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간 홈 무비토크

글 입력 2022.03.1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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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늦봄부터 친구와 나는 주마다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고 둘만의 무비토크를 하고 있다. 생각보다 꾸준히 이어진 이 소소한 주간 모임은 코로나 시국 아래 친목 도모의 어려움과 문화생활에 대한 갈증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친구가 줌으로 매주 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건 어떻냐는 제안을 해 왔을 때, 우리의 일상은 코로나 시국의 영향으로 크게 제한받고 있었다. 청년층인 우리는 아직 백신을 맞기 전이었으며, 상대적으로 경증도 발병률이 높은 오미크론과 달리 중증도 발병률이 높은 변이 바이러스가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정부의 방역 지침상으로도, 우리의 심리적 압박감 상으로도 ‘위드 코로나’ 시국이 된 지금보다 더 만남이 부담스럽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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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 만남에 대한 부담감은 문화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원래도 혼밥, 혼영(혼자 영화 보기), 혼자 전시 보기도 잘하는 나였지만 내가 선택해서 하는 것과 친구와 만나 문화생활을 같이 누리는 것 자체가 버거워 매번 혼자 보기만 하는 것은 영 다른 문제였다. 영화나 전시를 혼자 보러 가는 빈도 자체도 줄어들어 문화예술 애호가로서 목이 말랐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런 제안을 해 온 걸 보면. 듣자마자 나는 너무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주간 무비토크’는 Ott 서비스 등을 통해 각자 같은 영화를 보고, 시간을 정해 그 영화에 대한 감상을 자유롭게 나누고, 평균 한 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눈 후 자연스럽게 다음 영화를 정하는 순서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감상하고 얘기한 영화가 벌써 스물다섯 편 가량 쌓였다.

 

코로나 이후 줌으로 참여하는 독서토론도 해봤지만 주에 지정된 책 한 권씩을 꼬박꼬박 읽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반면 영화는 길어도 세 시간이고 서사와 영상미가 함께 있어 몰입하기도 더 쉽다. 무엇보다 둘이서 직접 고른 영화들이라 흥미가 쉽게 갔다. 북클럽과 달리 참여 인원이 둘 뿐이니 시간 정하는 문제도 자유로웠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 이미 친밀한 관계, 영화를 고를 때 극명한 취향 차이가 없다는 것과 시간 약속의 자유로움 등이 이 영화담을 계속 이어지게 하는 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외적인 이유 외에도, ‘영화 보고 말하기’ 자체가 주는 이점이 아니었다면 아마 무비토크를 25회 이상을 거듭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짧게는 한 시간에서 길게는 두 시간 동안 친구와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얻는 것이 쏠쏠하다. 먼저, 혼자서는 보기 힘들었던 영화를 보게 되는 점이 그렇다. 전부터 보고 보고 싶었지만 미뤄두고 있던 영화, 내용이 심오하거나 소위 ‘기 빨리는’ 영화일 게 뻔해서 선뜻 재생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던 영화 등을 ‘같이 보고 얘기하기로 약속’을 해 놓으니 틀어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본 적 있지만 누군가와 꼭 감상을 나누고 싶었던 영화를 추천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만족감도 컸다. 친구의 추천으로 내가 모르던 영화를 알게 되거나 관심 밖에 있던 옥석을 맞이하게 되는 행운도 따라온다. 이 시국에 뭔가를 다른 이와 꾸준히 하고 있다는 성취감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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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얘기하며 얻는 통찰, 같은 소재에 대해 타인의 시각을 듣는 재미, 나는 여상하게 지나친 부분에 친구는 감명을 받기도 한다는 사실. 내 눈에 혹은 친구의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상대의 말을 듣고나서 새롭게 보이는 일. 그런 것들이 ‘영화 보고 말하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혼자 영화를 보는 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인물의 어떤 행동이나 심리, 연출 의도 같은 것을 둘이서 계속 퍼즐을 맞추고 풀 듯 이야기하며 둘만의 답을 찾는 과정도 쫄깃한 재미가 있다. 영화 속에 나온 사회문제에 대해 논하다가 그 문제에 대해 평소 가져온 의견을 나누는 일도 우리의 사고를 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이렇게 하니 영화의 감상이 더 깊어지는 건 물론이고 기억도 더 오래간다.

 

주간 무비토크를 하며 느낀 건 논쟁거리가 있는 영화가 이야기하기 좋다는 것이었다. 킬링타임용 sf 액션 영화는 이야깃거리가 좀처럼 파생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비판의 대상이나 메시지가 명확한 영화 역시 말할 거리가 다채롭게 나오지 않았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상을 잘 몰라서 공감하기 힘든 영화 역시 이야깃거리가 적었다. 이 경우 논쟁거리 자체를 못 잡아내는 일도 생기기 때문이다. 반면 인물의 가치관, 행동의 의도가 모호하거나 옹호와 비판의 여지가 팽팽한 영화, 주제 자체가 논쟁적인 영화, 혹은 부러 또렷한 결말을 주지 않는 영화가 상대적으로 얘기할 거리가 많았다. (번외로, 아쉬운 점이 많은 영화 또한 할 말이 넘친다.)

 

우리 무비토크의 경우 전자의 영화로는 탐 크루즈 주연의 <오블리비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가 영화의 호불호와 별개로 이야기가 다양하게 나오지 않는 작품이었다. 물론 <판의 미로>는 엔딩 해석에 대한 이야기-결국 그 모든 것이 환상이었는가, 실제였는가 하는 논의-와 감독의 의도에 대해 진지하게 논하기는 했지만 ‘우리 더 이 영화에 대해 뭔가 얘기할 게 있을까?’라고 물었을 때 그에 대한 답, 즉 또다른 화젯거리가 뿜어져 나오는 영화는 아니었다.

 

반면 대화가 끊기지 않는 영화-즉, 후자의 영화는 단연 <케빈에 대하여>였다. 케빈과 에바의 관계, 하필 그 둘이 모자로 만난 것, 하필 케빈이 첫 아이였던 것, 모성이라는 개념, 에바가 케빈에게 준 불안과 케빈이 에바에게 준 불안, 둘 사이에 도대체 무엇이 먼저 잘못되었는지, 그것을 따지는 게 의미는 있는지 등등. 우리 둘은 머리를 부여잡고서도 계속 그 영화에 대해 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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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영화 보고 말하기’는 그 자체로 인풋이자 아웃풋이었다. 감상한 영화 편수가 쌓일수록 우리의 대화도 쌓였고 영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도 쌓였다. 코로나 시국 아래서 문화를 향유하고 사색을 주기적으로 ‘생산’하며 친구와의 유대감 또한 쌓아나간다. 이미 몇 해를 알고 지낸 친구에게 새로운 면이 있다는 것을 무비토크를 통해 알아간다.

 

위드 코로나 시국이지만 여전히 코로나로 인한 피해가 결코 가볍지 않은 지금 시국에서, 친구와 함께 이런 취미생활 겸 일상을 공유해 보는 것은 어떠한가? 한 해에 얼굴 두 번 보면 정말 친한 거라는 소리도 듣는 바쁜 현대인으로서, 코로나 시국이 끝난 후에도-부디 그 시간이 빨리 오길!- 유지할 수 있는 취미이기도 하다. 친구와의 홈 무비토크. 나는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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