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I'm the real Claudine [영화]

글 입력 2022.03.13 16:2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지난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1908년 3월 8일, 미국에서 일어난 여성 노동자들의 참정권, 노동권 시위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2018년에 법정기념일로 공식 지정되어 5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많은 친구들이 자신의 SNS에 빵과 장미 이모티콘을 게시하기도 했고, 내가 다니는 학교의 공식 SNS에서는 여성 서사를 다룬 문화예술 콘텐츠와 여성 인물을 소개하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했다. 그리고 조금 늦었지만 나는 이곳에서 영화 ‘콜레트’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영화의 줄거리만 따라가며 내 생각을 적어보기엔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아 주제를 정해보기로 했다.

 

 

콜레트1.jpg

 

 

 

나름의 반전 영화


 

내가 영화를 고르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한가지는 ‘배우’이다. 좋아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는 (공포 영화를 제외하고) 챙겨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키이라 나이틀리’가 그 이유였다.

 

그래서인지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었던 ‘시대극’이라는 한 가지의 사전정보만 갖고 영화 감상을 시작했다. 나는 시대극에 대해 ‘전개가 느려 조금은 지루할 수 있고’, ‘잔잔한 음악과 대사가 주를 이룬다’라는 편견이 있었다. 특히 ‘콜레트’ 처럼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일 때, 그 편견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콜레트’는 그런 편견들을 모두 깨트린 영화다.


‘콜레트’의 가장 큰 특징은 ‘빠른 전개’와 ‘극적인 배경음악’이다. 등장인물 간의 갈등에 지치기도 전에 상황이 종결되고 또 다른 갈등이 시작된다. 하지만 상황을 뒷받침해주는 배경음악 덕분에 피곤해지기는커녕 뮤지컬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영화를 끝까지 감상한 후에도 머릿속에 깊이 남아 사라지지 않았던 음악을 남기며 첫 번째 주제를 마무리하겠다.

 

 

 

 

 

 

 

콜레트와 윌리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영화의 소재조차 알지 못한 상태에서 감상했기 때문에 로맨스 영화일 것이라고 착각한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하고 10분 후, 매끄럽게 흘러가기만 하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의 악역을 굳이 정해보자면 ‘윌리’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콜레트의 남편인 윌리는 그 당시의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다. 하지만 글을 직접 쓰지 않고 여러 명의 대필 작가를 두고 있다. 윌리가 하는 일은 한 손에는 시가, 다른 한 손에는 위스키를 들고 대필 작가들에게 스토리를 읊는 것뿐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브랜드’ 자체라고 말했지만, 그 브랜드는 윌리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콜레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각색해 펴낸 ‘학교에서의 클로딘’이 그의 작품으로 불티나게 팔릴 때도, 그는 단 한 번도 책의 주인이 된 적이 없었다.

 

 

콜레트4.jpg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콜레트와 윌리의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관계는 ‘둘은 정말 서로를 사랑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했다. 진실한 사랑처럼 보이는 장면도 분명 존재한다. 가령 콜레트가 윌리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를 쓴다던가, 윌리가 콜레트에게 집을 선물해주었을 때 말이다. 하지만 둘은 서로를 사랑한다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한다. 수도 없이 서로를 두고 바람을 피우고, 심지어 윌리는 콜레트를 방 안에 가두고 글을 쓰게 한다.


이렇게 외줄을 타는 듯이 이어지는 콜레트와 윌리를 보면 이 관계가 끝나기를 누구보다 더 간절히 바라게 된다. 긴 감정 소모를 끝내고 마침내 이혼하게 되었을 때는 알 수 없는 개운함을 느끼기까지 했다. 헤어짐을 고하는 콜레트에게 울면서 매달리는 윌리를 보고 진실한 사랑이 아니었다는 결론이 흔들릴 뻔했으나, 결국 변한 것은 없었다.


윌리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을지 몰라도 그 대상은 있는 그대로의 콜레트가 아니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말을 따르고, 자신의 뒤에서 글을 쓰는 콜레트, 그리고 ‘클로딘’으로서의 콜레트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니 콜레트가 클로딘이라는 껍질에서 벗어났을 때, 둘의 마지막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Are you happy?


 

어디에서나 우리를 알아봐 주는 사람은 있다. 콜레트에게는 ‘미시’가 그런 존재이다.

 


콜레트2.jpg

 

 

미시를 처음 만났을 때 콜레트는 화려한 삶을 살고 있었다. ‘클로딘 시리즈’가 연이어 폭발적인 대중의 반응을 끌어냈고, 연극으로 각색한 작품도 성공적이었다. 거리의 모든 사람이 ‘클로딘’의 이름이 새겨진 부채나 크림 같은 상품을 가지고 다녔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콜레트는 ‘클로딘’의 작가가 아니라 작가의 아내이다. 작가의 옆에서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동시에 윌리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다.


콜레트는 그런 삶에 만족하는 듯 보였다. 아니,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정받고 싶은 욕구, 내가 쓴 글을 내가 썼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자라났을 것이다.

 

그런 마음들을 알아봐 준 인물이 미시이다. 모든 사람이 테이블 위의 윌리를 바라볼 때, 미시만이 의자에 앉아있는 콜레트를 알아주었다. 함께 산책하며 미시는 진정한 작가가 누군지 바라만 봐도 알 수 있었다고 말하며 질문을 던진다.


 
‘Are you happy?’
 


콜레트는 대답하지 못한다. 행복하다고 느꼈던 삶이 사실은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시가 던진 한 문장의 질문을 시작으로 막혀 있던 댐이 터지듯 자신의 것들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진정한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연극배우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윌리와의 저작권 소송에서도 승소한다.


인상 깊게 봤던 영화 ‘우리들의 20세기’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Wondering if you’re happy is a great shortcut to just being depressed’

‘행복한지 따져보는 것은 우울해지는 지름길이다’

 

 

일상 속에서 나는 이 대사를 종종 떠올린다.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벅차게 느껴질 때,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너무나도 시끄러워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을 때.

 

행복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럼 당장 내게 주어진 몫을 해결하는 데에 아주 조금이지만 도움이 된다. 하지만 눈앞에 닥쳐온 일만을 바라보며 인생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10년, 20년, 3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나를 웃게 만드는 것, 나를 울게 만드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고민이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사람이 미시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긍정의 대답이든, 부정의 대답이든 상관없다. 답을 내린 그 순간부터 우리는 더 행복한 미래를 향해 출발한 것이다.

 

 

 

I am the real Claudine.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고 다시 돌이켜보니, 영화 ‘콜레트’의 모든 장면은 콜레트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콜레트3.jpg

 

 

사실 영화 초반부, 콜레트는 ‘콜레트’라고 불리지 않았다. 그녀는 ‘가브리엘’이었다. 양 갈래로 머릴 땋고, 윌리에게 순수한 사랑의 편지를 쓰는 소녀였다. 그녀가 처음으로 쓴 소설이 ‘너무 여성적이고 감성적’이라는 윌리의 말에 소설 표지의 이름을 지우고 성만 남긴다. 콜레트의 첫 등장이었다.


콜레트는 자신의 삶을 투영하여 ‘클로딘’이라는 캐릭터를 창조한다. 활자로만 존재했던 클로딘이 연극배우에 의해 3차원의 세상에 나타나고 대중들의 환호를 받는 모습을 보며 질투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머리를 자르고, 옷차림을 바꾸어 클로딘을 연기했던 배우의 모습을 따라 한다.

 


common.jpg

 

 

하지만 콜레트가 원했던 것은 외형적으로 클로딘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클로딘은 따라 할 수 있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콜레트의 모든 감정, 생각, 추억을 담은 그녀 자신이었다.


윌리에게 자신이 진짜 클로딘이라고 말한 후, 콜레트는 오히려 자유로워진 것 같다. 자신을 옭아맸던 윌리를 벗어나 단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무대로 오른다.

 


스크린샷 2022-03-12 오후 12.53.35.jpg

 

 

영화 초반부, 콜레트는 유리창을 긁어 윌리의 이름을 새긴다. 유리창 밖에서 본 콜레트의 얼굴은 윌리의 이름에 가려져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남성과 출판사에 인기가 있도록 각색하는 윌리를 보고 콜레트는 불편해한다.

 

하지만 그런 콜레트에게 윌리는 ‘역사를 쓰는 건 펜을 든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이 글을 쓰며 드는 생각은 윌리의 말이 맞았다는 것이다. 콜레트는 펜을 들고 역사를 썼다. 그리고 펜을 들고 유리창을 깨트렸다. 자신을 가리고 있었던, 윌리의 이름이 새겨진 그 유리창을 넘어 세상 밖으로 날아갔다.

 


콜레트5.jpg

 

 

가브리엘과 콜레트, 작가와 클로딘, 클로딘과 연극배우. 다양한 정체성의 사이에서 그녀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냈고 이루었다. 아마 그녀가 끊임없이 도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콜레트가 언제나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녀는 앞으로 나아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과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특별한 목표가 없어도 괜찮다고. 앞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언젠가 유리창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김민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