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다.리' 여섯 번째 이야기 : 무엇으로 살(buy) 것이냐, 어떻게 살(live) 것이냐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11.3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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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갑작스러운 전국 KT 유무선 통신망 마비 소식에 여느 때와 다름없던 평일 점심시간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인터넷은 물론, 일부 지역에서는 통화마저 할 수 없었고 많은 공공기관들과 일반 기업들도 통신망이 복구되기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카드/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전자 결제 방식에 의존하는 가게와 매장들이 많아진 상황이었던 만큼 길게는 반나절이 넘게 운영에 차질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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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파이낸셜뉴스)

 

 

이번 사태로 인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일각에서는 점차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는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 무현금사회)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말 그대로 동전 주화나 지폐와 같이 물리적 형태의 현금 대신 신용·체크 카드, 모바일 기기 등 비현금 수단을 통해 소비 및 상업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를 이르는 이 개념은 최근 들어 이른바 ‘디지털 금융 혁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전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는 중국과 인도를 이야기할 수 있다. 지난 2019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 위안화’(e-CNY)라고 불리는 관영 디지털 화폐(CBDC) 사업을 시범 운영하고 있는 중국은 ‘알리페이’(Alipay)와 ‘위챗페이’(WeChat Pay) 등의 민간 플랫폼과도 파트너십을 체결, 전국 상용화를 향하여 부단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은행 계좌 소유 비율은 물론, 인터넷 보급률마저 터무니없이 낮았던 인도의 경우 2016년 정부 주도로 대대적인 화폐개혁을 밀어붙이며 단숨에 세계 디지털 결제 시장의 메인 허브로서 자리매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지난 2016년 ‘삼성페이’ 출시 이후 금융환경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오픈뱅킹과 마이데이터 제도를 발판으로 삼아 이른바 ‘빅테크’(Big Tech)나 ‘핀테크’(Fin Tech)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금융 플랫폼 기업들이 하나둘 진출하기 시작했기 때문. 주요 대형 포털이나 SNS 회사(네이버, 카카오, 페이코 등)를 비롯해 대형 금융사(신한은행, KB국민은행 등), 유통 기업(신세계, 롯데 등)에 이르기까지 너나 할 것 없이 많은 기업들이 금융혁신 열풍에 합류하고 있다. 심지어는 타 경쟁사와의 협력까지 마다하지 않을 정도이니 미래 금융 시장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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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테크42)

 

 

더군다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코로나19 대확산 및 장기화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의 일환으로 이동 제한이 강화됨과 동시에 위생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비대면 결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0년 지급결제보고서>에 따르면, 전년 대비 비대면 결제액이 약 17% 가까이 증가한 와중에 신용카드 사용 규모는 일명 ‘카드대란’이 있었던 지난 2003~2004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한 반면 휴대폰과 태블릿 PC 등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간편결제 사용 규모는 대폭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현금 없는 사회의 장점은 무엇일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투명성’을 1순위로 꼽는다. 익명성이 두드러지는 현금과 달리 암암리에 이뤄지는 불법 경제활동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일일이 들고 다닐 필요 없이 편리하고 오차 없이 정확한 계산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지문에서부터 눈, 손, 얼굴, 목소리 등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바이오인증 기술을 기반으로 분실이나 위조 등의 걱정을 덜 수 있을 만큼 높은 ‘보안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현금결제 시스템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 투입되는 막대한 자금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은 중앙정부 입장에서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껏 아무도 ‘완전한’ 의미의 현금 없는 사회를 경험하지 못했던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부분은 바로 사생활 침해와 정보 악용의 문제. 그도 그럴 것이, 현금 거래와 달리 사용자들의 모든 거래 과정과 그 내역이 온라인으로 기록될 뿐만 아니라 보관 기한이나 방침에 대해서도 확인할 도리가 없으니 현실판 ‘빅 브라더’가 출현하지 않겠냐는 걱정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실물 화폐 경제 전반을 담당해야 할 중앙은행의 통제력 약화를 초래하고 관련 산업 및 일자리 영역에 있어서도 상당한 불확실성을 부여할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제기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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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nternational Monetary Fund)

 

 

무엇보다, 현금 없는 사회가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포용할 수 있는지’가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각종 통계에서도 나타났듯이 상대적으로 디지털 정보에 대한 접근 및 활용 역량의 수준이 낮은 고령층과 장애인의 경우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키오스크나 전자 결제 방식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계좌 개설 및 카드 발급에 제한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현금을 사용해야 하는 저소득층이나 청소년들도 마찬가지. 이러한 상황에서 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과 지지만을 앞세운다면 오히려 더 많은 소외 그리고 더 극단적인 사회 불평등을 양산하고 말 것이다.


어쩌면 소비 방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양식 전반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도 있는 현금 없는 사회로의 변화. 그 혼란스럽지만 피할 수 없는 ‘대전환’을 목전에 두고 “무엇으로 살(buy) 것이냐”보다 “어떻게 살(live) 것이냐”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현금 수요와 운송, 사용과 관련된 유통 인프라 및 제반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연구·개발하는 역량을 길러야 할 것이며 헌법상 권리인 계약 선택의 자유를 기반으로 재화 및 서비스 구매 과정에서 현금 수취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현금결제선택권을 점진적으로 확대 적용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해진 ‘누군가’가 아닌 ‘누구나’ 새로운 차원의 금융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게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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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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