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른 운명을 초래하는 결정적 순간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글 입력 2022.07.0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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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인물을 담는 두 가지의 사각형, 사진과 그림이다. 이것 중, 굳이 선호도를 따져보자면 아주 오래전부터 내 시선은 그림으로 향했다. 그림보다는 빼곡히 채운 팔레트가 좋다는 어느 가수의 취향처럼 나 역시 사진보다는 인공적 물질로 만들어낸 그림이 좋았다.

 

단순히 전시에만 국한된 취향은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것보다는 연필, 붓, 파스텔을 집어 도화지에 문지르는 것이 더 즐거웠다. 물론 만들어진 결과물의 모양새와는 상관없는, 순전히 재미에서 비롯된 행위다.


이유를 묻는다면, 오래도록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라고 답할 것이다. 대상을 종이에 옮기는 일에는 찰나에 그치지 않고 오래 관찰하고 오래 떠올리는 준비과정이 수반된다. 눈 깜짝할 새 놓쳐버리는 순간들에 항상 슬퍼했었기 때문에 그림을 보거나 그리는 것은 아쉬움을 달래기에 꽤 좋은 방법이었다.


이러한 감정의 흐름에는 사진보다 그림에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더 담겨있다는, 성급한 판단이 전제되어있었다.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담아내는 그 짧은 순간에도 셔터를 누르는 이가 오랫동안 품어온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특별전: 결정적 순간’을 통해 늦게나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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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프랑스의 사진가로 그가 찍은 사진은 20세기의 혼란스러웠던 사건들과 그 속에서 살아 숨 쉬었던 사람들을 보여준다.

 

포토 저널리즘의 선구자로 현재까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는 그의 사진들은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이라는 제목을 가진 사진집으로 재구성되었고, 올해로 발행 70주년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2022년 6월 10일부터 10월 2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특별전: 결정적 순간’에서 그의 사진, 카메라와 함께 그의 일생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그의 삶을 정리한 연대기로 시작된다. 첫 사진을 찍은 1926년부터 코트디부아르에 머물렀던 1930년, 프랑스 제3군 영화사진 선전대에 입대하고 독일군에 전쟁포로로 체포되었던 1940년, 국제 보도 사진 작가 그룹인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를 설립했던 1947년, 그리고 그의 첫 번째 사진집 ‘달아나는 이미지/결정적 순간’을 출간한 1952년까지. 앞으로 보게 될 사진으로 남겨진 그의 발자국을 한눈에 담아볼 수 있다.


또한 그의 작품과 함께 만날 수 있는 ‘글’은 이 사진전의 또 다른 관람 포인트이다. 결정적 순간’ 발행을 위해 동료들과 주고받았던 편지와 사진집에 수록된 글은 과거의 순간 앞에 선 현재의 사람들에게 사진을 향한 그의 태도를 온전히 전해준다.

 

카르티에 브레송과 협업했던 미술 평론가이자 편집자인 ‘테리아드’와 출판사 대표인 ‘리차드 사이먼’과의 교류를 담은 편지, 그가 남긴 메모를 자필로 접하는 것은 마치 그들이 지금도 사진에 관한 열띤 토론을 펼치며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반대로 관객들을 1900년대의 한순간으로 끌어당길 수도 있다.


영화 역사가인 조르주 사둘은 카르티에 브레송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프랑스판 제목인 ‘달아나는 이미지들’을 정했다. 아래는 그가 카르티에 브레송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일은 이상한 버릇이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낱말 맞추기를 하듯이 제목과 인용구를 찾아 헤매며 당신을 찾고 있으며(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 자신을 찾고 있으며), 이 일은 제게 일종의 강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찾은 것들을 아래와 같이 결합해봅니다.

 

뜻밖의 선물(Surprise): 위로 튀어 오르는 스프링이 들어 있는 작은 상자, 예상치 못한 물건을 선물하는 뜻밖의 상자라고도 함

 

정신적 쾌락은 놀라움의 쾌락일 뿐.

 

- 1951년 3월 14일 파리, 조르두 사둘이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에게

 

 

‘달아나는 이미지들’은 단속을 피해 달아날 준비를 하는 허가 받지 않은 노점상을 묘사하는 관용적 표현으로, 카르티에 브레송은 자신의 작업 방식과 매우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저마다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라는 인용구에서 파생된 영문판 제목인 ‘결정적 순간’에서도 그가 어떤 태도로 사진을 찍었는지 나타난다. 그는 찰나의 순간에 직감으로 찍었으며 관념보다는 현상에 집중했다. 그리고 결과물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한순간이 그것을 낳고, 한순간이 그것을 소멸시킬 것이다. 하나의 순간이 다른 운명을 초래한다.

 

- 1985년 개정판 서문을 위해 카르티에 브레송이 자필로 쓴 메모, P.코르네유의 Le Cid

 

 

순간은 반드시 소멸한다. 처음부터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것이 그것의 운명이다. 그리고 사라짐으로써 다음 순간을 만들어낸다. 순식간에 소멸하는 순간일지라도, 각각의 순간들은 현재의 운명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인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사진의 일이며, 사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진 속에 담긴 찰나의 순간 속에서 사람들은 자유롭다. 그네를 타는 연인의 곁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웃음 짓는 이의 행복과 왕실의 행렬을 기다리다 잠든 이의 피곤, 가족을 앗아간 이를 향한 분노와 지도자의 죽음을 기리는 슬픔까지. 행복의 저 끝에서부터 슬픔의 저 끝까지 모든 감정이 프레임 안에서 제약 없이 요동친다. 폭염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공감하고 길 위의 사람과 고양이의 대치에 미소 짓기도 한다.


망설임 없이 순간을 찍어낸 사진으로 우리는 경험할 수 없는 과거를 느끼고 현재를 만들어낸 결정적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아마 순간을 가감 없이 그리고 오랫동안 간직하겠다는 사진가의 마음 때문이 아닐까.

 

카르티에 브레송이 직접 적었던 괴테의 파우스트 중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나는 자유로운 땅에서 땅에 자유로운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다

그때 순간을 향해 이렇게 말해도 좋으리라

"멈추어라, 너는 진정 아름답구나"

 

 

[김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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