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변하지 않는 애정이 있다

변하지 않는 애정을 쏟는 것들
글 입력 2022.03.2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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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한 초등학교 주변 길거리를 매년 한 번씩은 다시 지나칠 일이 생긴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같은 거리는 계속해서 변해간다. 이제 13살 무렵의 학교 풍경은 정확히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서운한 것은 1년 단위로도 내 기억과 모습을 달리 한다는 것이다. 처음 보는 가게가 생겨 있고, 다음에는 없어져 있다. 그 자리를 지키는 것들로 리모델링이나 간판 교체로 모습이 바뀌기가 잦다. 변하는 풍경과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세상에 과연 변하지 않는 것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어 울적해진다.


고등학생 때 누군가를 좋아하며 느꼈던 순수한 감정은 퇴색되고, 사랑에 대한 기대치와 정의는 변하며, 예전에는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차던 것이 이제는 귀찮고 사소한 일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한때 좋아했던 노래 제목을 까먹어 스마트폰의 음성 검색기를 켜야 하기도 한다. 세상에서 믿을 것은 나뿐이라던데, 정작 나조차 변한다는 사실이 우습게 느껴지기마저 한다. 새삼스레 무언가에 변하지 않는 애정을 주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4개월 전 에디터 활동을 처음 시작할 때에도 project 당신에 참여해 나를 소개하는 글을 기고했다. 4개월이 지난 후, 나는 컬쳐리스트로 아트인사이트와 함께 하고 있다. 네 달이라는 짧다면 짧은 시간 안에도 나는, 우리는, 나를 둘러싼 것들은 더 나은 방향으로 때로는 후퇴하며 달라지고 있다.

 

4개월 만에 다시 나를 소개하는 글을 쓴다. 노트북 앞에 앉아 4개월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생각해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4개월이 아닌 더 긴 시간을 넘어, 내 애정의 방 한 켠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내가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들로 ‘나’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드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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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나무 향을 좋아했다. 약간의 목욕탕 향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비 오는 날의 나무 향을 좋아했다. 나는 운동을 싫어한다. 등산은 더더욱 싫어한다. 산책은 좋아한다. 어릴 때 부모님이 가끔 주말에 등산을 하러 가자며 나를 깨우면 졸린 눈을 비비며 따라나서야 했다. 산이라는 공간은 싫었지만 이른 아침 나무 향들은 좋았다. 특정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여행지에서 유명 사찰을 방문하면 절에서 나는 향냄새와 목조 건물의 냄새가 좋았다.


지금이야 향수라는 것을 알게 되어 우드향 인센스 스틱이나 향수를 사 모으면 되는 일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그 향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나무가 많은 산책로나 산에 가야만 느껴지는 향이라고 생각했다. 맡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향이다. 내 많은 취향은 우드 향에 대한 애정에서부터 뻗어 나갔다.


우드 향은 담백하다. 우드 향은 편안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나는 꾸준히 담백한 것들을 좋아해 왔다. 영화도, 책도 본질적으로는 담백한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좋다. 화려한 장치와 여러 반전으로 점철된 것들보다는 주제 의식이 명료하고 군더더기 없는 것들이 좋다. 사람도 느끼하고 속을 모르겠는 사람보다는 정갈하지만, 그 깊이가 얕지 않은 사람과 있을 때 편하다고 느낀다.


인간은 후각과 촉각에 특히 민감하다고 한다. 손에 닿는 것과 코로 맡아지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기 전 일차적으로 감각적인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내 후각은 우드 향에 반응한다. 나는 한결같이 우드 향과, 향이 연상시키는 이미지와 관련된 것들을 좋아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향수 역시 베티버 나무 향에 약간의 머스크 향이 첨가된 향수이다. 나를 조금 더 좋아해 주고 싶어 나는 내 위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얹는다.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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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좋아한다. 영화를 좋아하기 이전에 영화관을 좋아했다. 처음 영화관을 간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영화관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영화관은 항상 내가 사는 집 근처에서 멀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 이전에는 친구와 영화 보러 가는 것을 좋아했다. 영화가 보고 싶어서도 있지만, 영화관이 좋아서다.


사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로 꼽는 작품들은 대부분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 OTT 서비스를 이용해 관람한 작품들이다. 재개봉 작품을 찾아서 보러 가거나, 오랫동안 기다렸던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을 영화관에서 처음 마주할 때가 아니라면 오히려 영화관에서 본 작품 자체에 대해 만족한 적은 별로 없다. 특히 친구와 함께 관람하는 영화의 경우 내 취향이 전혀 아닌 영화를 본 적도 어려 번이다. 하지만 내가 영화관을 좋아하는 것은 영화관이 주는 관람에 대한 ‘긴장’ 때문이다.


영화관은 집에서 편히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볼 때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영화관까지 걸어가는 시간, 이제는 자동 발권기에서 심지어 모바일 티켓으로 변경되었지만 고집스럽게 꼭 티켓을 종이로 발권받는 과정, 팝콘이나 커피 등 영화를 보며 먹을 간식을 구매하고 입장 줄에 서서 대기하는 모든 순간은 영화를 보기 위해 관객이 거쳐야 하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그리고 나는 이 일종의 의식에 참여하는 순간들을 좋아했다. 영화를 본다는 행위에 대한 긴장감을 상기시키고 싶을 때는 영화관을 찾아야 한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가는 길에, 나와 같은 영화를 본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한 마디씩 던지는 평가를 몰래 듣는 것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자만 누릴 수 있는 이점이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영화제 자원봉사를 할 때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상영관 장내에서 상영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입장 시 표를 검사하고, 착석을 돕고, 엔딩 크레딧이 모두 끝난 후 퇴장을 돕는 의식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최근에는 영화관을 자주 가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관과 내 사이에는 변함이 없다. 영화관은 내게 하나의 소울 플레이스이다.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곳, 원한다면 평화와 안정 그리고 설렘까지 찾을 수 있는 곳. 영화관은 내게 특별하다.

 


 

#침대 오른쪽 구석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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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자리에 들 때 정자세로 잠들지 못하고 항상 한쪽으로 돌아누워 비뚤어진 자세로 잠을 취하는 습관이 있다. 아마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을 것이다. 왼쪽과 오른쪽 중 나는 오른쪽 구석을 선호하는 사람으로 굳어졌다. 내 침대의 오른쪽 구석은 항상 내 공간이다. 나는 어느 장소이든 구석을 좋아하는 사람이며, 그중 내 침대 오른쪽 한구석은 나와 가장 친한 장소이다.


나는 침대와 아주 친하다. 오래 앉아있으면 좀이 쑤시고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할 일을 모두 마치면 잽싸게 침대를 찾는다. 그러면 나는 오른쪽 구석에 비스듬히 앉거나 누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한다. 침대 왼쪽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영화를 보는 게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혹은 핸드폰이나 노트북 혹은 아이패드로 플레이리스트를 재생시킨 후 가만히 음악을 들으며 누워있는다. 가끔은 오른쪽으로 누워 책을 받쳐 들고 읽기도 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친구와 전화를 하기도 하며, 생각이 많아지는 날은 더욱 벽쪽에 딱 붙어 애써 잠들려 노력하기도 한다.


내 침대 오른쪽 구석은 나를 가장 잘 아는 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방 그 다른 어떤 곳에서도 쌓을 수 없는 유대감이 있다. 그만큼 재미있었던 순간들도 많다. 지금도 내 침대 오른쪽에는 내 테디베어 인형이 방치되어 있고, 맥주를 조금 흘린 적도 있으며 온갖 잡다한 것들을 잃어버렸다며 찾으려 이불을 뒤엎은 것도 여러 번이다.


나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썼던 침대 프레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내가 클 것을 대비해서 초등학생 때의 내 키에 비하면 많이 크다 싶은 사이즈의 침대를 산 게 결과적으로는 옳은 일이었던 것이다. 물건에 크게 애착을 가지는 편은 아니지만 유독 내 침대만큼은 보내기 싫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와 함께하며 단 한 번도 악몽을 꾸지 못하게 해주었으니 좋아할 만하지 않나.

 

창피해서 이불을 걷어차던 어린 시절부터 술에 취해 들어와 화장도 지우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져 잠든 그 모든 시간의 역사를 함께 한 공간. 그래서 내 침대에는 내 일부가 담겨 있으며, 나는 한낱 가구를 이리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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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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