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현대미술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춘,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전

글 입력 2022.04.13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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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현대 미술이 어렵다. 작품의 의도를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마음으로는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전에 갈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포스터에 나온 채도 높은 색깔들이 눈을 끌어, 현대 미술을 더 경험해 보기로 결정했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전 포스터.jpg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초기작 <참나무(Oak Tree, 1973)>는 남성용 소변기를 <샘(Fountain, 1917)>이라는 제목으로 전람회에 출품한 마르셀 뒤샹의 바톤을 이어받아, 당시 미술계에 파격적인 이슈를 일으켰다. 갤러리 벽면에 '선반과 물 한 잔'을 올려놓고 물컵이 아닌 참나무라고 명명한 이 작품은 개념미술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이 <참나무> 작품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이런 그의 개념미술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작가는 간결한 블랙 라인과 매혹적인 원색을 사용해 대중들이 쉽게 다가오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보는 이들이 기억에 기대여 자유롭게 상상하도록 유도했다. 그는 현대 페인팅, 드로잉, 설치, 조각, 디지털 작업 등 영역을 다양하게 넓히고 있는데, 이번 전시장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었다.

 

공간은 크게  탐구, 언어, 보통, 놀이, 경계, 결합이라는 제목으로 구분되어져 있다. 느린 호흡으로 모든 그림들을 감상하게 되면 약 1시간~1시간 30분이 정도가 걸린다. 그리고 새로운 공간에 전진함에 따라 작가의 예술 세계를 점점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가 왜 이 오브제를 선택했는지, 왜 이런 캠버스를 사용했는지, 왜 각 오브제들을 이런 식으로 배치했는지 등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각 공간에서의 대표적인 작품 옆에 설명문이 붙어있는데, 이 설명문의 정보를 바탕으로 작품을 바라보게 되니 작품을 더 즐길 수 있었다.

 

전시회 들어가자마자(탐구의 공간) 나는 이 전시가 마음에 들었다. 전시 첫 번째 공간에서 French trousers, Private dancer, Reading(with pin) 등의 작품들을 감상하게 되는데, 2차원의 그림들을 3차원의 작품으로 제작한 것이 흥미로웠다. 2차원의 스케치들을 3차원의 조각으로 제작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입체적이지 않고 여전히 평면적인 작품들이었다. (이런 특정한 조각품을 만든 작가에 대한 의도를 전시 중간에 빔프로젝터로 상영하고 있는 영상에서 알아볼 수 있다.)

 

<참나무>라는 작품을 통해 유명해진 작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작가의 의도를 통해 실현된 모든 것은 작품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그의 의도는 전시회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관통한다. 또한 그는 “우리가 흔히 여기는 일상의 오브제들이 실제로는 가장 특별한 것이다” 말했다. 그래서 이 전시회에서는 다양한 일상품들을 마주할 수 있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작가는 초원의 풍경보다 생활 속에서 흔히 쓰이는 공삼품을 오브제로 즐겨 활용하는데,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일상의 사물들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평범한 물건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이 삶의 본질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그의 가치관에 공감한다. 결국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요소에는 우리 주변의 일상품들이 포함된다. 우리는 우리의 방에 있는 물건들로 그 사람의 취향과 일상 습관을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아침마다 물을 마시기 때문에, 항상 내 책상 위에는 물컵이 있다. 이런 '물텁'은 나의 일상 습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 주변 일상품들을 자세하게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작가는 우리에게 그런 메시지를 작품으로 전달했다.

 

물론 작가는 일상품들을 그저 '평범'하게 관찰하고 '평범'하게 작품에 녹여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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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ssette, 2002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이 작품은 카세트테이프가 대형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전통적인 미술 수업을 받은 사람이라면, 한 작품에 너무 많은 색을 사용하면 안 되고, 캔버스 정중앙에 무언가를 배치하거나 반대로 캔버스 가장자리에 치우치게 그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배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카세트테이프 위치가 사면의 가장자리 끝까지 가 있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작가는 정통 미술 수업의 금기 사항을 일부러 적용해 보려는 노력을 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본인의 작업을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Untitled (desire), 2008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Untitled (desire), 2008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전시회를 둘러보면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오브제들이 있다. 예를 들어, 캔, 핀, 신발 등이다. 놀랍게도 그 오브제들이 어떤 색, 어떤 선, 어떤 조합으로 있느냐에 따라 오브제에 대한 느낌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재미있었던 것은, 오브제들의 선이 서로 겹쳐지면서생기는 새로운 영역과 모양의 변화였다. 각각의 오브제로서 감상을 하는 동시에 각각의 오브제들의 조합이 주는 느낌을 감상하면서, 마치 수수께끼 혹은 게임처럼 작품을 바라보았다.

 

(위의 작품에서는 D, E, S, I, R, E의 알파벳들이 보이는 동시에, 왼쪽에서부터 주황색 선으로 그려진 물컵, 보라색 선으로 그려진 서랍장, 빨간색 선으로 그려진 신발, 흰 색으로 선으로 그려진 캔, 노란색으로 그려진 메트롬 등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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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Glove와 같은 언어유희로 만들어진 작품들도 있다. 글자와 사물은 연관성이 없지만, 발음만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한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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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오브제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그리고, 다양한 크기로 캔버스에 배치한 그의 작품들은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색깔들의 조합은 키치함을 연상하게 만들어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눈에 띄었다. 오브제들은 하나의 통일된 색상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포인트 컬러와 검정색 선을 가져 독립된 오브제들로 존재하게 된다. 연관성이 없는 사물들이 모여 하나의 조형을 이룬다는 것이 신기했다.

 

 

ⓒZoom, 2020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jpg

 ⓒZoom, 2020_Michael Craig-Martin. Courtesy of Gagosian

 

 

시대의 흐름에 맞는 주제와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들이 많아서 피식 피식하고 웃으며 작품들을 감상하기도 했다. 위의 작품은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에 대한 작품이다. 우리는 노트북으로 참여하면서 많은 일들을 해내고 있다. 작가는 알파벳 Z을 연상할 수 있게 노트북들을 작품에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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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오브제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그린 스케치들, 다양한 배치를 시도해 본 작품들을 통해, 우리주변의 일상품들을 유심히 관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다양한 각도에서 가까이 오브제들을 관찰하며 작품에 녹여냈다. 나는 개인적으로 위처럼 같은 배경색과 캠퍼스 크기로 그려진 일련의 오브제들이 통일된 작품들 같아서 좋았다.

 

현대미술을 어렵게만 생각하던 내가 이렇게 즐겁게 감상한 전시회는 오랜만이다. 전시회에 가서 작품에 대한 설명들을 읽으면서 온전히 작품들을 즐기게 되면, 전시회를 진정으로 감상한 것이다.

 

감상 꿀팁 - 1. 조명이 조금 노래서, 눈으로 보는 색과 카메라로 찍은 색이 달랐다. 그래서 카메라로 바로 작품을 찍지 말고, 바닥으로 내려서 색깔을 맞추고 다시 빨리 올려서 바로 찍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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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그냥 찍었을 때, 오: 화이트밸런스 맞추고 촬영했을 때

(미묘한 차이이지만, 오른쪽이 나은 것 같지 않나요?)


 

2. 친구들이랑 같이 간다. 작품들을 보면서 어떤 오브제들을 활용했는지 맞춰보고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오브제들이나 알파벳들을 맞춰본다.

 

3. 마지막으로 전시회 보기 전에 혹은 전시회 본 후에,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작가의 작품들을 더 알아보고 싶다면, 작가의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다양한 매체들을 활용한 그의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안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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