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의 낙차를 그리는 것 - 우리들의 블루스 [드라마/예능]

<우리들의 블루스> 그리고 추신
글 입력 2022.07.03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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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는 다음 회차가 기대되면서도, 두려운 드라마였다. 가장 일방적인 감정을 조용히 파고드는 그들의 화법이 너무 저릿저릿했다. 마지막 회차는 부러 미루고 미루다가 봤다. 인물들의 잔상이 오래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선택적 과몰입러인 나에게는 치명적인 드라마였다. 그리고 <우리들의 블루스>의 이면에는 내가 그토록 물음표를 던져댔던 <나의 해방일지>가 그림자처럼 있었다.

 

 

 

주말을 맞이하는 법


 

주말 저녁 9시가 되면 가족들이 슬그머니 TV 앞으로 모이던 때가 있었다. 그건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개그콘서트>처럼 세대나 나이 상관없이 다 같이 볼 수 있는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주말을 마무리하고 가족들끼리 얼굴을 마주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다는 걸 실감하면서 축 처진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월요일 등교가 싫은 초등학생이었지만.

 

<우리들의 블루스> 덕에 한동안 가족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TV 앞에 모였다. 저번 주 본방송을 놓쳤다면 회차를 맞추기 위해 주중에 못 본 회차를 봤다. 등장인물들을 변호하기도 하고, 흉을 보기도 했다. 호탕하게 웃고, 때론 침을 꼴깍 삼키며 눈물을 참았다. 일요일에 한 회가 끝나면 월요일이 온다는 걸 실감 나게 하는 드라마였다. 가족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순서대로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곤 다시 약속이라 한 듯 일주일 뒤에 TV 앞으로 모였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세대와 상관없이 누구나 볼 수 있었다. 어떨 땐 코미디가 되고, 다큐멘터리도 되고, 희극이 되기도 했으며 비극이 되기도 했다. 싸이의 <연예인> 속 가사처럼 연기와 노래, 코미디까지 다 되는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 모습이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냥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는 게 우리네 삶일 텐데,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 삶을 온전히 담으려 노력했다. 그것도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서 최대한 다채롭게 말이다. ‘이 중에서 당신이 겪었거나 봤던 사람의 삶 하나쯤은 있을걸요?“

 

그렇다면 조금 정정이 필요할 것 같다. 어린애들은 이 드라마를 좋아하진 않을 것 같다. 적당한 좌절과 불행을 겪고 사람으로부터 실망을 해봐야 이 드라마가 재미겠구나. 어린이들은 아직 그런 쓴맛을 몰라도 되니까. 우리 가족 중 유일한 21세기 출생, 올해 6살이 된 조카 예인양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들의 블루스 좀 그만 봐. 맨날 소리 지르고 싸우기만 하잖아.“

 

그러게, 맨날 싸우기만 하는데 그 모습이 꼭 우리들 같아서 계속 보게 되더라.

 

 

 

여러분들이 잘 살고 있을 것이라 믿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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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마지막 회를 안 보셨다. 내가 보여준다고, 보여준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하셨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보면 울 것 같다고, 못 보겠다고 하셨다. 지레 짐작건대 돌아가신 친할머니 생각이 나셔서 그럴 것이다. 전혀 인연도 관계도 없는 남이지만, 김혜자 선생님의 ‘옥동할망’은 누군가가 그리워하는 할머니 혹은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우리들의 블루스>가 세대와 상관없이 사랑받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나와 스쳤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힘’.

   

인간의 생명력으로 가득 찬 드라마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게 불행이든 행복이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에서 배우들은 움직인다. 그리고 관계를 맺고 끊는 일련의 과정이 우리들의 삶과 다르지 않다면 그건 드라마가 아니라 어느 순간 현실이 된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도에 있는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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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좀 행복해져라... 제발 좀."

두 모자의 이야기는 배우와 작가의 관록이 드러난 회차였다.

 

난 이 드라마를 보면서 ‘배우’라는 직업이 정말 어려운 전문적인 직업이라고 새삼 느꼈다. 특히 <우리들의 블루스>처럼 현실과 드라마 그 경계에 걸쳐 있는 드라마라면 더욱이 말이다. 아무리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했다고 해도 다큐멘터리처럼 24시간 내내 붙어서 촬영하지 않는 이상 ‘단절감’이 들 수밖에 없다. 그건 내가 이전 글에서 <나의 해방일지>에서 말한 판타지나 비일상적인 대사로부터 올 수 있다. <우리들의 블루스> 속 배우들은 단절감, 현실과의 괴리 성을 단박에 지은다. 인물들의 감정선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다면 힘든 일이다.

 

극의 클라이맥스이자 마지막 에피소드인 ‘옥동과 동석’은 뻔한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배우의 힘을 느낀 회차였다. 단 하나의 회상신을 화루로 던진 채, 김혜자 님과 이병헌 님은 옥동과 동석이 되어 두 인물의 삶을 그린다. 등장인물의 뒤에 배우가 안 보일 만큼, 손짓과 표정과 말투 모두 우리가 20회 동안 본 옥동과 동석의 모습이었다.

 

사실 모든 인물들이 ‘배우’라기 보단 실존 인물 같았다. 롱테이크 신이 많아 연기가 물 흐르듯이 이어지도록 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력이 합쳐진 결과물이다.

 

 

 

우린 모두 행복해야 해



<우리들의 블루스>의 행복에는 바운더리가 없다. 우울증 환자인 선아(동석과 선아)도, 영옥의 쌍둥이 언니이자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영희(영옥과 정준 그리고 영희)도 모두 행복해야 한다. 노희경 작가는 이들을 아주 세밀하고 섬세하게 스크린에 옮기려 노력했다. 지독하도록 재수 없는 인생의 족적에도 불구하고(춘희와 은기), 삶의 마지막 하루라도 행복해야 한다(옥동과 동석). 행복의 선택에 대한 책임도 본인들 것이니,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영주와 현).

 

저번 달에 <나의 해방일지>에 대해 조금은 신랄하다 싶을 정도로 비판적인 의견을 썼었다. 내 의견에 공감하시는 분도, 반대 의견을 내주시는 분도 계셨다(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왜 그리 비판적인 의견을 달았느냐에 대한 추신을 여기다가 쓰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전 글을 이렇게 마무리했었다.

 

   

‘향을 맡는다는 느낌으로 본다면 이만한 드라마가 없을 것 같긴 한데, <우리들의 블루스>가 내뿜는 생명력과 비교한다면 상대적으로 공허해 보일 수밖에 없다.’

 

 

솔직히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렇게 썼다. 그리고 그 생각을 지금도 다르지는 않은데, 난 <우리들의 블루스>나 <나의 해방일지>가 주제적으로 멀리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자가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과 긴 생애 주기의 연장선에서 행복을 찾았다면, 후자는 도희적이고 농축된 감정선에서 해방(나는 행복의 동의어로 이해하기로 했다. 이것이 철학적인 단어라는 점에 동의하기 때문에.)을 찾은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두 드라마의 간극 때문에 난 <우리들의 블루스>의 판정승을 들어줬다. 이 글의 서문처럼 가족 드라마에 목말라 있었고, 수많은 인물의 관계를 짜임새 있게 짠 필력에 감탄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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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블루스> 한수와 은희는 도희적인 인간과 원초적 인간의 유대라고 생각한다.

한수를 <나의 해방일지> 속 인물들처럼 해방을 찾는 인물이라고 말하면, 과대 해석일까?

 

난 두 드라마에 나온 인물들을 동시간대에 존재하는 ‘누군가’로 상정하기로 했다. 이런 삶도 있다면, 저런 삶도 있는 거지. <나의 해방일지> 속 인물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는 것이고, <우리들의 블루스>는 그들만의 방법으로 행복을 찾는 걸로. 인간을 혐오하고, 멀리하면서 그런데도 자신과 함께할 단 하나의 무언가를 찾는 삶이 있다면, 인간과 부대끼며 꾸역꾸역 살면서 복작복작한 행복을 찾는 이들도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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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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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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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 너무 좋은 글이네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작가님께서 쓰실 글들이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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