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이돌 없는 아이돌 파티 - 팬들은 왜 모이려고 할까?

글 입력 2022.04.09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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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마니아가 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케이팝은 새롭다. 아이돌 그룹이 세계적인 음악 시상식에서 무대를 꾸미고 뮤직비디오가 10억 뷰를 웃도는 조회 수를 기록하는 현재의 케이팝 지형은 여전히 놀라운 광경이다. 이제는 ‘열풍’이라고 말하기에도 모호할 정도로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를 잡은 케이팝에 관해 특히 눈 여겨봐야 할 지점은 그것이 단일한 음악 장르를 넘어 문화의 형태로서 주목받는다는 것이다. 앨범이나 공연뿐 아니라 아티스트의 성격, 인간관계, 가치관, 일상을 모두 콘텐츠로 만들어 대중의 삶과 호흡하고자 한다는 것이 케이팝의 특징이다. 온갖 장르와 매체에 영향을 미치는 케이팝은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활발한 변화와 확장을 꾀하며 시대를 특징짓는 문화가 되었다.

 

여러 사람의 상호작용으로 활성화되는 케이팝을 팬덤 문화를 제외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케이팝 아이돌은 팬덤과 함께 자란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것은 케이팝 산업 내부에서 통용되는 불문율이다. 아이돌이라는 교집합으로 인해 한자리에 모이는 팬들은 팬클럽이라는 공식적인 명칭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집합이 되고 그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문화를 파생한다. 이를 통해 아티스트는 신(scene)에서의 영역을 효과적으로 확장해나가기 때문에 팬덤이 ‘잘 놀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 또한 케이팝 산업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아티스트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또 다른 콘텐츠를 창조하며 산업의 지평을 넓히는 팬덤이 만들어내는 놀이 공간은, 이제 케이팝이라는 장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심지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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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는 만큼 팬덤 문화가 주목받는 것도 당연하다. 10년의 ‘덕질’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변모하는 팬덤 문화의 양상은 언제나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이제는 보편적인 관행이 된 ‘아이돌 없는 아이돌 생일 파티’이다. 아티스트의 생일이나 기념일이 다가오면 팬들은 직접 카페 등의 공간을 대관하여 파티를 주최한다. 아티스트의 사진 혹은 그와 관련한 물건으로 장내를 꾸미고, 아티스트에게 전달할 편지를 작성하거나 굿즈 추첨 이벤트를 여는 등 행사를 주관하기도 한다. 공간을 빌려 준 카페 등의 공간에서는 아티스트와 닮은 캐릭터 형태의 식품을 스페셜 메뉴로 판매하기도 한다. 팬들은 잔치를 즐기고, 카페는 이름을 알리고 수익을 낼 기회를 얻으며 일종의 ‘윈윈’ 효과를 창출한다. 이제 생일 카페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아이돌에 관련된 경우 최소 1년에 한 번 이상은 개최될 정도로 일반적인 행사가 되었다.

 

필자가 유독 흥미를 느끼는 지점은, 파티에 아티스트가 오는 것이 아닌데도 가고 싶어 하는 팬이 많다는 것이다. 아티스트로 꾸며진 공간에서 식사한다는 것 말고는 특별히 정해진 형식이 없는 행사는 엄밀히 말하면 파티보다는 이벤트에 가까우며, 아티스트가 실제로 방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도 매우 희소하다. 아티스트의 목소리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아티스트의 모습은 사진으로만 확인할 수 있는데도 팬들은 카페에 갈 날을 기다린다. 필자는 이것이 모이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모인다는 것은 팬끼리 직접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아니라,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이 바로 그 이유로 타인과 분리되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분리되지 않고 포함되는 곳으로 한데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단 생일 카페가 아니더라도 팬덤이 오프라인에서 자체적으로 모이는 문화는 유구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팬들은 왜 모이려고 할까? 아이돌 없는 아이돌 파티에서 숱하게 ‘모여 본’ 필자의 시각에서 이에 대한 궁금증을 스스로 타파하고자 한다. 이는 또한 현재 케이팝의 주요 소비자이면서도 생산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아이돌 팬덤이 주도하는 문화의 단면을 확인하는 시도가 될 것이다.

 

 

 

1. 보기 위해 모인다. : 감정의 가시화와 구획


 

MBTI 유행이 방증하듯 인간은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규정하고자 한다. 출신으로, 직업으로 자신을 설명하고 그에 기초하여 타인이 자신을 해석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덕질’은 이력서에 적을 수 있는 출신과 직업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문제다. 자신을 규정함으로써 존재를 확인하는 인간으로서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감정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욕구일 것이다. 여기서, 팬만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구획하는 것은 하나의 방법이 된다. 평범한 생활에서는 충분히 누릴 수 없는 ‘덕질’의 영역을 따로 떼어내 그것을 일상에 끼어든 부수적인 취미가 아닌 엄연한 세계로 구분함으로써 자신의 특징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팬들은 ‘덕질’의 공간을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본격적으로 구획한다. 콘텐츠를 소비하고 생산하며 케이팝을 적극적으로 향유하는 팬들은 구획된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확인하며 존재감과 효능감을 느끼고, 집단에 의해 매끄럽게 정리되고 체계화된 언어로 더욱 확실하게 감정을 규정할 수 있게 되면서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팬들이 ‘모여야’ 가능해진다.

 

온라인상에서의 만남은 자유롭고 광범위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지만, 실제로 모이는 것은 훨씬 밀도 있는 친밀감과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 팬들은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제적인 공간과 대상으로 그들의 문화를 매개한다. 여타 마니아들이 수집과 기록을 통해 경험을 극대화하고 기억을 간직하듯이 아이돌 팬덤 역시 가시화된 공간에 모여 아티스트의 음악과 사진 등을 통해 물리적으로 구현된 감정의 세계를 감각하며 특별한 날을 의미 있게 보내고자 하는 것이다. 생일 카페를 방문한 팬들의 후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문장 중 하나는 ‘최애(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을 이르는 은어)로 가득 찬 공간에 있어서 행복했다’는 감상이다. 실제로 ‘최애’가 방문한 것은 아니지만 팬에 의해 구축된 아티스트와 팬덤의 세계에 진입하고 자유롭게 유희하는 것은 좋아하는 연예인과 함께 있는 기분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각별한 경험으로서 선사되고 있는 것이다.

 

 

 

2. 보여주기 위해 모인다. : 인증 문화가 만든 새로운 예절


 

문화의 존재를 확인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문화로 인해 모인 ‘사람’들과 대면하는 것이다. 문화와 관련한 메시지나 의견을 나누는 것보다 문화가 새겨진 개인의 내밀한 삶과 마주하는 것이 문화에 속한 일원으로서 실제로 집합하고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기 때문이다. 케이팝 팬덤 문화 역시 개인의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경향에 영향을 받은 바 있다. SNS 사용이 보편화되고 팬덤 문화 또한 SNS를 중심으로 발달하면서 아티스트와 큰 관련이 없어도 팬 개인의 일상도 팬덤이라는 집단 내부에서 자유롭게 공유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으로,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아이돌 팬은 특정 키워드에 ‘#’ 기호를 붙여 공통 주제의 게시물을 공유하는 ‘해시태그’ 기능을 활용하여 아티스트에게 편지를 쓰거나, 자신이 방문한 명소를 다른 팬에게 추천하는 등 공통된 이야깃감을 주고받는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팬덤 문화의 일원으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인증’하는 것이다. 이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과 함께 방문한 명소나 먹은 음식 등을 찍어 올리는 관행을 두고 ‘예절’이라고 이른다. 개인의 삶과 팬덤의 문화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새로운 규범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러한 연결의 규범은 팬 사이에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며, 모이게 한다. 이렇게 성사된 팬들의 모임이 ‘인증’을 통해 드러나면 타인에게 자신이 향유하는 문화의 가치와 소속된 집단의 정체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일반적인 SNS 유저로서의 목적을 실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모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콘텐츠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생일 파티에 가는 것도, 파티의 사진을 찍고 해시태그를 붙여 SNS에 인증하는 것도 자신이 해당 팬덤의 일원으로 존재한다는 것과 더불어 해당 팬덤이 모임을 개최할 수 있을 정도로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콘텐츠가 된다. 팬들이 모이고, 그것을 SNS에 기록하여 또 다른 오락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새로운 방식으로 매개된 팬덤의 예절이 되었다. 모임으로써 즐거운 문화의 참여자임을 보여주고, 그리하여 참여한 문화를 더욱 즐겁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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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팬덤은 예나 지금이나 하대를 받으며 그 소비의 가치를 폄하 당해온 존재다. 케이팝 산업 자체가 많은 결점과 모순을 은폐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창출하고 있는 발전된 문화로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그에는 유행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미디어를 적확하게 활용하는 소비자이자 생산자인 팬덤이 중대한 기여를 한 것도 분명하다. 다양한 형태로 집단화하며 적극적으로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탐색하는 것은 케이팝을 일시적 유행이나 산업이 아닌 문화로 정착시키는 데 필요불가결한 숙제가 될 것이다. 어떤 분석이 도출될 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전국 각지에 있는 이들을 일순간에 모으는 힘의 중심에는 애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치가 지금처럼 절하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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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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