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닿을 수 없는 세계를 담다 - 초현실주의 거장들

글 입력 2021.12.1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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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2021년 역시 유행병으로 전 세계가 혼란스러웠다. 2년간 지속된 팬데믹은 정치, 사회,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매일 새롭게 등장하는 뉴스들은 우리의 미래를 더욱 더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다가오는 새해가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요즘, 마찬가지로 전쟁이 끝난 직후 극도로 혼란한 세상에서 살아갔던 예술가들에게로 눈길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초현실주의 거장들 展'이 진행중이다.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마르셸 뒤샹 등 100여년 전 초현실주의를 이끌었던 굵직한 작가들의 작품을 원화로 감상할 수 있다.

 

해당 작품들은 유럽에서 가장 큰 초현실주의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네덜란드 보이만스 반뵈닝언 박물관의 소장품이다. 전시는 총 6개의 섹션(초현실주의 혁명, 다다와 초현실주의, 꿈꾸는 사유, 우연과 비합리성, 욕망, 기묘한 낯익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현실주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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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1896-1966) 초현실주의 혁명(La Révolution surréaliste) 간행물, 1924, 28,6 x 20,2 x 0,3 cm © André Bret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섹션1과 섹션2는 초현실주의가 탄생한 배경과 그 양상을 잘 보여준다.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언제나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에 대한 믿음이 깨지며 그 반대편에 있는 본능과 감정, 무의식 등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격변하는 사회에 맞게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갈망과 수요가 폭발하던 시기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 사회를 거부하며 '다다(DADA)'가 등장했다. '다다'는 과거의 예술 양식을 거부하며 다양한 예술 분야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는데, 그 여파로 탄생한 것이 '초현실주의(Surrealism)'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고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예술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초현실주의(Surrealism)는 문학에서 처음 나타나기 시작해 그림, 영화, 사진 등의 분야로도 확산되었다. 1924년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이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문(Manifeste Du Surréalisme)'은 새로운 예술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려주는 이정표이다.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필두로 전시장 벽에 걸려 있는 여러 점의 작품은 초현실주의란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듯 낯설고 기이하다. 제목만 봐서는 작품과 연결 지을 수 없는 경우도 여럿이고 여러 가지 사물이 뒤섞인 듯한 이미지나 형체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이미지로 회화가 구성되어 있기도 하다. 좀처럼 해석하기 어려운 작품들은 기묘한 불쾌감과 함께 그 어떤 시대의 그림을 볼 때보다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성을 넘어 꿈과 욕망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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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 아프리카의 인상(Impressions d'Afrique), 1938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91,5 x 117,5 cm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이어지는 섹션 3, 섹션4, 섹션5, 섹션6은 초현실주의의 특성과 맥락을 짚는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주목한 것은 꿈과 무의식의 세계다. 실제로 많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자신의 꿈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 활동을 했다. 시작과 끝이 없고 논리나 인과관계도 존재하지 않는 특수한 시공간에서 예술가의 자아는 끝없이 확장한다.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도 꿈과 무의식에 집중하며 해석의 광란(Délire d'interprétation)이라고 이름 붙인 기법으로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해석의 광란'이란 하나의 이미지로부터 끝없는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로, 실제로 그의 작품은 가까이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띠는 경우가 많다.

 

작품의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며 각각의 이야기는 좀처럼 통합되지 않는다. 하나의 이미지나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 작품들은 분명 멈춰 있는 회화인데도 역동적인 미디어 아트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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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레이(Man Ray, 1890-1976) 복원된 비너스(Vénus restaurée), 1936(1971) 혼합재료 plaster, rope, wood, paint, 74 x 42 x 39 cm © manage RAY TRUST/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욕망 역시 당대 초현실주의자들이 작품을 창작하는 큰 동기가 되었다. 많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욕망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함으로써 예술의 엄숙함을 깨고자 했다.

 

해당 섹션에는 인간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지금 시대와 비교하며 욕망을 예술로 표현하는 방식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보는 재미가 있다.

 

때론 위트 있고, 때론 적나라한 작품들은 개개인의 욕망이 예술이라는 형식을 빌려 표출될 때 어디까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예술로 인정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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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린 아거(Eileen Agar, 1899-1991) 앉아있는 사람(Seated Figure), 1956 캔버스에 유채, 184 × 163 cm Photo ©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우연과 비합리성도 초현실주의 작품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자동기술법(Automatisme)은 우연과 비합리성을 극대화하는 표현 방식으로 이성이나 도덕성, 미학으로부터 벗어나 무의식적 사고를 두서 없이 작품으로 표현해내는 기법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본 적이 있다. 쓸 당시에는 나름대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오후에 보면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문장은 분명 나에게서 나온 것이다. 거기서 나는 내가 모르고 의식하지 못하던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마주한다.

 

당대 초현실주의자들도 그런 식으로 자신을 만나고 싶어했던 게 아닐까. 집착에 가깝도록 자기 내면으로 파고드는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해서 예술가가 만난 것은 누구였는지 궁금해진다.

 

 

 

불안과 혼란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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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출혈(La saignée), 1938-1939, 캔버스에 오일


 

개인적으로 오래 머물렀던 작품은 섹션6에서 봤던 '출혈(La saignée)'과 '금지된 재현(La reproduction interdite)'으로, 우연찮게 모두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이었다.

 

두 작품은 작가가 같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있다. 사각형을 작품 중앙에 배치해 각각 캔버스와 거울을 표현함으로써 무언가를 보는 행위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작품 속에서 보이는 것은 우리가 현실에서 일반적인 캔버스와 거울에서 보게 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다.

 

캔버스로 추정되는 '출혈'의 사각형에는 벽이 보인다. 벽을 담은 그림이 벽에 걸려 있는 셈이다. 작품 속 그림은 그림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연결되기를 바라는 감상자를 막다른 길로 안내하는 듯하다.

 

'금지된 재현'의 거울에서는 거울을 보는 사람의 뒷모습이 비춰 보인다. 거울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한 도구라는 걸 생각하면 뒷모습만을 보여주는 거울은 영영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없고, 무언가를 찾으려 할수록 원하지 않는 모습만을 보게 될 것이라는 암시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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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 금지된 재현(La reproduction interdite), 1937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81 × 65,5 × 2 cm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마땅히 보여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 두 점의 그림에서는 불안감이 느껴진다. 당대 초현실주의자들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 각각이 어떤 세상을 꿈꿨는지 구체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다만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걸 떠올리면 그 세상을 현실에서 찾기 어려웠을 거라고 짐작해볼 수는 있다. 그들은 격변하는 시대를 살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지만 역설적으로 그 새로운 세상은 현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무의식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방식으로만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을까.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초현실주의가 탄생한 배경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에서 보았던 초현실주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어두웠다. 거기에서 현실에 대한 혼란과 함께, 닿을 수 없는 세계를 향한 갈망과 막막함이 읽혔다.

 

그러나 동시에 초현실주의 작품만이 지닌 어떤 아름다움 역시 보였다.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하기에 갑자기 맞닥뜨리는 아름다움이다. 앞서 언급한 마그리트의 두 작품 역시 불안감 속에 묘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그것은 불이 다 꺼져 컴컴한 방에서 느끼는 편안함, 누구의 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에서 듣고 해석하기를 포기함으로써 얻는 자유와 닮았다.

 

지금의 우리도 100년 전 초현실주의자들과 비슷한 시대를 살고 있다. 알고 있던 것들이 무너지는 절망과, 그 사이에서도 새로운 것이 탄생하리라는 희망이 교차하는 시기. 쉬운 것 하나 없는 시대이지만 여기에서도 우리는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100년 전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을 보며 확신한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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