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야기의 힘을 아는 사람들 - 워너브라더스 100주년 특별전

글 입력 2023.12.2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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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을 아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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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기묘한 카트가 하나 있다. 아래 위로 가득 실린 짐들은 누군가의 긴 여정을 예상케 한다. 이 카트의 주인은 어딘가 멀리 떠나기라도 하는 것일까. 벽면을 올려다보니 아마 급행열차를 이용할 모양이다. 이름 모를 아무개와 그의 짐들을 실어갈 이 열차의 행선지는 바로... 호그와트. 탑승을 위해서는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이용하라고 한다.

 

역사 아무데서나 마주쳐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평범한 짐 운반용 카트. 하지만 호그와트라는 고유명사와 9번도 10번도 아닌 애매한 플랫폼 번호, 벽면에 반쯤 빨려들어가고 있는 듯한 카트의 모양새를 통해 우리 모두 곧장 떠올릴 수 있다. 신비로운 마법사들의 세계와 번개 모양 흉터를 가진 한 소년의 장대한 모험기를.

 

이야기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사물 하나에, 수십 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과 감정을 담아낼 수 있게 하는 힘. 또, 사소한 매개로도 그 많은 것을 순식간에 읽어낼 수 있게 하는 힘. 건조한 사실들의 나열에 생기를 불어넣고, 스쳐지나갈 기억과 시선들을 붙들어두는 힘. 모닥불에 둘러 앉아 대화를 나누던, 아주 오래 전의 인류에서부터 이어져내려온 마법같은 힘.

 

그런데 이 힘의 강력함과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이 한데 모인 곳이 있다. 이야기. 우리 존재의 습성과도 같은 것. 그리고 그 속에 얽힌 수많은 욕망과 희망들. 즐겁고 싶고, 기억되고 싶고, 외치고 싶은 사람들의 오래된 염원을 이뤄오며 장장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이야기 하나를 바라보고 달려온 이들의 존재는 어쩌면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나는 그 100년간의 일대기를 살짝 엿보고 왔다. 바로, '워너브라더스 100주년 특별전'을 통해서!

 

 

 

상상과 환상의 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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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놀이공원 가는 걸 좋아한다고 하면 넌 여전히 애구나, 하는 소리를 듣곤 한다. 하지만 그 공간이 주는 탈일상의 감각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생각은 전혀 없다.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꽃밭과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성 모형, 일루미네이션. 온갖 공상의 배경이 직접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어떻게 들뜨지 않을 수 있을까.

 

해를 거듭할수록 사람은 무뎌지기 마련이니, 그런 짜릿한 감각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더 소중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그 조잡함과 식상함을 알면서도 환상의 나라를 표방하는 공간을 찾는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어린 마음을 다시 상기시키는 무언가를, 드물게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그래서 워너브라더스의 작품들처럼, 상상을 단순한 상상으로 그치게 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가득찬 시도들이 유독 반갑다. 마법사들의 세계, 전투수트를 입고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들, 현실적인 듯하지만 실은 로망으로 가득한 시트콤같은 일상들. 그들의 세상에서 내 막연한 공상들은 잠시나마 현실의 모양새를 갖출 수 있으니까. 심지어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조악한 조각상 정도가 아니라, 프로들의 손길 아래 빚어져 엄청난 퀄리티가 보장된 채로 말이다.

 

이번 전시를 보러가기로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스크린을 넘어 물성을 갖춘, 내가 사랑하는 이야기의 흔적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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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금은 벅차는 마음을 안고 전시장에 들어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다름아닌 암흑 속에서 홀로 빛을 받고 있는 문구 하나였다. CELEBRATING EVERY STORY.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찬사를. 과연 이 전시가 성사될 수 있던 동력이 무엇이었는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구였다. 워너브라더스의 모토이자, 이곳을 찾은 모든 이들의 마음이기도 한 것. 이야기를 향한 경탄과 애정. 그 짧은 문구 하나에서 많은 것이 느껴져 한참을 그 앞에 서있었다.

   

더욱 안으로 걸어들어가자, 워너브라더스의 상징인 로고의 변천사 및 그 연대기가 소개된 다음 공간이 있었다. 중앙에 세워진 워터타워와 벽면을 따라 100년의 시간을 훑어내려가다 보면, 제목만으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각종 명작들이 심심찮게 눈에 걸렸다. 미사여구를 덧붙일 것도 없이, 그 목록만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이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간략한 설명 앞에서조차 발길을 멈추던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긴 시간을 요약해내느라 압축적일 수밖에 없는, 어쩌면 건조하기도 한 문장들 앞에서 관람객들은 한껏 미소를 띠고 쉽사리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수도 없이 봐왔을 해리포터 3인방의 사진 앞이라든가, 영화 제목이 가볍게 언급된 지점조차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음.

 

내가 평범한 카트 하나를 보고서도 금방 어떤 소년의 이야기를 떠올려냈듯, 서사의 흔적을 되짚는 것만으로 벅차오르는 사람들을 이곳에 불러모은 힘이 무엇이었는가는 자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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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의 전시 공간은 크게 다섯 가지 주제로 구분되었다. 영화를 이루는 주요 구성 요소인 각본, 의상, 소품, 특수효과, 그리고 실사 영화와 조금 다른 결의 제작 과정을 거치는 애니메이션까지. 세밀하게 고안된 세계관과 그에 걸맞도록 어느 한 가지도 소홀히 하지 않고 탄탄히 채워넣어진 디테일들을 전시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실물 크기의 배트카 모형, 시리우스 블랙의 수배 전단지, 애니메이션 원화들, 각종 포토존까지(직접 확인하는 즐거움을 위해 자세한 사진은 덧붙이지 않는다). 다양한 방식으로 체현된 이야기들, 상상이 현실의 모양새를 갖추는 순간을 만끽하며 나는 실감했다. 이 놀라운 섬세함들이 작품 속에 한데 모여 '그럴 듯함'이라는 힘을 불어넣고, 진정 이야기를 이야기일 수 있게 하는 것이겠지. 이렇듯 정성들여 잘 갖춰놓은 이야기였기에, 이들은 10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그 힘을 십분 발휘하며 살아남았겠지. 그렇게 주제 하나씩을, 컨셉이 되는 작품 하나씩을 더듬어나가다 보면 어느덧 전시의 막바지였다.


마지막으로 톰과 제리를 테마로 한 아기자기한 포토존까지 알차게 즐기고, 전시장을 나섰다. 아쉬움을 느끼려는 찰나 출구 앞에서 곧바로 굿즈샵을 마주했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인 듯한 관람객들 틈에서 홀로 기념삼아 사들고 갈 엽서를 고심하기 시작했다. 이내 마음속으로 결정한 해리포터 엽서 하나를 향해 손을 뻗으려는 순간, 옆에 서 있던 관람객 한 명이 나와 비슷한 이유로 일행에게 똑같은 엽서를 추천했다. 그 말을 슬쩍 듣고 있자니 산뜻한 동질감과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야기는 너무나 강력해서, 개인을 넘어선 세대의 감성을 이루기까지 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이번 전시처럼, 그 강력함의 시류에 적절히 몸을 맡길 수 있는 행운은 생각보다 자주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당신이, 시대가 사랑한 이야기의 흔적을 담아낸 워너브라더스 100주년 특별전. 이번 현장을 통해 그 흔적들을 몸소 되짚어보는 건 어떨까. 보이고 만져지는 것들은 생각보다 더 강력한 방식으로 마음을 파고드니까. 그러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랑했던 이야기를 더욱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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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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