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절제된 상실을 노래하다 - 뮤지컬 피에타 [공연]

글 입력 2024.03.2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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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피에타>는 인간의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사회의 부조리, 사회 구조의 악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는데, 공연은 사회적 살인을 당한 자식을 둔 어머니의 절규를 생생하게 보도한다. 뮤지컬 <영웅>, <라 레볼뤼시옹>의 배우 김사라가 원 캐스트로 출연해 무대를 꾸민다.

 

극은 총 다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엄마의 봄, 봄나들이, 해방의 그날, 뒤엉킨 실타래, 아들의 죽음. 1장 2장에서는 장의 제목처럼 향긋하고 산뜻한 분위기로 아기와 엄마 마리아의 모습이, 3장부터 5장까지는 그와 상반된 분위기가 연출된다. 로마의 탄압에 저항하며 해방할 날을 꿈꾸던 마리아는 옳은 길을 가려는 아들이 제압당하자 두려움이 엄습하고, 결국 아들이 형벌을 받게 되자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사로잡히게 된다.

 

배우의 역할이 마리아인 점, 그리고 뮤지컬의 시대적 배경으로 보이지 않는 아기는 ‘예수’다. 그리고 극은 어머니의 입장에서 아들을 바라보는 시점을 시간 순서대로 차근차근 나열한다. 자라는 과정, 추방되어 십자가에서 맞이하는 예수의 죽음, 상실감과 무력감에 휩싸인 마리아의 절규까지.

 


피에타1.png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헤아릴 수 있을까? 그 크기와 무게를 관람하며 살포시 느껴볼 수 있었다. 가장 극적인 표현으로 연출됐던 때는 다름 아닌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못으로 박혔을 때였다. 그 상황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야 했던 마리아는 심한 고통에 절규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땅. 땅. 땅. 가장 잔인한 못질 소리가 예수에게 사정없이 꽂히자, 무대 가운데에 선 마리아에게도 붉은색과 하얀색 조명이 빠른 템포로 번갈아가며 가득 내리쬔다. 번쩍이는 정신적 충격이 하얀색 조명으로, 또 마리아 마음에 대신 못질하는 듯한 빨간색 조명은 그녀를 통과해 그대로 관객에게 투영된다. 그러자 나조차도 가슴의 아림을 느꼈다.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는다.”라는 표현이 순간 생각나더니 그제야 한 뼘 더 낯설게 마리아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모노드라마 형식



뮤지컬 <피에타>의 연출처럼, 배우 홀로 무대를 가득 채우는 연출 방법을 ‘모노드라마’라고 부른다. 화려한 캐릭터, 조명과 음악, 그리고 연출로 볼거리가 풍부한 뮤지컬은 그 다채로움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반면, 18세기에 독일에서 J. 브란데스에 의하여 유행한 모노드라마는 하나를 뜻하는 모노(mono)로 알 수 있듯, 미니멀한 매력이 있다. 가장 단편적이고 꾸밈을 줄인 무대 연출 방식이기 때문인데 어떤 예술 장르들보다 풍성한 표현이 가능하다.

 

이 반전 매력의 중심에는 관객이 있다. 주인공과 배경, 소품 등이 한정적인 만큼, 공연은 관객의 집중도를 쉽게 높이고 빠르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마리아’ 역을 맡은 배우가 등장할 때부터 모든 시선과 집중은 그에게로 향한다. 이어서 마리아가 처음 자신의 아기를 소개할 때, 사뿐거리는 발걸음으로 봄나들이에 나설 때, 꽃같은 넘버를 부르며 나비가 되어 춤출 때. 극을 지켜보던 관객들은 마리아와 배우에게 이입하게 된다. 더 나아가 그녀가 사랑하는 아기를 함께 지켜보며 사랑하는 마음을 닮아가는 ‘동화’의 과정을 거친다.

 

모노드라마 방식과 함께 ‘마임’처럼 뮤지컬이 진행된다는 점도 독특하다. 보이지 않는 벽을 더듬어 방향을 찾아가는 흔한 마임같이 마리아는 보이지 않는 화덕에서 빵을 꺼낸다. 또 등장하지 않는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잡기도 한다. 하지만 관객은 '없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앞서 말한 집중, 그리고 동화와 함께, 배우와 관객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뜨거운 빵을 관객에게 호호 불며 건네기도 하고, 극 중 아이의 손을 끌어 특정 관객과 악수하도록 한다. 이로써 공연은 더더욱 충만해진다. 관객들이 제각각 상상하는 빵의 이미지, 아기의 이미지를 모아보면 작은 소극장이 한가득 들어찬다.

 

2022년 발표된 ‘모노드라마 연기법 연구(김현희)’에 의하면, 기독교의 서사는 오랫동안 남성 중심의 신학, 해석학, 예술로 표현되어 왔다. 또 예수의 이야기를 ‘신’의 이야기로 표현하며 인간이 쉽게 닿을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뮤지컬 <피에타>는 마리아의 시선에서, 신이 아닌 ‘인간’의 이야기로서 극을 연출했다. 이로써 이야기가 종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관객과 소통하며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점 또한 도드라진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


 

이런 특성은 과거로 거슬러가 만난 ‘르네상스 시대’ 이상과 닮아있다. 인간의 아름다움과 신에 대한 존경으로 이루어진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 사상을 담은 빼어난 예술가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중에는 ‘미켈란젤로’도 있다. 그는 1475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조각가이자 화가로 활동했다. 천재라는 단어의 정의는 미켈란젤로에게서 찾으라는 말이 있듯, 그는 예술적으로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천지창조>와 벽화 <최후의 심판>을 그렸을 뿐만 아니라 다비드상과 같은 유명한 작품을 조각하기도 했다.

 

그의 조각 작품에는 뮤지컬과 동명의 작품인 <피에타>도 있다. 다비드상과 뿔난 모세상과 함께 3대 조각으로 불리는 피에타상은, 이미 예술성을 인정받은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리아와 예수의 관계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국가에서 그림과 조각으로 표현되어 온 주제다. 하지만 그의 작품에는 더더욱 눈여겨봐야할 점이 있다.

 


피에타2.jpg

 

 

먼저 마리아의 표정이다. 독일에서 조각된 작품은, 나무로 제작되어 거친 질감이 드러난다. 또 작품에서는 마리아의 표정, 예수의 표정이 특히 입체적이다. 그렇기에 ‘피에타’의 뜻이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그렇지 않다. 매끈한 대리석 광택이 감도는 마리아와 예수의 표정은 평온하고 잔잔하다. 엄청난 슬픔을 겪은 후 초연한 모습처럼 보인다. 이처럼 감정을 오히려 덜어내며 그 감정을 극대화하는 기법은 마찬가지로 뮤지컬 <피에타>에서도 볼 수 있다.

 

마리아가 십자가의 예수를 보며 절규하던 한 대목에 집중해보고 싶다. 성악과 출신의 배우가 무대에서 관객에게 보여줬던 성량은 실로 대단했다. 다른 배우들의 사운드가 필요 없을 정도로 극장 하나를 가득 메웠을 정도였다. 그래서 관람 전, 비통함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절규 소리는 가장 높은 목소리로, 가장 높은 데시벨로 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뮤지컬 속 마리아는 입 모양을 크게 만들고 말 뿐, 목소리의 데시벨은 아주 작았다. 겨우 마리아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이었다.


하지만 그 울림은 어느 때보다 가장 묵직하게, 심장 깊이 들어왔다. 천천히 마리아에게 동화돼서였을까, 가장 단출하고 절제된 감정으로 가져다준 이 풍성한 울림을, 공연의 클라이맥스에 꺼내 체감해 볼 수 있었다.

 

최소한의 인원과 마임 기법, 그 공간을 채워주는 관객과의 소통. 또 마리아의 평온하면서도 차분한 독백, 휘몰아치는 뮤지컬 넘버 직후 마리아의 조용한 절규. 이 모든 요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관객에게 닿으면, 감정이 파도처럼 철썩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낼 때, 비로소 나 또한 인간임을 자각하고, 한 사람으로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을 보고 사람들은 마리아와 예수 중 도대체 누가 주인공이냐며 추궁했다고 한다. 실제로 처형을 당한 것은 예수이지만 작품을 정면에서 봤을 때는 마리아의 표정만 드러날 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가는 위에서 봤을 때 드러난다. 미켈란젤로는 피에타상을 ‘신을 위한 조각’이라고 칭했는데, 위에서 내려다봤을 때의 시점까지 고려하여 조각을 제작했기 때문이다.

 

뮤지컬 <피에타>를 관람하던 관객들이 줄곧 인간이었다가 ‘신’이 되는 때가 딱 한순간 있다. 바로 마지막 엔딩이다. 마리아는 절규 끝에 예수를 두 손으로 들어 안으며 천천히 고개를 든다. 하늘을 응시한 채로 신을 바라보던 마리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공연은 마무리된다.

 

엔딩 장면에서 모두가 신이 되어 마음의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면, 마리아 하나뿐이지만 그 품에 안겨 조용히 잠든 예수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볼 수 없는 예수와 상실감을 신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뮤지컬 <피에타>의 가장 최종 단계가 아닐까?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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