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람도 꽃처럼 다시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다복한 봄을 맞이하는 찬실의 해빙기
글 입력 2022.02.2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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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맹랑하다. 한 개인의 예상을 뛰어넘는 허망과 묘함이 지뢰처럼 곳곳에 묻혀 있다. 그것이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김초희, 2020)>의 장르가 드라마이면서 멜로이고 판타지인 이유다. 극뿐만 아니라 우리네 삶에서도 환상과 사실이 교차한다. 흔히들 꿈에서 깨어 생시를 누비라고 한다. 하지만 꿈의 유의어이자 현실의 반대말인 이상조차도 개인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지금은 가상일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품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현실을 살아가는 게 아닐는지.

 

인생은 아름답다. 허허롭다가도 한 개인의 예상을 뒤엎을 갸륵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김초희 감독의 자전적 인물인 찬실(강말금 분)의 행위가 기행(奇行)처럼 보이다가도 용인될 수 있는 까닭은 성취의 쾌락을 향해 달려온 그녀에게 매우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는지. 영화와 관객의 동화(同和)는 이 작품이 재작년 초봄에 개봉되어 동년 늦가을에 재개봉한 사실이 방증한다. 이 작품을 통해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부일영화상 등에서 수상한 강말금 배우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서른, 아홉> 등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마치 현실판 찬실의 성공기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봄날이 오리라 스스로 격려하고 싶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찬실도 동의할 것이다. 그녀의 처절한 해빙기가 꽤 경쾌했음을. 역설적이게도.

 

 

 

 

S#1. 종단 연구

 

찬실이 복이 많은 이유는 졸지에 달동네 신세가 된 그녀에게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극 초반 찬실의 이삿짐을 옮기려 오르막길을 오르던 후배들이 극 후반 찬실과 전구를 사러 내리막길을 자처한다. 그들의 종단(縱斷)은 막막한 앞길에 같이의 가치를 전해준다. 종단(終端)에서야 영화를 함께 만들자는 후배들의 말은 그저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찬실에 대한 예찬론이고, 자신도 겪어야 할 통과의례를 모범적으로 치르고 있는 선배에 대한 응원이자 종단 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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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열민(제작부3·이도윤 분), 시영(제작부2·길도영 분), 동직(제작부1·강태우 분), 이찬실(강말금 분) / 출처=<찬실이는 복도 많지> 네이버 영화 스틸컷

 

 

찬실에게 그들은 꿈의 채권자이기도 하다. 동력(同力)의 채근으로 찬실의 멀어져가는 서사를 조명하는 빛이다. 언젠가 다시 시작할 꿈이 지금은 비록 다 된 전구처럼 꺼져가고 있지만 찬실은 낮에는 햇빛에, 밤에는 아스라한 달을 바라보며 버티고 있다. 영화 작업의 용의를 밝힌 후배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염두에 두고 운을 떼었을지라도 당장 대뜸 무해한 힘을 불어넣는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Tomorrow is another day,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빅터 플레밍 감독, 1939)>)”

 

 

S#2. 열려라 참깨!

 

찬실은 상황을 직면한다. 그녀는 인생의 혹한기를 피하지 않아 복을 놓치지 않았다. 시련을 극복하면 그것으로 행복하지 아니한가. 동종업계에서 꽤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박 대표(최화정 분), 딸의 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주인집 할머니(윤여정 분), 이름대로 걱정 없이 살아가려는 근심 소(㥰)와 피할 피(避)의 여배우 소피(윤승아 분)는 찬실의 기질을 더욱 단단하게 해준다.

 

이는 석연하지 않은 명제인가. 중동 지방의 더운 날씨에도 쉽게 썩지 않는 참깨의 특성을 주술적으로 여긴 사람들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주문으로 활용했다고 답한 지존 등급 지식iN 사용자의 발언처럼. 찬실이 영화로 향하는 문을 닫고 여는 과정에서 이 세 명의 여성이 그녀의 홀로서기를 지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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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최화정 분) / 출처=<찬실이는 복도 많지> 네이버 영화 스틸컷

 

 

누구의 스태프도 아닌 찬실이어야 했다. 믿고 따르던 감독이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르자 찬실은 자신이 대체 가능한 소모품이었음을 알게 된다. 영화 제작사 박 대표는 찬실이 없어도 완성될 작품이라고 말한다.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 찬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소리다. 모든 고통의 주범은 감독,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의 죽음을 이끈 결정적 원인이지만 그 누구의, 무엇의 탓도 할 수 없다. 감독 아래서 좋은 작품에 참여하고 있으니 귀납적으로 당시의 답습이 미래를 보장해줄 거란 착각에서 깨어날 차례인 것이다. 박 대표의 말은 찬실의 성장을 위한 필요의 좌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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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윤여정 분) / 출처=<찬실이는 복도 많지> 네이버 영화 스틸컷

 

 

이제는 자아 성찰과 독립을 위한 근면의 시간이다. 찬실은 두 종류의 집, 두 개의 방과 얽힌 두 인물을 축으로 변화를 겪는다.

 

들어오지 말란 팻말 같은 건 못 봤는데도 나는 그 속을 금단의 지역처럼 느꼈다(박완서, <엄마의 말뚝>)는 문장이 어울릴 법한 장소에서 임대인 할머니와 찬실은 시 창작으로 각자만의 상실을 메워간다. 이를 계기로 할머니는 지금은 그녀의 곁을 떠난 딸의 방을 찬실로 하여금 드나들 수 있게 허락한다. 사람도 꽃처럼 돌아오면은 얼마나 좋겠냐던 할머니의 싯줄은 찬실의 묵은 감정을 눈물로 해소할 수 있는 시점이 되었다. 일터에서의 이해관계가 침해하지 않아 잠시라도 안식할 수 있는 공간에서 찬실은 할머니의 가족이 되어 간다. 기거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그녀만의 것을 발견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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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소피(윤승아 분), 이찬실(강말금 분) / 출처=<찬실이는 복도 많지> 네이버 영화 스틸컷

 

 

셋방살이 중에도 자신의 시나리오를 전개해 나가는 찬실은 여배우 소피의 가사도우미로 일하며 청소라는 정화의식을 거친다. 단순히 밥줄이 아니라 네티즌에게 연기력을 지적받은 소피의 벗으로 서로의 무게를 덜어주며. 살림에는 신경 쓰지 않고 배우로서의 일과 수업에 집중하는 소피는 걱정하지 않기 위해 몸을 부단히 움직이는 사람이다.

 

소피는 단점을 비우지 않고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기 위해 장점을 더 채우려 하는 불균형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녀의 영화에 대한 애정은 찬실 못지않아서 외부에 대한 대응방식이 다름에도 둘은 이해한다. 정리정돈과 흐트러짐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며. “여성이 픽션을 쓰려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A woman must have money and a room of her own if she is to write fiction, <자기만의 방(버지니아 울프, 1929)>).”

 

 

S#3.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찬실에게 있어 의문투성이인 두 남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중화권 스타 장국영(張國榮·김영민 분)은 환영으로, 소피의 프랑스어 선생님이나 단편 영화감독인 김영(배유람 분)은 실제로 그녀에게 다가온다.

 

찬실의 심장을 10년 만에 뛰게 한 김영은 그녀와 달리 영화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우정과 사랑 등 영화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다고 한다. 일상적이고 보편적이지만 개인적인 서사의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小津 安二郎)를 선호하는 찬실과 저작 <인셉션>, <인터스텔라>로 알 수 있듯 거대한 세계관의 크리스토퍼 에드워드 놀란(Christopher Edward Nolan)을 지향하는 영의 담화는 알쏭달쏭하게 이어질 법하면서도 끝내 이뤄지지 못한 찬실의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섬세하지만 자칫 고집스러울 수 있는 찬실에게 그는 이변이었으나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던 그녀에게 일시적 고온 다습을 안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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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영(배유람 분), 이찬실(강말금 분) / 출처=<찬실이는 복도 많지> 네이버 영화 스틸컷

 

 

맘보춤이 절로 떠오르는 흰색 러닝셔츠의 장국영은 찬실에게 말을 건넨다. 귀신인 그는 그녀의 고민을 들어준다. 혼자만의 단상이나 고뇌를 사람에게 풀기엔 너무나 어른인 마흔의 찬실은 그의 존재를 기다렸다는 듯이 수용한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게 문제라는 장국영의 답은 꽤 효험이 있었고 멀리 우주에서도 그녀를 응원하겠다는 그의 다짐에 퍽 가슴이 아린다.

 

그가 찬실에게 찾아온 이유와 찬실이 그를 볼 수 있는 까닭은 극 중에서 기술되지 않는다. 다만 짐작한다. 영화관의 유일한 관객인 그가 기립 박수를 보내는 마지막 장면은 비애로 가득한 채 필리핀의 초록 숲을 걸어 나가던 아비의 뒷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선물처럼 등장하여 찬실의 희비를 윤색하고 영화인으로서 못다 한 생애를 찬실의 숨으로 소생하는 그의 시절은 창작자의 영혼이 담긴 예술이 영원하길 바라는 김초희 감독의 염원이 아닐까. “1분이 쉽게 지날 줄 알았는데 영원할 수도 있더군요.(<아비정전(阿飛正傳·왕가위,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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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김영민 분) / 출처=<찬실이는 복도 많지> 네이버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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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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