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작품집의 매력
고등학생 시절 막 문학을 사랑해보겠다, 다짐했을때 (다짐으로 될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나는 도대체 어떤 책을 골라잡아 읽어야 하는지 몰랐다. 세상에 책은 너무 많았고, 이름만 들어본 작가의 작품, 베스트셀러 작품 등을 다 읽어 보기에 내가 문학에 투자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만났다. 매년 4월 문학동네에서 출판하는 젊은작가상은 젊은 작가들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문학동네에서 2010년에 제정한 문학상이다.

요즘은 한국 작가의 소설 혹은 고전 문학만을 편식해 독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단편 소설 특유의 꽉 찬 전개를 좋아하고, 이야기 중심 서사보다는 문체의 느낌과 전반적인 이미지를 중요시 하니, 당연히 외국 작가들의 단편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닐 거라 생각했다. 번역 과정에서 흐려지는 작품의 느낌 때문에 분량이 번역된 짧은 단편소설은 몰입해 읽기 어려웠다.
파리 리뷰는 '작가들의 꿈의 무대'라 부르는 미국의 문학 계간지이다. <타임>으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라는 격찬을 받았다.
1953년 출판과 문학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에서 창간했 으며, 이후 70여 년 동안 과감한 편집과 비평, 인터뷰로 새로운 문학을 이끌고 있다. 지금 까지 발간된 잡지들을 모두 책꽂이에 꽂는다면, 그 길이만 3.6미터에 이른다.
노벨문학상, 퓰리처상, 부커상 등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받은 작가뿐만 아니라 작가의 경력 이나 출신국, 성별,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편집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파리리뷰>의 인터뷰에는 지금까지 헤밍웨이, 하루키, 마르케스, 밀란 쿤데라를 비롯한 수백 명의 작가가 거쳐갔다. <파리 리뷰> 의 인터뷰는신간이나 작가 홍보를넘어서 소설 기법과 글쓰기방식, 삶에 관한 진솔한 이 야기까지 이끌어내어 하나의 문학 장르라는 평가를 들을 만큼 명성이 높다.
<파리 리뷰>가 문학의 '실험실' 이라 불리는 이유는 작가의 경력이나 출신국, 성별,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포괄적이고 과감한 편집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이 책에 실린 작가, 작품들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데니스 존슨, 조이 윌리엄스, 레이먼드 카버, 이선 캐닌 등의 뛰어난 작가의 작품이 이 책에 실려 있다.
구성과 특이점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의 선정 배경도 이 책에 대한 신뢰를 더한다.
<파리 리뷰>는 가장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이룬 단편소설을 결산하기 위해 세계적인 명성의 작가들에게 특별한 질문을 했다. <파리 리뷰>가 지난 반세기 동안 발표한 단편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고르라는 것이다. 또 왜 그 소설을 탁월하다고 생각하는지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모든 빗방울의 이름을 알았다>는 그중 열다섯 명의 작가들이 선택한 작품을 뽑아 만든 단편 선집이다.
한 작품당 구성은 다음과 같다. 단편소설 작가 약력과 작품 본문, 그리고 이 소설을 선택한 작가의 약력과 해설지로 한 작품을 끝낸다. 총 서른 명의 글이 책에 쓰여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계적 작가들의 해제를 읽는 즐거움이 있었고, 문학 학습도 되었다. 장르의 대가들이 그 소설을 가장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이유를 서술한 해재 덕분에 문학을 더 깊이 있기 이해하고 탐구할 수 있었다.
어렴풋한 시간, 그리고 일기들
처음 보는 작가들이 많았다. 확인해 보니 국내에는 책이 단 한 권도 번역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이 대다수였다. 낯선 작가들의 작품에서 반짝이는 문장을 발견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조이 윌리엄스의 <어렴풋한 시간>을 특히 오래 읽었다. 불운한 소년의 시간과 공간을 내 앞에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의 감정선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스티븐 밀하우저의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읽으며 환상의 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역시 이런 것이 작품집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소설은 일기 같고, 어떤 소설은 매력적인 작위성을 가진 소설 같다. 또 어떤 작가는 여성이며 다른 작가는 남성이고, 어떤 작가는 흑인이며, 어떤 작가는 백인이다. 살아온 환경과 삶이 다양한 이 소설가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나의 세상도 무한히 확장되었고, 해외 소설의 매력을 느낀 건 당연하다.
한국 소설가들의 소설만 읽어온 독자들, 그리고 해외 단편 소설은 한국 독자의 취향이 아닐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한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이 소설은 한국 독자들이 외국 소설에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한 구성이며, 뛰어난 작가들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담았다.
사랑받는 일은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머리카락과 다리가 길어졌다. 개울 속 돌멩이처럼 치아에 이끼가 꼈다. 바다 옆에서 빵을 먹고 부스러기는 물에 던졌다. 세계는 맬의 잿빛 묘지였고 비는 수의처럼 희끄무레 한 하늘에서 바다로 곧장 떨어졌다. - 조이 윌리엄스, <어렴풋한 시간>
사실 우리는 미룰 수 있는 모든 것을 미루며 살아간다. 어쩌면 모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우리가 불멸이며 조 만간 모든 인간이 모든 일을 할 수알 수 있으리라고 믿는지도 모른다. - 호르헤 루에스 보르헤스, <모든 걸 기억하는 푸네스>
사람들에겐 평등한 권리도 없다는 것, 그게 바로 그녀가 그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다. 하지만 몇 분 토론하 고 나면 자신이 부족하다는 느낌에 압도되면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그는 그녀가 유리 상자 안 에 든 뭐라도 되는 것처럼 잠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하던 일로 돌아갔다. - 에번 S. 코널 <브리지 부인의 상류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