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닷페이스가 우리에게 남겨준 것들 [문화 전반]

닷페이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글 입력 2022.07.1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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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페이스가 지난 6월 서비스를 종료했다. 처음 닷페이스가 해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미안한 마음부터 들었다.

 

몇 년간 닷페이스 채널을 구독하고 마음속으로는 응원했지만 여유가 생기면 후원해야지라고 하면서 후원을 미루다 결국엔 하지 못했다. 적은 돈이더라도 꾸준히 닷페이스를 후원했더라면 이분들에게 좀 더 힘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7월 3일 '닷페이스의 마지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에는 그동안 닷페이스팀이 어떤 마음으로 영상을 만들어왔는지와 어떤 어려움을 겪고 헤쳐 나갔었는지가 담겨 있다. 이 영상을 보고 나서야 정말 마지막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닷페이스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기 전에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줬던 닷페이스의 시리즈들을 돌아보고자 한다.

 

 

 

드러나지 않았던 성소수자의 삶을 조명하며



닷페이스에서 퀴어 퍼레이드 현장에 직접 들어가서 촬영한 고백 부스 영상을 참 좋아한다.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라며 온라인 퀴어 퍼레이드를 시작했다는 것 또한 닷페이스의 멋진 업적 중 하나이다. 그 외에도 나는 닷페이스를 통해서 성소수자의 삶에 관해 많은 것들을 배웠다.

 

첫번째로, 레즈비언 역사 아카이빙 시리즈다.

 


[크기변환]70대레즈비언.JPG

 

 

총 3편에 걸친 시리즈인데 처음 명동 편을 보고서 중장년 레즈비언의 삶에 대해 막연하게 상상만 하던 부분이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마치 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랑 얘기를 듣는 듯해서 정답기도 했다. 이 시리즈가 좋았던 이유는 60~70대 레즈비언들의 삶의 한 장면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성 간의 결혼이라는 제도가 단단히 박혀있는 사회에서 나이 든 성소수자의 삶은 쉽게 상상할 수 없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가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기록의 중요성을 알고 레즈비언의 삶을 아카이빙 하는 젊은 세대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겨 있어서 좋았다.

 

두번째는 구원자 시리즈다.

 


[크기변환]구원자.JPG

 

 

성소수자 전환 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3편의 시리즈이다. 전환 치료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 당사자와 성소수자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인터뷰도 담겨있다.

 

전환 치료를 한다는 곳에 직접 들어가 취재하기도 했는데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정말 끔찍하다. 동성애를 병으로 생각하고 치료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다시금 알게 됐다.


 

 

장애와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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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올라온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와의 인터뷰 영상이 있고 그로부터 약 4년이 지난 후인 2021년의 인터뷰도 있다. 약 4년간이 지난 시간에도 장애인 인권을 위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출근시간대에 장애인의 이동권을 위한 시위 때문에 지하철 이용이 불편하다는 소식을 기사를 통해 접했다. 시위가 피해를 끼친다고 생각하기 전에 매일매일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 끝나지 않는 이 투쟁의 시기에 닷페이스는 계속 이 이슈를 팔로우했다.

 

닷페이스 유튜브 '장애와 자유' 재생목록에는 장애인의 이동권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탈시설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할 말 많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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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많은 시리즈에서는 간호사, 소방관, 승무원, 라이더, 보조연기자, 직장인, 보육교사, 자퇴생, 퀴어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다양한 직업인들의 고충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여러 명이 나오는 영상일 때 대화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앉아있는 자리 배치까지 조화로워서 시각적인 면에서도 흥미로웠다.

 

노동과 관련된 시리즈로 간호사의 일을 깊게 다룬 '간호사 Life' 시리즈와 '할 말 많은-엄마의 일' 시리즈 역시 좋다.


 

 

세탁소의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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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에 관련된 이야기를 과거 여성들을 벌주는 장소였던 '세탁소'라는 공간에 여성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 신선했다. 유럽 각국의 낙태죄와 관련된 역사를 알아보는 학습적인 면에서 유익했고 여성들이 그동안 낙태와 관련하여 어떠한 억압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는 낙태를 직접 경험했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있어서 한국 내의 낙태는 어땠는지 경험담을 통해 한국의 현실을 알게 됐다.

 

 

 

Here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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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을 통해 미성년자 성매매를 하려는 가해자들을 취재하고 마지막 편에는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와의 인터뷰가 있는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의 좋은 점은 가해자에게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가해자에게 "왜 미성년자 성매매를 하려고 했는지" 묻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미성년자인 피해자에게 책임을 물으며 몰아가는 게 아니라 미성년자들을 궁지에 몰고 가는 가해자의 모습을 취재했다는 점이 좋았다. 가해자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마주칠 법한 사람들이었다.

 

이외에도 디지털 성폭력 관련된 시리즈로 몰카랜드, n번방 시리즈들이 있다.

 

 

 

세상을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바뀌었다.


 

닷페이스는 퀴어, 페미니즘, 디지털 성폭력, 노동, 장애, 환경 등 보이지 않는 사회의 변두리에 있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수면 위로 올리는 일을 했다.

 

닷페이스는 나에게 '믿을 구석'이었다. 상황을 잘 담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문제를 주시하고 따라갔다. 그 후 펀딩 등 실질적인 해결책 또한 만들어 냈다. 쏟아지는 뉴스에 지치고 나 하나 챙기기 바쁘다고 가끔은 잊고 지냈던 문제들을 닷페이스는 끈질기게 따라갔고 영상으로 보여줬다.


닷페이스의 필름메이커 리인규님이 닷페이스의 마지막 영상에서 한 말이 있다.

 

 

"세상을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바뀌었다."

 

 

이 말에 공감한다. 닷페이스를 통해 나는 많이 바뀌었다. 닷페이스의 영상을 보고 그동안 생각해보지 않았던 분야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계속 공부했다. 닷페이스는 해산했지만 그들이 약 24만 명의 구독자들과 영상 시청자들의 마음에 심은 씨앗은 언젠가 반드시 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으로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닷페이스의 자리를 한동안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


 

언젠가는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닷페이스에 채용공고가 뜨면 열심히 자격 사항을 읽어봤었다.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닷페이스의 행보는 멋졌다.

 

닷페이스가 돌아오면 정말 좋겠지만 지금은 그저 고생하셨다는 말만 드리고 싶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사회의 변두리에 있는 이슈들을 계속해서 끄집어냈던 이 매체의 해산이 아쉽고 한동안 빈자리를 많이 느끼게 될 것 같다.


닷페이스 이후 이런 주제를 다루는 뉴미디어는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이런 미디어들이 계속해서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미디어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닷페이스 정말 고마웠습니다!

 

 

 

김선미.jpg

 

 

[김선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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