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착의 때에 보는 유랑의 삶 [영화]

어디서 무얼 하냐고 다그치지 않는 영화
글 입력 2022.07.09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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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길 기다리는 영화 <노매드랜드>



영화가 범람하는 시대에 영화 한 편을 고르는데 신중을 기하는 아이러니를 생각한다. OTT 플랫폼의 영화 리스트를 기웃거리며 줄거리와 감상평을 읽다 이내 포기한다. 영화가 말이 너무 많다. 두 시간 남짓한 러닝타임에 대사와 줄거리와 의미와 감정과 질문을 꾹꾹 욱여넣은 영화는 어쩐지 피로감을 선사한다. 그것을 모두 읽어내야 ‘성공적인’ 영화 관람일 거라는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혹시 이런 부담을 느껴본 사람이 있다면 ‘노매드랜드’가 영화 관람의 짐을 덜어주는 답이 되길 바란다.

 

나는 새로운 곳에 정착하고 있다. 내 조국을 떠나 도착한 곳에 짐을 내려놓고 삶을 꾸려 나가는 중이다. 정착하는 과정은 위장 한 켠이 꽉 막힌 듯하고 썩 통쾌하지 않다. ‘정착’과 ‘유랑’이라는 말을 입으로 뱉어보니 어쩐지 정착은 갑갑하고 유랑은 자유롭게 느껴진다. 갑갑한 정착의 과정에서 외로움을 달래고자 영화를 틀어도 명료한 플롯이 흐릿한 나의 삶과 대비되어 고독감만 더해준다.

 

말없이 내 이야기를 기다리는 영화가 절실했고 아이러니하게 내가 택한 영화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였다. 한 시간 사십 분 동안 나는 유랑이라는 말처럼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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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役)'

 

 

[경제적 붕괴로 도시 전체가 무너진 후 홀로 남겨진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추억이 깃든 도시를 떠나 작은 밴과 함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 위의 세상으로 떠난다. 그 곳에서 ‘펀’은 각자의 사연을 가진 노매드들을 만나게 되고, 광활한 자연과 길 위에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그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다시 살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는데…]


'노매드’인지 ‘노마드’인지 정확한 표기법은 알 수 없으나 길 위를 유랑하는 사람들을 뜻한다는 점에서 누구도 이견을 갖지 않을 거다. 밴이나 트레일러를 타고 미국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노매드의 삶을 그린 영화는 낯설고 기이하기까지 한 생활을 어떠한 미화도 거치지 않은 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 속 유랑자들은 관객에게 빨리 너의 이야기를 하라고,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사유하라고 다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눈썹 칼과 가위로 머리를 깎고, 손에 들어오는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주차할 곳을 찾아 서성이고, 물물교환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플롯의 구분도 분명하지 않으며 기승전결도 명확하지 않다. 서로 지그시 바라보기만 할 뿐, 누구도 끌려 다니지 않는 공평한 관계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어 신선하고 느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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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묻지 않고 기약하지 않는


 

‘노매드랜드’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의 문을 열겠다고 결정한 후, 나는 ‘노매드랜드’와 꼭 닮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내 글을 읽으러 와주는 낯선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거나 그들과 다음을 기약하고 싶지 않았다. ‘나다움’에 대해 생각해 보라 권하거나 풍요와 결핍을 칼로 썬 듯 단정히 나눠 골라보라고 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그냥 나의 글을 쓰느라 여념이 없고 싶다.

 

영화는 포스터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퍽 아끼는 누군가에게서 ‘낭만은 결핍으로 완성되는 의지’라는 말을 들은 후, 몇 달을 곱씹은 후에 꽤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 영화는 낭만적이지 않다. 등장하는 모두가 나름의 필요를 채워 나가고, 그 누구도 결핍된 무언가를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실을 겪었을 뿐, 결핍에 시달리지 않는다.

 

‘노매드랜드’ 이야기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대자연이 얼마나 낭만적인지에 대해 찬사를 늘어놓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영화 속 지나가는 아름다운 미국 자연 풍경이 영화 자체의 미장센을 돋워준다는 건 분명하지만 그게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풍요의 시대, 물질과 부대껴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연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일 거다.

 

자연이 삶이 된 사람에게 그 낭만을 떠드는 것은 우리에게 과학의 대단함을 칭송하는 것만큼이나 지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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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다시 만날 영화


 

영화를 검색하면 ‘길 위에서 다시 만나요’라는 대사를 보게 된다. 무책임한 이 한 마디가 내일의 나에게 견딜 힘을 준다. 모든 것은 길 위에서 만났던 것, 만난 것, 만날 것. 정착과 유랑도 사실 길 위에 있는 과정이다.

 

주기만 다를 뿐 그들도 나도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짐을 풀고 짐을 꾸리는 과정을 백 년쯤 반복하다 잠시 짐을 푼 곳에서 생의 말일을 맞는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날을 맞는다 하더라도, ‘기억되는 한 살아있는 것이다’라는 영화 대사처럼 생전에 나를 사랑했던 누군가는 길 위에서 기억의 모습을 한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이 영화가 피로나 부담은 빼고 위로만 줄 수 있었던 이유도 ‘길 위에서 만난’ 영화이기 때문이리라. 언젠간 ‘노매드랜드’를 볼 사람들에게 감히 제안하자면 서사, 음향, 미장센, 대사, 의미 같은 것들을 파악하지 않아도 좋다. 잔잔하고 쓸쓸한 영화에 잠깐 졸거나 보다가 그만둬도 좋다. 파편으로 남은 영화는 ‘기억’의 모습으로 당신의 길에서 만나게 될 거다.

 

그러니 일상으로 향하는 짐을 바리바리 꾸렸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삶의 짐을 영화에 잠깐 내려 둘 수 있길 바란다.


 

[오영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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