 노랫소리를 들었을 때, 자신이 경험했던 지나간 일들을 마치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시절이 사무치도록 그리운 적이 있다면 당신은 분명 낭만적인 사람일 것이다. 워즈워스의 기준에 따르면 그런 감성을 가진 당신은 바로 시인이다.

 

- <낭만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중에서

  

 

사람의 가장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이야기. 사람의 영혼이 비로소 추구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내면의 빛을 찾는 성찰이자 여정. 나다운 존재 방식으로 가지는 고요한 휴식이자 안온함. 필자가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를 읽으며 메모했던 낭만에 대한 생각들이다. 이 생각을 다시 하나로 묶어보자면, 나로서 완연히 존재할 수 있는 관점과 성찰에 대한 것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곳곳에서 쏟아지는 온갖 자극으로 나를 잃기 쉬운 세상에서 이러한 낭만적 순간은 분명 우리 삶에 필요하다. 그러기에 『낭만을 잊은 그대에게』는 우리가 잊고 있던 나의 내면과 삶의 가치를 다시금 불러오는 도서이기도 하다.

 

그 어느 때보다 나를 알고 정의하고 싶어 하는 시대, '나'이기에 지닌 정서로부터 일어나는 낭만을 모른다는 건 생각보다 더 안타까운 모순일지도 모른다. 미처 고개를 내밀지 못했을 마음속의 낭만에 귀를 기울여보고 싶다면, 피로한 말들에서 벗어나 시와 함께 삶을 성찰하고 싶다면 펼쳐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타인의 말과 요구되는 유행이 아닌, 그저 나의 생각과 감정을 따라 살고 싶은 마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리뷰의 마지막은 도서에 실린 질문으로 갈무리하고 싶다. 당신, 지금 낭만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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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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