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세계를 넓혀줬던 너에게 - 너와 나 [영화]

글 입력 2024.03.04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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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너와 나>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학창시절은 ‘청춘’과 ‘여름’이라는 단어와 참 닮았다. 푸르름. 영화 <너와 나>의 분위기도 그렇다. 영화의 배경도 어느 지극히 평범했던 여름이다. 매미가 울고, 푸릇한 나뭇잎들이 바람에 춤을 추다가 사그락거리며 수다를 떠는 계절.

 

풀잎과 풀잎 사이, 또 나무 가지와 가지 사이. 카메라는 일과가 끝난 어느 학교의 하굣길을 멀찍이 떨어져서 담는다. 학생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하교하는 모습이 프레임에 담길 때, 나에게도 분명했던 지난 시절을 추억해본다. 그땐 가족보다 가깝게 느껴지는 친구들을 만나 마음을 다한 우정을 다지곤 했다. 하지만 영화 속 세미와 하은이 우정의 증표로 지녔던 앵무새 키링이 떨어졌던 것처럼, 종종 사소한 갈등으로 너와 나 사이에 떨어졌던 키링이 하나쯤은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그 키링처럼 떨어지고 멀어지는 걸까? 노심초사하며 불안해하기도 했던 때의 어린 모습이 두 사람 이야기와 겹치며 더욱 영화에 집중하게 된다.

 

 


'나'의 세계 안에서


 

영화는 주인공 세미(박혜수 배우), 그리고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다리를 다친 하은(김시은 배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로, 곧 다가올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다. 어느 날, 교실에서 잠에 든 세미는 하은에게 생길 불길한 사건에 대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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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꿈은 하은이 죽는 꿈이었다. 꿈에서 열어둔 창문 사이로 날아간 반려 앵무새를 찾으러 나선 세미는 뒤뜰을 거쳐, 풀이 우거진 뒷산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마침내 마주하게 된 광경은, 엎드린 채로 숨을 거둔 하은의 모습이었다. 잠에서 깬 세미는 불안함에 반드시 수학여행에 하은과 함께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은에게 향하고 함께 가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하은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다. 해결책을 찾던 중, 두 사람은 하은의 오래된 캠코더를 팔아 수학여행에 갈 자금을 마련하기로 한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쭈뼛거리는 하은의 모습을 보고 세미는 실망한다. 얼른 자금을 마련해 함께 수학여행에 가고 싶은 자신의 마음과는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쌓인 사소한 오해 하나하나로 두 사람의 감정은 곧 갈등으로 이어진다. 이때 세미는 자신의 감정인 ‘속상함’만을 내세우며 실망감을 표출하고, 하은도 자신의 입장을 아무리 설명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덩달아 감정을 앞세운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 갈등으로 번지게 된다.

 

 

 

'너'를 이해하며


 

영화에서는 곳곳에 동물들이 등장한다. 먼저 세미가 분신처럼 ‘키링’으로 지니고 다니기도 하는 반려 앵무새가 등장한다. 또 하은에게도 반려동물이 있었는데, 과거 오랜 시간 함께 동고동락하며 우정과 사랑을 나눈 반려견이 끝내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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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갈등으로 멀어진 두 사람을 이어주는 것은, 영화 중반에 등장한 ‘진돗개’다. 두 사람은 갈등이 생기기 전, 작은 뒷산에서 놀며 주인 없는 진돗개를 만나게 된다. 그 개에게 줄 사료를 사러 편의점에 내려간 세미는 우연히 잃어버린 진돗개를 찾는다는 공고를 발견한다. 하지만 사료를 가지고 다시 뒷산으로 올라왔을 땐 하은이 진돗개와 함께 사라진 후였다. 앵무새를 따라가던 방식과 길 그대로, 세미는 하은을 찾아 나선다. 반려 앵무새를 잃은 불안함처럼, 하은을 잃은 듯한 불안함으로 그 길을 따르고 그 끝에서 하은을 찾게 된다.

 

두 사람은 시간이 흘러 진돗개를 함께 찾기 시작한다. 그러다 우연히 어느 폐사장 안에서 진돗개를 발견하게 된다. 세미는 그 길로 주인아주머니에게 연락하고, 아주머니는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다음과 같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리고 하은은 하늘나라로 떠난 반려동물을 추억하며 눈물을 보인다.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르는 슬픔이 있어요. 어디서든 잘 지냈으면 좋겠고.. 죽으려거든 편안하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이 들어요.”

 

영화 <너와 나> 中 진돗개 주인아주머니

 


세미는 그런 하은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때 세미는 꿈속에서 반려 앵무새를 찾으러 떠났던 길, 그리고 진돗개와 하은을 찾으러 떠났던 길이 겹치며 무언가 깨달은 것 같았다. 눈물로 보인 하은의 반려동물에 대한 슬픔. 그리고 세미 자신도 겪은 비슷한 경험. 꿈에서 잃어버린 앵무새. 그를 찾아 나선 끝에 마주한 하은의 마지막 모습. 현실에서 꿈과 똑같은 길을 따라 하은을 찾아 나섰던 세미 본인.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진짜 하은의 마지막을 마주하게 될 것만 같은 두려움과 불안함이다.

 

이 일을 계기로 하은에게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이 얼마나 큰지를 헤아린다. 또 그것처럼 하은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헤아려보게 된다.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의 크기가 반려동물의 무게를 알려주기에, 자신에게 하은이 큰 존재임을 낯설게 느낀 것이다.

 

 

 

내가 네가 되는,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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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미의 마음 크기는 영화 곳곳에서 알 수 있었다. 갈등 속에서도 누구보다 하은을 생각하던 사람은 세미였다. 노래방에서 빅마마의 '체념'을 부르며 하은과 함께 제주도 수학여행을 갔으면 생길 일들을 떠올리고, 다른 친구들 앞에서 울기도 한다. 또 꿈에서 반려 앵무새를 찾을 때처럼 불안해하며 구석구석 하은을 찾으러 다녔다. 산 아래에서 만나게 된 하은이 자기를 걱정했냐고 세미에게 묻는다. 하지만 오히려 자신은 하나도 걱정 안 됐다며 얼버무리는 세미였다. 걱정됐다고, 또 신경 쓰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걸까. 세미는 하은에게 자신의 진짜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았다.

   

진돗개를 주인아주머니에게 찾아드린 날, 세미는 다시 돌아가는 길에 그제서야 간밤의 꿈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사실, 불안함에 꼭 수학여행에 함께 가고 싶었다고. 꿈에서 발견한 하은은 죽은 채로 풀숲에 고요히 누워있었다고.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의 모습이 우리 반 친구들 모습 같기도, 우리 선생님 같기도, 또 내 모습 같기도 했어." "내가 네가 되어서 깨어났어.”

 

영화 <너와 나> 中 세미

 

 

하은의 죽은 모습은 곧 세미가 같은 곳에 엎드려 눈을 감은 모습으로 전환된다. 갈등과 오해의 끝은 이렇게 다른 사람을, 상황을 경험하고 이해하며 넓어지는 세계로 그려진다. 영화는 세미가 하은으로, 내가 너로, 또 네가 나로 스며드는 과정을 서정적이면서도 세심하게 담아낸다.

 

“내가 너를 정말 많이 좋아해” 하은도 말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두 사람은 오해를 풀고 한층 더 가까워진다.

 

 

 

그 후의 이야기, 사랑의 영원한 의미


 

결국 세미는 하은 없이 혼자 수학여행을 떠나게 된다. 영화는 세미가 자신의 반려 앵무새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이 마지막으로 연출된다. 몇 번이고 나지막하게 “사랑해”를 속삭인 후, "다녀올게."라고 말하며 조용히, 아주 조용히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사랑한다는 말은 반려동물처럼 내 오랜 친구 같기도, 또 가족 같기도, 연인 같기도 한 존재에게 가장 솔직하게 건네는 말이다. 그렇게 세미는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더욱 성숙하고 솔직한 고백과 함께 자신의 세계를 한층 넓히고 성장하게 된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에 함께 장난치며 탔던 버스에는, 영화의 끝 무렵 하은 홀로 햇빛을 받으며 이동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하은의 공허한 표정은 어쩐지 수학여행을 떠나 부재한 세미의 존재를 더더욱 크게 느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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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등장하고 수학여행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점 등, 이 영화는 지난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영화 <너와 나>의 조현철 감독은 세미와 하은의 이야기, 위 세미의 대사를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인터뷰 질문에 답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인 박준혁 군이 참사 당시에 물속에서 옆 반 여학생의 손을 잡고 있다가 구하지 못했는데, 이후 꿈에서 자신이 그 여학생이 되어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세미가 하은이가 되는 꿈을 꾸는 것, 혹은 그 반대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무렵 떠올렸다.”

 

 씨네21과의 인터뷰 中 조현철 감독

 

 

그러면서 조현철 감독은 자기 경험에 비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본인의 생각일 뿐임을 느꼈고, 실은 전혀 가닿을 수 없는 영역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진돗개를 찾는 경험으로 세미는 하은을 더욱 이해하고 공감했으며 또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그에 낯설게 비춰볼 수 있었다. 꿈을 고백하며 오해가 풀리자, 나(세미)는 곧 너(하은)가 됐고, 너도 마찬가지로 내가 됐다. 이로써 두 사람은 아름다운 한 사람이 됐다.

 

또, 영화에 분노나 절망보다 사랑이 넘치는 이유를 묻자,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내가 느꼈던 똑같은 감정, 그만한 깊이의 공포가 그동안 이름이 불리지 않은 수백 명의 사람들 하나하나 속에 다 깃들어 있었겠다고 느낀 순간부터 <너와 나>를 쓸 수 있었다. 그 많은 죽음의 의미를 허무하게 남겨두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이 사람들의 삶을 호명하고 싶다는 마음이, 이상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되살려내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다.”

 

 씨네21과의 인터뷰 中 조현철 감독

 

 

그리고 그는 허무함을 되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오히려 ‘영원함’을 떠올렸으며 결국 우리가 무언가 사랑하고 있다고 느낄 때만 가능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사랑’은 어느 곳에나 가득한 것이다. 영화에서 주요 소재로 그린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처럼. 또 하은이 오래전 먼저 떠나보낸 반려견을 여전히 눈물로 추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가끔 들려오는 새소리와 학생들의 이야기 소리, 그것을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는 따스한 햇살과 포근한 바람결. 조현철 감독의 <너와 나>는 그런 일상의 소재를 평범하지만 낯설게 볼 수 있도록 연출한 아름다운 영화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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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가 학창 시절 소중하게 지녔던 모든 우정이 반려동물에 대한 감정과 똑 닮아있었던 것 같다. 언제 어디서든 안녕했으면 좋겠고, 죽음 앞에서도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 허무함과 영원함. 그 사이를 뛰어넘는 무언가. 그건 우리가 알던 사랑이 아닌, 이름 모를 또 다른 사랑이다. 그런 마음을 엔딩크레딧이 적막 속에 올라가던 그 고요함을 빌려 세미와 하은에게 사근사근 속삭여주고 싶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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