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 공연 '바리나모'팀의 즉흥춤 '몸의 시'

무반주의 춤, 그들의 거대한 우주를 바라보는 시선
글 입력 2022.06.2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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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인천 독립 서점, 독립 출판 작가들, 제작사들이 모인 인천 아트북 페어가 인천 아트 플랫폼에서 열렸다. 북페어는 처음이다. 인문학 강연부터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과 전시들도 신청하면 즐길 수 있었다. 내가 신청한 것은 '바리나모'팀의 즉흥 춤 공연 '몸의 시'였다.

 

 

 

경계가 없는 즉흥 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들



까만 바닥의 홀에 의자가 둥그런 원을 그리고 있다. 하얗게 바래진 바닥을 바라보며 무대가 아닌 홀의 중앙에서 공연이 시작된다는 걸 짐작한다. 이렇게 코 앞에서 즉흥 춤을 보게 되다니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설레었다. 기대하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동안, 두 사람이 말 없이 공간의 한 가운데로 들어와 눕는다. 한 사람은 키가 큰 남자, 한 사람은 보다 작은 여자다. '이 사람들은 왜 머리를 밀었을까?' 두 사람은 머리카락이 없었다. 그들은 어떤 소개도 없이 대뜸 바닥에 누워서 합체하는 듯 몸을 탐색하며 서로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둥그렇게 모여 앉은 관객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까. 시작인지도 준비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황스러운 마음을 갖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처음에 나는 그들과 너무 가까워서 불편했다. 익숙하지 않으니 당연히 어색하기도 했다. '내가 이 사람들의 표정을, 움직임을, 숨소리를 이렇게 대놓고 보고있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어색한 불편함을 느끼며 공연을 보게 된다면 많은 것을 놓칠 수 있겠다고 느꼈다. 두 사람을 어떻게 인지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기존의 관념을 내려놓고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들을 하나의 유기체로, 하나의 몸뚱이로, 하나의 움직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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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하나의 몸으로 합체된 것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둘의 상호작용을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다. 1막 1장 현대무용 프로젝트에서 경험했던 '공간과 친해지기' 가 생각났다. 내가 이 공간을 느끼고 알아가기 위해서 동물처럼 탐색하고 느껴보던 시간이 눈 앞의 순간과 겹쳐졌다. 두 사람의 움직임도 그런 활동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를 비롯한 관객들도 낯설을 수 있는 분위기겠지만, 내 앞에 있던 두 사람도 공연장의 냄새와, 관객들의 시선과, 숨소리, 온도, 조도 등을 인지하고 익숙해지며 상대방을 향해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들은 아주 느리게 움직였고,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분명 두 얼굴인데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였다. 어디가 얼굴이고 어디가 발인지 눈에 보이는데도 움직임에 집중하며 보면 앞과 뒤, 위와 아래, 오른쪽과 왼쪽의 구분이 없었다. 경계를 나누며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공연중에는 몸의 최상단에 있는 것을 얼굴로 볼 수 없었다. 바닥에서 균형을 유지하다가 무너지고, 흘러가다가 버티고, 지지하다가 떨어지는 두 사람의 움직임안에 얼굴은 없고 표정이 있었다.

 

 

 

음악 없는 공연, 움직임이 만드는 불규칙적인 리듬과 소리들



이 공연에는 음악도 없었다. 음악 대신 공간의 소리가 있었다. 공간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가 음악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처음에는 '언젠가는 음악이 나오겠지, 언젠가는 스크린에 영상이 나오겠지.' 하고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이 언제 시작한지도 몰랐을 그쯤부터 5분새 두 사람이 공간의 주인이 된 순간 '아 음악이 나오지 않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내가 너무 집중하며 보아서 못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관객들의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자세를 바꾸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내는 소리를 더 크게 들었다.

 

바닥에 발바닥이 밀리는 소리, 옷이 쓸리는 소리, 몸이 부딪치는 소리와 숨소리, 작은 목소리. 모든 소리를 하나씩 귀에 담아 들었다. 음악이 없어서 어색하다는 건 기존에 감상해왔던 춤, 공연등의 형식에 익숙해서 들었던 감정이었다. 그건 다양한 것을 겪어보지 못해 느낀 하나의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음악이 있는 공연에는 음악 외의 것이 소음이 된다. 음악이 없는 공연은 반대로 생각하면 되는거 아닐까. 이 공간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이 무대에 포함된 것이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메인 음악은 지금 들리는 모든 소리라고 생각하며 보니 그 뒤부터는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나는 불규칙적인 리듬을 느끼며, 두 사람이 만드는 움직임의 흔적을 바쁘게 쫓았다.

 

 

 

눈을 감고 춤추는 두 사람의 세계


 

그들은 눈을 감고 움직였다. 그러나 관객은 눈을 뜨고 두 사람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이곳의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같은 소리를 들으며 존재하지만 관객과 무용수들의 세계는 너무나 다르다. 눈을 뜨고 춤추는 것과 눈을 감고 춤추는 것에는 분명한 감각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흘러나오는 움직임의 느낌도 다르다. 눈을 감으면 내 몸에 집중하기가 더 쉬워지고, 내가 그리는 몸의 궤적이 머릿속에서 그려지기도 한다. 공연을 감상하는 내내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도 없었다. 나는 계속 눈을 떼지 못해서 눈을 자주 감지도 못했다. 두 사람의 움직임에, 숨소리에, 표정에 집중하다 점점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동화되어 갔다. 그 감상이 깊어지자 이 넓은 공간에서 두 사람만 느끼고 있을 제 3의 움직임의 공간을 나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참여할 수가 없으니 동일시를 하고 있었다. 흥미진진한 영화 속 주인공에 공감하며 그의 감정에 동화되어 가듯 나도 이들의 움직임에 감정을 이입하고, 숨을 비슷하게 몰아쉬고, 표정을 따라하며, 눈을 감았을 때의 느낌을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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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암흑 속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두 몸을 떠올렸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파동에만 의지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공간의 크기를 예측할 수 없는 무의식의 공간에 내가 초대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을 뜨고 공연을 보지만, 머릿속으로는 눈을 감고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을 상상했다. 처음에는 아주 느리게 시작했던 움직임들에 감정이 더해지고 속도가 붙었다. 바리님의 움직임은 격정적이면서도 감정이 묻어났다. 바리님의 몸짓에서 느껴지는 짧은 호흡과 표정의 변화에는 서사가 있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몸짓에 이야기를 붙이고 해석하면서 감상하고 있었다. 나모님의 몸짓은 바리님이 표현하는 감정의 또 다른 본체처럼 느껴졌다. 바리님은 감정으로, 영혼으로, 나모님의 움직임은 감정을 따라가거나 컨트롤하는 자아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감정을 부드럽게 이어주다가도 때로는 제어하고 참고 있는 이성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바리님의 움직임에서는 파란 불꽃이 연상되었다. 차가운 스파크가 튀 듯 움직였다. 나모님에게선 미지근한 온도가 느껴졌다. 느리게 흔들리는 집 앞의 가로수처럼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몸짓이었다.

 

 

 

40분의 공연, 포착한 순간들


 

즉흥 움직임 공연이었으나 어떤 규칙이나 몇 가지의 변화구가 있었다. 움직임이 지속되도 변치 않는 장면들을 확인하며 공연의 규칙을 알아가고, 살짝 변형되는 변화들을 확인하며 흥미가 증폭되는 즐거움이 있었다.두 사람은 눈을 감은채로 계속 움직였으며, 두 몸은 어느 부위로든 두 부분은 붙어있어야 했다. 특히나 가장 많이 보였던 건 나모님의 손이 바리님의 발에 자주 와 닿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나모님이 눈을 떴다. 공연 초반부에 있던 일이다. 바닥에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던 두 사람이 일어나 걸었다. '지금부터는 아까랑은 다른 이야기를 또 보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작은 변화요소가 지루하지 않은 플롯을 만들어 냈고 호흡을 길게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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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눈을 뜨고 움직이는 시간은 두 사람만의 관념적 공간이 관객들이 있는 물리적 공간과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지하 세계와 지상의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페르세포네가 떠올랐다. 나모님은 두 세상을 유일하게 다 알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반면 중심을 지켜주는 존재가 생겨나니 바리님의 움직임은 더 강렬해지고 더욱 절제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나모님은 바리님의 눈이 되어 움직였다. 앞에서 이어져오던 서사가 더 강력해진 느낌이었다.

 

그러다 곧 다시 눈을 감고 움직였다. 초반부에 비해 중반부는 빠르고 격렬한 움직임이 주를 이루었다. 눈을 떼기 어려울 만큼 집중해서 볼 수밖에 없는 움직임들이었다. 두 사람의 호흡이 빨라지고 동작이 격해질 수록 내 심장도 빠르게 뛰었다. 내 감정을 아주 예민하게 만드는 영화나 그림, 춤을 볼 때처럼 가슴이 뛰었고 두 손이 꼭 쥐어졌다. 긴장한 상태로 그 순간들을 빠짐없이 감상하면서, 정신에너지를 계속 쓰고 있었다. 이렇게 말로 형용하기가 어려운 예술적 감흥이 너무 오랜만이었다.

 

한 가지 신기했던 것도 있었다. 분명 이들은 서로의 몸짓을 전체적으로 볼 수 없었고, 말 그대로 느낄 수만 있었다. 그런데 맞춘 것처럼 움직이는 순간이 아주 자주 있었다. 각각의 손은 마주잡고 있을 수 있어도 다른 몸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데 같이 일어난다던지, 똑같이 팔을 벌린다던지, 대칭으로 움직이는 순간들이 놀라웠다. '짧은 근육의 변화에서 그런 것도 다 느끼는 걸까. 혹은 우연인걸까. 혹은 얼마나 오랫동안 같이 호흡을 맞춘걸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공연의 막바지 즈음 두 사람이 내 앞쪽에 와 몸을 포개고 한참을 숨을 내 쉰적이 있었다. 달아오른 에너지를 잠시 식히며 이완하는 시간으로 읽었다. 두 분의 땀방울이 조명에 비추어져 아주 작은 물방울들로 빛났다. 거칠게 빨랐던 숨소리들도 천천히 잦아들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이 사람들의 땀방울과, 표정과, 솔직한 움직임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그대로 봐도 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심지어는 숨의 파동까지 그대로 느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 시간과 경험이 너무 귀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스스로의 몸을 하나도 빠짐없이 사용해서 보여준 모든 것들이 감사했다.

 

 

 

공연 끝, 작은 아쉬움과 충만한 감정들


 

공연은 40분이 넘도록 쉬지 않고 이어졌다. 그리고 두 아티스트는 눈을 감고 움직이면서도 자연스레 의자를 찾아 앉았고 그 곳에서 공연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공연의 시작과 마찬가지로 별 다른 말없이 인사 후 빠져나오셨다. 나는 공연이 끝난 후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잠시 동안 의자에 앉아 있고 싶었는데 바로 의자를 치우며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었다. 이런 공연을 끝나고 바로 마무리를 하는게 말이 되나? 싶었다. 관객들이 정신차릴 시간은 줘야하는 거 아닌가? 적어도 나는 감정을 추스리고 느낀 것을 차분히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다. 마치 영화 엔딩 크레딧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엔딩 크레딧은 여운을 정리하는 시간인 한편 현실세계로 돌아오도록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느낀 감정을 바로 나눌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급한 마무리를 보고 있자니 주최측이 바리나모의 공연 특성을 충분히 알고 있지는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분 내리 빼곡하게 비일상적인 여러 감정들의 소용돌이에 속해 있으면서, 계속해서 스스로와 이야기하고 답변하며 시간을 보냈다. 감각적으로 아주 예민해졌다. 초반 부의 충격과 중반부의 즐거움과 기쁨과 슬픔들, 그리고 후반 부의 벅찬 감정이 한데 모여서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질문할 말도 한가득 쌓였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럴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고, 나는 아쉬운 마음에 공연장을 자꾸 돌아보며 사진을 찍을 수 밖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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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 춤 '몸의 시'는 제목과 아주 딱 맞는 공연이었다. 어떤 설명도, 소개도 없었지만 오히려 말이 없었기 때문에 몸이라는 언어로 표현한 시를 더 온전히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었다. 공연 감상에는 답이 없으므로, 부담없이 느끼는 대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은 내가 느낀 모든 감정을 글로 전부 표현이 되지 않는다는게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언어로 이해하는 부분보다 즉흥적으로 들었던 수많은 감정들과 내 머리위로 떠오르던 다양한 물음표들이 인상적이었다.

 

 

[김예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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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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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모
    • 생생히 살아있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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