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정상으로 비정상 균열 내기 -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도서]

글 입력 2023.12.17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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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빈민층 멕시코계 여성으로 살아가는 코니가 있다. 어느 날 코니의 조카 돌리가 그의 포주 헤랄도에게 폭행당한 채로 코니의 집을 찾아온다. 코니는 헤랄도를 막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머리를 내려친다. 코니는 빈민층으로 자신의 옷차림을 정돈하지 못했고, 빈민층이며, 아동학대 전과가 있고 이전에도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었고, 헤랄도는 멀끔해 보였으며 남성이었고 당당하며 자신만만했기에 의사는 헤랄도와 돌리의 하나의 거짓말(코니가 이유 없이 헤랄도를 공격했다)를 믿고 코니를 보호 병동에 가둔다. 

 

1976년에 출간된 마지 피어시의 소설 《시간의 경계에 선 여자》는 이와 같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코니가 겪은 정신병원의 삶은 현실의 디스토피아로 은유되며 이후 코니의 접속 능력으로 여행하게 될 미래 페미니즘 유토피아 공동체 메타포이셋과의 괴리를 더 강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피어시는 이 소설을 집필할 때, 실제 정신병동에 입원한 환자들과 ‘정신질환자 자유전선’의 도움을 받았다고 언급한다. 그 문장을 읽고 나면 피어시가 만들어 낸 코니 서사의 얼개에 얼추 고개가 끄덕여진다.

 

특히 소설 마지막에 수록된 정신과 의사의 ‘멕시코계 35세 빈민층 유색인종 여성의 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 기록을 읽고 나면, 독자는 지금껏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코니의 정신병동 안에서의 수난과 미래의 페미니즘 유토피아 공동체를 거니는 모험을 믿어야 할지, 정신과 의사의 의학적 판단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워진다. 장장 두 권을 합하여 600여 쪽을 코니와 함께 걸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우리에게 정신의학이라는 진단 체계는 높은 위상을 가지고 견고하게 존재한다. 정신과 의사는 오랜 공부와 임상 경험과 환자의 검사 결과를 통해 ‘정상’과 구분되는 ‘비정상적’인 병리적 행동을 구분해 낼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비전문가는 알지 못하는 굳건한 진단 체계를 따른 옳은 일일 것이다.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표지-띠.jpg

 

 

그러나 그 믿음이 무색하게도,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는 저자 캐헐런이 겪은 오진의 경험으로 시작한다. 자가면역 뇌염으로 인한 뇌 손상으로 캐헐런은 정신증을 보였고 정신과 의사는 이를 조현병으로 진단했다. 항정신성 약물이 전혀 차도가 없었고, 정신병동으로 이송을 고려하던 찰나에 운 좋게 캐헐런의 ‘진짜’ 병명을 찾아낼 수 있었고, 저자는 자신의 바뀐 진단명이 어떻게 사람들의 시선과 행동을 바꾸는지 직접 경험했다.

 

도대체 정신질환이라는 것은 뭘까? 캐헐런은 이러한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하여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라는 논문으로 정신의학계에 충격적인 영향을 끼친 로젠한의 연구를 가져온다.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이 존재한다면 대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까?”(69쪽) 로젠한의 답은 ‘모른다’이다. 가짜 환자 9명이 정신병원에 잠입하는 실험을 통해 로젠한은 “표준화된 구조를 마련하여 다른 면에서는 정신이 멀쩡한 사람을 과연 시설에서 받는지 아닌지 알아보았다.”(70쪽) 9명을 면담한 정신과 의사는 모두 이들이 입원이 필요한 환자로 판단했고, 정신병동에 입원한 후 다시 온전한 자기 모습을 보였지만, 이들의 행동은 의료진들에게는 병리적 증후로 여겨졌다.


‘온전한 정신’이 존재한다면, 병리적 진단이 가능한 ‘온전하지 않은 정신’도 실재한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정신이 실재한다면, 이것은 관찰자 혹은 시공간에 따라 변화하지 않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환자 A의 위궤양이, 미국의 의사에게 진찰받아도 위궤양인 것처럼. 그러나 정신질환은 왜 다를까?

 

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은 언제나 변화했다. 냉전 시대의 소련에서는 공산주의를 지지하지 않는 것은 정신증으로 진달 가능한 징후였다. 2023년 대한민국의 우리는 이 진단 기준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이렇게 개인의 정신을 분류하는 일은 당시 정치·경제적 및 사회적 요소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진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났지만, 로젠한의 실험은 여전히 우리에게 같은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이 책의 반전은 여기서 시작한다. 로젠한의 실험이 그에 의하여 결과가 오염되고 이미 정해둔 결론에 맞추기 위해 편향되었다는 의혹이다. 캐헐런은 더 나아가, 로젠한의 가짜 환자가 실재하는가에 대한 의문까지 나아간다. 실제 인물이 확인된 경우를 제외하고 로젠한의 지인과 무척이나 유사한 특성을 가진 몇 명의 가짜 환자의 실마리를 전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로젠한은 높은 원고료로 단행본을 계약하고는 원고를 넘겨주지 않았고, 이렇게 위대한 실험을 통해 정신의학의 근간을 흔들어 놓고 후속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로젠한의 연구는 여전히 정신의학 연구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로젠한의 연구를 강하게 비판했던 스피처는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편람》 개정 3판(이후 DSM-3)을 통해 로젠한이 제기한 “정신질환 진단의 신뢰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인식”(285쪽)하였으며 “자신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었다.”(285쪽) 온전한 정신과 정신이상을 구분할 수 없다는 주장은 정신의학계의 새로운 숙제가 되었고, 의학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진단의 표준화”(288쪽)을 도입했으며 “축axis”을 이용하여 정신질환, 인격장애와 발달 장애, 신체적 질환 등으로 나누어 정신질환의 진단 기준을 새로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으로 정말 충분하였을까? 2013년에 발간되어 현재 사용하는 DSM-5는 새로운 문제를 초래했다. 갑자기 정신질환자가 급증한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방치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일까, 아니면”(300쪽)정신 이상이 실재한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정신병원이 폐쇄됐지만 정신질환으로 진단받은 환자의 수가 늘면서 신속한 처치가 필요한 환자들이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제 온전한 정신의 환자가 잘못하여 비인간적인 정신병동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처치가 필요한 환자가 병원이 아닌 교도소와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정신의학은 엉망이다.

 

*

 

“정상적인 사람을 오진하는 것을 더욱 부추기고 약물 복용자로 득실대는 사회”(300쪽)가 다가왔다. “우리는 그토록 많은 정신질환 약물이 어떻게 작용하는지”(397쪽) 모른다. “현재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은 모두 ‘임시방편’”(397쪽)이다. “논란은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417쪽)된다. “무엇을 정신장애로 볼 것인가?”(417쪽)


캐헐런은 터져 나오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한 인정’과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제시한다. 과학의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한다. 정신질환의 원인과 항정신성 약물이 인간의 신체에 기능하는 방식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법과 사회적 태도에도 ‘인정과 믿음’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갑자기 (무당이 듣는 신의 말과 같은) 심령술사가 듣는 목소리가 등장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목소리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는 이제 고려할 가치가 있는 방법론이 된다. 

 

라셰드는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에서 광기는 정체성이며 광기를 정체성으로 이해하는 사회는 장기적으로 더 높은 효용과 편익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매드 프라이드 운동을 긍정하며 이러한 당사자들이 사회에서 수용될 방법으로 여러 ‘매드 서사(mad narrative)’를 제시한다. 이때 매드 서사는 “[광기와 관련한] 살아 있는 경험이 있는 당사자와 활동가가 개발한 서사로, 사람들이 광기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라셰드, 420쪽) 그 예시로 라셰드가 설명하는 서사에 위에서 말한 심령술사의 목소리와 같은 영적 서사가 포함된다. 이러한 매드 서사는 “문화적 레퍼토리에 광기에 대한 영적 화두를 불어넣어 되살림으로써 당사자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라셰드, 424쪽)하는 대안이 된다. 피어시가 제시한 코니의 서사도 록오버 주립 정신병원 기록의 진단명인 ‘편집성 정신분열증’ 환자의 서사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의학에 대한 이러한 믿음, 우리의 치료자, 진단, 시설에 대한 이런 믿음은 로젠한이 망가뜨리는 데 힘을 보탠 것이자 스피처가 바로잡으려고 애쓴 것이며, 제5판을 둘러싼 논란과 교도소 시스템과 관련한 끔찍한 이야기들이 더더욱 뒤흔든 바로 그것이다. 믿음은 정신의학이 잃어버린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다.”

 

422쪽

 

 

이러하듯 최근 정신의학계의 정신질환 진단과 치료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특히 당사자를 배제하지 않는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믿음은 계속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로젠한의 왜곡되었을지도 모르는 실험이 결국 다른 이들에 의해 정신의학계를 개혁하고 진단의 재정의에 불씨가 되었던 것처럼 누군가 어느 날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캐헐런이 끝까지 로젠한 실험의 미스터리를 파헤치면서도 정신의학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것처럼, 언젠가 당사자들과 현장의 의료진, 그리고 의학계까지 모두가 인정하고 납득할 수 있는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지금이라면 코니에게 어떤 진단이 내려졌을까를 상상하며, 같은 질문을 할 미래의 누군가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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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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