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9가지의 마법같은 사랑 - 올모스트 메인 [공연]

글 입력 2024.03.2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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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메인주의 지도에는 없는 마을. 행정상 13구역에 12블록에 위치한 아담한 마을. 아직 행정정리가 되지 않아 지명이 없어, 마을 사람들끼리 거의 다 됐다며 스스로 이름 붙인 [올모스트 메인].

 

미국의 극 작가 존 카리아니 (John Cariani)는 가상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마법 같은 9가지의 사랑 이야기를 엮어 옴니버스 형식의 연극을 탄생시켰다. 미국에서만 2500개가 넘는 프로덕션에서 공연되고,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이다.

 

사랑의 가까워짐과 멀어짐에 대한 탐구.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에 대해 잠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사랑과 고통의 관계성


 

무통각증 남자가 어떤 여자가 들고 있던 다림판에 머리를 맞는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맞았음에도, 남자는 피도 안 나고 멍도 안 들었다면 괜찮다고 말한다. 여자는 너무나 당황하며 재차 그의 상태를 살피다가, 그가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여자와의 갑작스러운 키스 이후 모든 것이 바뀐다. 또다시 맞은 다림판이 너무 아픈 게 아닌가! 머리 뒤통수부터 신경을 타고 전달되는 찌릿함. 그것이야말로 첫사랑이겠다.


사랑과 고통의 관계성에 대한 간편하지만 근본적인 표현. 무통각증 남자를 등장시킴으로써 극적으로 풀어낸 것이 인상깊었다. 사랑을 알자,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된 남자는 사랑을 ‘무서운 것’ 리스트에 적을까. ‘아픈 것’ 리스트에 적을까. 아마 둘 다에 적어야 할 것이다.


왜 사랑과 고통은 항상 함께 거론되는 걸까. 심오하고 철학적인 질문이지만 심리학적 지식이 전무한 나는 그저 짧은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본다. 쉽게 그리고 단순하게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사랑이 너무 강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러니까 사실은 사랑 자체가 고통인 게 아니라, 사랑이 고통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고 할 수도 있겠다. 사랑은 나를 약하게 만들고, 작아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와 감정을 필요로 한다. 타인을 알아가고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알아가고 나 자신을 사랑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해 알고 싶지 않았던 부분도 알아가고,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탐구하게 된다.

 

그러니 사랑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지켜내기 위해서는, 사랑이 너무 강해져서 나를 삼켜버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고통을 견디고 성장해 내야 한다.

 

 

 

사랑이란 주는 행위


 

‘돌려줘! 돌려달라고. 너한테 준 사랑 다 돌려줘.’


그러고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차에 잔뜩 싣고 온 그 많은 사랑을 우당탕탕 다 꺼내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별의 끝자락에 서 있는 여자는 또 다른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쏟아부은 사랑을 돌려받아야겠다고 이야기한다. 더 이상 나에게 남은 사랑이 없다는 말 속에서 지난 세월 간의 치열했던 열애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여자의 반응에도 남자는 시큰둥하게만 반응한다. 왜 그러지? 설마.. 받은 게 없나? 아니면 벌써 다른 여자에게 줘버린 건가?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쯤, 남자가 코딱지만 한 사랑을 들고 나타난다.


여자는 그 코딱지만 한 사랑을 보고서는 절망한다. 내가 이것밖에 주지 않았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 준 사랑을 돌려받을 수 없게 된 여자. 그리고 그를 지켜보던 나 또한 함께 절망한다. 바닥에 놓인 둘의 사랑을 번갈아 바라보며 착잡한 마음에 휩싸인다. 그러던 중, 남자는 그 코딱지만 한 사랑 꾸러미에서 ‘반지’를 꺼낸다. 반지라…!  누군가에게는 반지가 그저 그런 보석이나, 액세서리에 불과할지 몰라도 여자는 그토록 바라왔던 프러포즈에 크게 감동받는다. 둘은 극적으로 화해하고, 여자는 반지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사랑을 돌려달라’라는 대사와 사랑을 선물 꾸러미 같은 형태로 가시화하여 보여주는 시도는 관객들로 하여금 사랑의 본질에 대해 자문하도록 한다. 에피소드를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사랑을 측정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고, 꾸러미의 크기나 부피만을 보고 그 사랑의 깊이나 정도를 예측하다 보면 더욱 더 그렇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던 것처럼 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능동적인 행위, 그중에서도 주는 행위이다. 즉, 더 이상 줄 사랑이 없다는 것은 사랑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단, 여기서 준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보답을 바라지 않을 때 완성된다. ‘너한테 준 사랑 다 돌려줘’라는 대사가 어색하고 귀엽게 들린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사랑은 빌려주는 게 아니기에 다시 돌려받을 수 없고, 돌려 받기를 바라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머리로는 알고 있음에도, 나도 저 여자 주인공처럼 ‘돌려줘!’라고 외치고 싶어질 때가 종종 온다. 또 때로는, 주는 것도 받아본 적이 있어야 가능한 게 아닌가-라는 억울한 말들이 뱃속에서 엉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주고, 또 다채롭고 거대하게 받을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꿈을 꾼다. 성숙한 사랑이란..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임을 아는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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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이고 솔직한 그들만의 사랑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사랑’이라는 입체적이고 모순적인 감정을 다양한 방법으로 비유하고 가시화시키는 시도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느낄 수 있을지언정, 유치한 것이 사실은 가장 날 것 그대로가 아닌가.

 

관객들과 다 함께 깔깔대며 웃다가도, 오로라를 보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90분간 지루할 틈 없이 쏟아지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들. 언제까지고 한겨울에 맥주를 마실 때면 문득문득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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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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