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짧지만 강렬한 타임머신, 옛 노래들 [음악]

글 입력 2021.12.2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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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매회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뜨거운 화제성을 입증하고 있는 <싱어게인2>를 보며, 나는 참가자들의 노래 실력에 탄복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한결같은 나의 음악 취향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싱어게인2>가 오디션 프로그램인 만큼 시청하는 동안 다양한 노래를 감상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유독 나의 마음을 움직였던 노래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노영심의 '그리움만 쌓이네', 배따라기의 '그댄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장필순의 '어느새', 이용의 '잊혀진 계절', ···

 

그렇다, 나는 옛날 노래를 매우 좋아한다. 어린 시절 아빠가 운전하시는 차를 타면 항상 듣던 옛날 노래들을, 언젠가부터 더 이상 내가 즐겨 듣는 최신 노래로 바꾸고 싶지 않아졌다. 어린 마음에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아빠의 플레이리스트 속 노래들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던 때가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될 무렵이었다. 그때를 시작으로 나는, 부모님이 깜짝 놀라실 정도로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의 노래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옛날 노래에는 요즘 노래에서는 느끼기 힘든 특유의 감성이 있다. 그래서 옛 노래를 들을 때면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기분이 들곤 하는데, 응답하라 시리즈 드라마를 볼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마치 내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과거로 가서 그 시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 지금은 느낄 수 없는 그때만의 감성과 분위기를 만끽하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4분 남짓한 시간 동안의 타임머신은 후유증이 크다. 음악이 끝나고 나서도 그 여운이 쉬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음악 감상 패턴을 과거에서부터 더듬어 보면, 다양한 장르의 노래 사이를 돌고 돌아 결국 한 곳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름대로 내가 모으고 모은 옛 노래들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나에게 옛날 노래는 '회귀'의 의미가 있다. 그만큼 나는 그 노래들에 권태를 느낀 적이 없고, 오히려 돌아왔을 때 좋아했던 이유가 더 선명히 떠오르면서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 들곤 한다.

 

물론 단번에 먼 과거일 수 있는 70년대, 80년대에 나온 노래가 마음에 와닿기는 힘들다. 나 역시 그랬었다. 하지만 한 번 '어라?'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 수 있음을 말해주고 싶다. 그때부터 비슷한 노래들을 검색하고 찾아보며 옛날 감수성을 놓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짧지만 강렬한, 옛 노래라는 타임머신에 탑승해 보자.

 

 

 

사랑은 유리같은 것 

원준희



  

 

1988년에 발표된 곡으로, 발매와 동시에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가녀린 듯하면서도 강단 있는 목소리와 함께 단순해 보이지만 들을수록 마음에 와닿는 가사, 청아한 고음이 어우러져 처음 듣자마자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직행한 곡이다.

 

특히, '슬픔은 잊을 수가 있지만 상처는 지울 수가 없어요. 오랜 시간이 흘러도 희미해질 뿐이에요.' 가사가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기억이 있다. 또, 누군가 '아련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내게 묻는다면 백 마디의 말 보다 이 곡을 재생해서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특유의 아련하고 애틋한 분위기가 있다.

 

내가 이 노래를 한층 더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시기는 영화 <벌새>를 관람한 직후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영화에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올 때의 기분이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난 것만큼 반가워서 괜스레 울컥하기까지 했다.

 

그 이후로 들을 때마다 종종 <벌새>의 은희가 떠오르는데, 그래서 더 폭넓게 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듯 하다.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오석준



 

 

마찬가지로 1988년에 발표된 곡이지만, 드라마 <응답하라 1988>과 영화 <도굴>에 OST로 삽입되어 젊은 세대가 찾아 듣는 음악으로 자리 잡았다.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주는 전주와 기교 없이 담백한 목소리도 나의 취향을 저격했지만, 이 노래의 킬링 포인트는 '연서 같은 가사'라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아직 이보다 더 다정하고 설레는 가사가 담긴 노래를 찾지 못했다.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함께 이 노래를 들으며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둠이 음악 사이로 흐르듯 다가오는 밤

찻잔을 매만지는 그대의 손끝에 눈길이 멈추어지네 

살며시 기대어오는 조그만 그댈 느끼면

달콤한 그 숨결은 노래가 되어 귓가에 머물다가네

그대가 들려준 훈훈한 주변의 얘기가 내 마음 편안하게 해

괜시리 부담스런 지난 하루 기억들 웃음 속에 사라져가네

이대로 거짓 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대를 사랑해

말없이 믿으면서 오가는 두 마음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언제나 해맑은 그대 다정한 속삭임 모든 것 새롭게하지

어느덧 멈춰버린 우리만의 시간은 찻잔 속에 녹아 흐르네

이대로 거짓없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대를 사랑해

말없이 믿으면서 오가는 두 마음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말없이 믿으면서 오가는 두 마음 우리들이 함께 있는 밤

 

 

 

기다려줘

김광석


 

 

 

어릴 적 아빠의 차에서 들은 노래 중에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김광석 노래.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아빠처럼 김광석의 모든 노래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했지만'으로 시작해,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날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지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나의 노래'를 비롯한 그의 음악 모두 다.

 

그의 노래 중에서 나는 '기다려줘'를 가장 많이, 자주 듣는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내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 혹은 짝사랑하는 상대가 떠오른다. 그 상대는 연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가족이나 친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대상이 사람이 아닌, 이루고 싶은 꿈이 될 수도 있다. 가사를 들어보면 이해할 것이다. '난 아직 그대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그대 마음에 이르는 그 길을 찾고 있어·····, 기다려줘 기다려줘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운전대를 직접 잡을 수 있는 나이가 된 지금, 이제는 내가 아빠의 플레이리스트와 똑 닮은 노래를 선곡하곤 한다. 부모님의 입에서만 조음 되던 노래 가사들이 이제는 내 입을 통해서도 흘러나오는 풍경에, 기분이 묘하다.

 

김광석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매우 많지만, 그중에서도 '인생의 길목마다 서 있는 가수'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가리워진 길 

유재하


 


 

 

고백하자면, 처음부터 유재하의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왠지 우울하고 어두운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인데, 어디선가 '그대 내 품에'를 듣고 다시 그의 앨범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과거에 느꼈던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사라진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듣기 좋아졌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미온적 반응을 보였던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과 '가리워진 길'을 반복 재생해서 듣곤 했다. (물론, 그의 앨범에는 밝은 느낌의 노래도 있다. '우리들의 사랑'과 '지난날'이 그렇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그의 노래를 좋아한다. 1987년에 발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련되어서 이기도 하지만, 정제되어 있지 않고 화려한 기교가 없어 더 진하게 느껴지는 그만의 진심 어린 목소리와 감성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리워진 길'이 더 내 마음에 깊숙이 와닿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유재하의 목소리로 듣는 '그대여 힘이 돼주오' 에는, 그 어떤 가창력이 뛰어나고 성량이 풍부한 누군가의 목소리로도 대체될 수 없는 감동이 있다.

   

* * *

 

언젠가 이런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옛 명곡은 내가 젊은 것이 안타까운 유일한 이유"

이제는 나도 어렴풋이 그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 이유를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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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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