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인간이 동물을 만날 때 - 동물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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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동물권과 동물복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동물의 고통에 관심을 갖는다. '우리'의 범위를 확장하고,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변화는 피부에 와닿는다. 동물학대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청원이 여러 건이고 식당과 카페에서는 비건 메뉴를 예전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동물 너머』는 약간 관점을 달리해 보고자 한다. 기존의 동물 담론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 그리고 동물 담론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포착해보자는 것이다.
즉, 동물이 핵심 주제어인 책의 제목을 아이러니하게도 '동물 너머'로 지은 이유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에서 동물이 종종 동물권의 '동물'을 '넘어'서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련 담론의 지형 '너머' 산적한 사회적 문제를 드러내고 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8쪽
'동물'의 개념과 정의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동물 담론이 구축되어온 과정과 오늘날 동물 담론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핌으로써 인간과 인간의 관계,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논의거리를 소개하며 '얽힘', '고통', '타자'에 대한 열 개의 질문을 던진다. '반려견문화', '개고기 논란', '길고양이 돌봄문제' 등 키워드만 들었을 때는 이미 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에 저자의 질문과 저자가 소개하는 학자들의 이론이 더해지며 낯선 것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 '얽힘'에서는 우리가 동물과 맺는 관계의 양상을 살핀다. 동물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자원(가축)으로 보거나,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익숙하다. 오늘날에는 보통 후자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전자를 비판하는 양상을 많이 본다. 이와 달리 저자는 인간이 동물에게 영향을 주는 것만큼이나 동물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라는 것에 주목하며 '비인간존재'로서의 동물을 조명한다. 이는 근대에 성립된 '인간/동물', '자연/문화'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체하며 인간-동물의 관계를 낯설게 보게 한다. 우리가 길들인다고 믿는, 혹은 돌봐야 할 '대상'이라고 여기는 동물들이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인간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2부 '고통과 타자'에서는 동물 담론을 통해 동물의 고통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가닿는지 그 과정을 돌아보고, 그 과정 속에서 실재하는 젠더, 계급 등의 문제는 간과되곤 한다는 점을 짚어나간다. 저자가 예로 든 '돼지망치살해사건'에 대한 분석은 인상적이다. 돼지망치살해사건이란 몇 년 전 SNS와 언론으로 퍼져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산 영상의 제목으로, 국내 한 돼지농장에서 새끼돼지 수십 마리가 상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죽임당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저자는 '억압자 인간 대 희생양 동물'이라는 구도 속에서 지워지는 축산 노동자의 얼굴에 주목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즉 자본주의적 불평등과 위계 속에서 체계적으로 부정당하는 축산 노동자의 '인간됨'이 영상에서는 왜 억압-피억압 관계로 본질화된 인간-동물 관계 속 인간적 잔인함과 폭력을 표상하기 위해 복원되는가? 다시 말해 손쉽게 대체 가능한 값싼 인력으로 인간적 존엄성을 일상적으로 박탈당하는 축산 노동자의 인간됨은 왜 동물을 억압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인간성을 대표하기 위해서만 인식되는 걸까? (중략) 왜 그의 인간됨은 오로지 바로 부정당하는 방식으로만 인식되는가?
- 156쪽
동물과 관련된 논의 속에 인간 집단 내 불평등과 위계 문제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는 이 외에도 수없이 많다. 저자는 아시아의 개농장에서 구출한 개들을 북미, 유럽, 호주의 가정에 입양시키는 동물단체, 상대적으로 낙후된 미국 남부의 노동계급 백인 남성들 사이에 성행하는 투견 등의 사례를 제시한다. 제시된 사례들은 우리가 동물의 고통과 관련된 문제들을 단순히 '인간 대 동물'이라는 구도 안에서만 분석할 수는 없음을 보여준다. 현재 활발하게 일어나는 동물권 논의가 무의미하다거나 논의의 우선순위를 정하자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들을 입체적으로 바라보자는 제안이다. 납작한 접근 방식은 인간 사이에 실재하는 사회적 불평등과 차이를 지움으로써 또 다른 폭력을 낳을 위험이 있고, 문제의 본질을 왜곡해 상황을 더 악화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성찰하는 일은 무엇보다 3년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코로나19라는 범유행 전염병을 성찰할 때 더욱 유효하다. 저자도 이 점을 언급하며 코로나19를 자본과 자연의 합작품으로 봐야 하며, 코로나19를 비롯해 지난 20여 년간 출현해온 동물 유래 바이러스가 "사회생태적인 동시에 정치경제적 힘들의 얽힘 속에서 창발"(163쪽)한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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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모순과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는 논의들에 대하여 『동물 너머』는 정해진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보다 수많은 질문들과 함께 여러 학자들의 이론과 견해를 소개한다. 문을 많이 만들어둔 셈이다. 책을 읽다 보면 많이 알수록 말을 얹기는 더욱 어려워진다는 걸 실감한다. 책에서 소개된 학자들의 책을 찾아 읽거나 기존의 동물권 논의를 다룬 책과 함께 읽는다면 더 풍성한 독서가 될 것이다. 동물을 넘어 그리고 동물 너머에 열려 있는 수많은 문들로 걸어나가보자.
[김소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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