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원히 나의 몸에 새겨져 있을, 나의 타투 [사람]

- 나의 첫 타투에 대해, 나의 타투를 본 사람들의 말에 대해
글 입력 2022.02.2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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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타투는 가장 불안하고 위태로웠던 나의 스물둘에 새겨졌다. 자주 울고 자주 무너져내렸던 나의 스물둘, 나의 타투들은 다 스물둘의 나를 닮았다. 나의 첫 타투에 대해 그리고 나의 타투를 본 사람들 말에 대해.


나의 첫 타투는 어릴 적 방문 교사 선생님께서 문제를 맞히면 동그라미를 그렸던 빨간색 색연필의 색과 가장 닮아있다. 열두 살 즈음, 와인색보다는 밝지만, 빨간색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어두운 붉은색의 니트를 입었던 날, 거울 속의 내가 어색하게만 느껴졌었다. 어릴 적부터 푸른색을 너무 좋아해서 가장 좋아하던 옷도 연하늘색 스트라이프 원피스였고 푸른색 옷들을 즐겨 입던 내게 붉은색은 당연히 낯설 수 있는 건데. 내게는 그때 마주했던 내가 너무나도 어색해서, 그 낯섦에 겁을 먹어 나는 그날부터 붉은색을 싫어하게 되었다. 머리를 물들일 때도, 새로운 니트를 살 때도 절대 붉은색은 없었는데 내 몸에 영원히 새겨지는 거로 빨간색을 선택하다니, 내가 절대 하지 않을 선택 중에 하나를 이미 내 인생에 한 셈이다. 스물둘의 나는 ‘사랑’이라는 개념을 무척 사랑했고, 사랑을 사랑하다보니 자연스레 빨간색은 내가 극도로 원하는 색이 되어버렸다.

 

낮은 덥고 밤은 차가운 바람이 불던 4월 마지막 째주 목요일, 친한 친구로부터 고교 시절에 같은 반이었던, 특이하게 연필을 쥐고 그림을 그리던 친구가 타투샵을 열었으니 같이 가자는 연락이 왔었다. 당시 401 강의실에서 재봉틀로 셔츠를 만들고 있었던 나는 대충 박음질을 하다가 강의실을 나와 친구의 타투샵으로 향했다. 딱히 하고 싶은 도안도 하고 싶은 색도 없이 나는 타투샵 문을 열고 어색한 인사와 함께 소파에 앉아서 그간 소식을 나누었는데,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베드에 누워 타투를 받고 있었다. 온 김에 하라는 친구들의 말에 결국 나는 인스타그램에 타 투도 안을 쳐 몇십장의 사진을 내려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다. 해파리를 좋아하니 해파리를 새겨놓을까 했지만 타투로 새겨진 해파리가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졌고 파도를 그리려니 마음에 드는 파도가 없었다. 몇 번을 그만두자는 말이 나왔지만 내게는 갑자기 원이 떠올랐다. 나는 친구들이 직접 그려준 원으로 하고 싶어, 전사지에 친구들이 왼손으로 그려놓은 원들 중 하나를 골랐다. 처음에는 푸른색으로 하려고 했으나 빨간색에 완전히 빠져들어 있던 나는 빨간색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완전히 동그라미도 아닌 한쪽은 조금 각지고 둥근 삼각형 같기도 한 나의 빨간색 원 타투.

 

타투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갔다가 충동적으로 새겨버린 원 타투, 전부터 한 번쯤은 타투를 꼭 해보고 싶었기에 기분은 좋았으나 그 후 잠깐동안은 꽤나 힘들었다. 며칠 동안은 부모님께 숨길 수 있었지만, 독립을 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먼저 말하거나 들키거나 언젠가는 타투를 보게 되실 것을 생각해 나는 전자를 선택했다. 차라리 혼내셨으면 반항심에 심술이라도 부리고 마음이 많이 힘들지 않았을 텐데, 나의 타투를 보여주자 엄마는 덜컥 울어버리셨다. 아빠도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 나의 타투를 보시고 상처받은 얼굴을 하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심술을 부릴 수도 괜찮지 않냐며 어떠한 장난도 칠 수 없었다. 이미 나는 부모님을 잘 알고 이러하실 거라는 것도 잘 알고 있어서 말을 하기 전부터 며칠간 살이 몇 킬로 빠질 정도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부모님의 눈도 잘 보지 못했는데 결국 나는 말하고 나서도 며칠간 밤에 목놓아 울고 자고 있는 엄마 품에 안겨 또 울었다. 다행히 시간은 약이라는 말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에는 나의 팔도 잘 못 보겠다던 나의 엄마도 이제는 나의 팔을 보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타투에 대한 장난도 치시게 되었다. 그때는 이 타투를 나는 나의 돈을 모아서라도 지우려고 했으나 수용하는 나의 부모님과 이 타투에 대한 애정으로 결국 나는 아직까지는 지우기보다는 계속 가지고 살 생각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이걸 왜 한 건데.”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게 없었는데 원이 떠올라서 그냥 했어라고 말을 할 수 없어서 나는 거창한 변명을 세웠다. 스물둘의 나는 위태롭고 불안해서 뾰족하게만 느껴져서 둥글게 원처럼 살고 싶어서 원으로 했다고, 나는 붉어진 코와 눈으로 소심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 뒤로도 이 타투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원처럼 살고 싶다고 말을 하거나 그냥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얘기했다. 타투에 의미를 담지 말라는 말들이 있지 아니한가. 의미부여를 좋아하는 나지만 나는 이 말에는 동의한다. 의미를 담은 타투는 결국 질리게 되어있거나 그 의미가 사라지거나 의미가 의미 없어지는 경우들이 있으니.

 

나는 이 타투가 마음에 드는 이유가 세 가지 정도 있다. 하나는 어설픈 원 모양이 스물둘의 어설프고 위태로웠던 나의 모습을 닮아 마음에 들고, 친구가 해준 타투라서 의미가 깊어서 마음에 들고, 정면에서 봤을 때 반으로 보이는 원이 마음에 든다. 한 가지 더 있는데, 하나는 지금은 다시 푸른색이 좋아져 버렸지만 전처럼 붉은색을 싫어하지는 않게 만들어주어서 이 타투가 마음에 든다. 나의 타투가 귀엽다는 말들도 들었고 흉터 같아 보인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나의 타투가 마음에 든다. 남들의 눈을 의식하면 타투에 대한 마음이 금세 시들 수 있기 때문에 타투를 받고 난 후라면 나의 타투에 대한 애정을 심어두고 남들의 말에 혹은 남들의 시선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말에 의식해 마음이 흔들릴 것 같다면 타투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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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붉은색 원 타투와 친구가 올려둔 버드와이저의 뚜껑

 


타투를 하고 나서 바뀐 것이 있다면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변화가 가장 크다. 타투 있는 사람 어때라는 말이라던가 나 타투 있는데 괜찮아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 타투가 조금 있는데 괜찮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내가 이 말들을 하는 건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나는 타투가 있으니 싫으면 말을 너의 의사를 밝히고 이야기를 나누지 말자는 의미와 네가 싫다면 너의 앞에서는 가리겠다는. 그런 의미. 서로 맞춰가는 거다. 요즘은 타투를 많이 하기도 하고 타투는 자기표현, 패션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타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주변에 더러 있다. 타투를 싫어해서 고지식하다던가 그런 투로 사람을 덮어씌우면 안 된다. 타투는 자기만족이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건 당연하니까, 그저 가치관이 다른 것뿐이다. 킴 카다시안 웨스트는 벤틀리에 스티커 붙이는 사람 봤냐며 자신의 타투에 대한 생각을 표현했는데 여전히 그녀는 시대에 흐름을 이끄는 인플루언서이고 고지식하거나 하지 않다. 타투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렇구나, 하고 타투에 대해서 말을 안 나누면 된다. 굳이 그 사람을 바꾸려 하지도 말고 나의 신념을 바꾸지도 않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자.

 

 

[김명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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