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빠와 딸의 관계 [사람]

글 입력 2021.11.1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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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딸


 

부모님을 커다랗고 무적인 엄마·아빠에서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삶이 있었던 한 사람으로 인식한 그 순간이 기억난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그때야 비로소 아이의 눈을 벗어나게 된 것 같다. 꽤 충격적인 일인 것 같다. 아이가 부모를 부모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 말이다.

 

헤르만 헤세가 말한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이 바로 이런 순간이 아닐까 싶다. 심장이 쿵 울렸던 느낌과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때의 내가 생생하다. 부모님의 삶을 한 인간으로서의 삶으로 인지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 같다.

 

 

 

관계의 갱신


 

아이에서 막 벗어난 한 평범한 딸이, 이제 부모와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갱신(更新)’의 의미는 유효기간이 지났을 때 그 기간을 연장한다는 의미와 변동된 사실에 따라 변경·추가·삭제한다는 의미가 있다. 부모님과 나와의 관계에서 내가 어른으로 성장한, 아주 큰 변동사항이 생겼으니 ‘관계의 갱신’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다.

 

내가 나에 대해 더 알아갈수록 진지하게 관계갱신 건에 관해 이야기해볼 자리가 많아졌다. 새롭게 생기는 나의 불안함과 통찰을 이야기하고, 나의 불안함을 덮을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알게 되고. 나를 닮은 아빠의 모습을 인정하게 되고, 그래서 아빠에게 나의 고민을 해결할 조언을 구하고.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관계의 갱신’이겠지만, 내가 겪었던 과정들이 행복했고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기에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또 어떤 행운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2주차 표지사진.jpg

 

 

 

아빠와 딸의 관계


 

개인적으로 ‘엄마와 딸’의 관계보다 ‘아빠와 딸’의 관계가 더 어려운 것 같다. 아무래도 같은 성별인 엄마에 비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더 적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엄마보다 아빠와의 관계 갱신을 시작하는 게 더 어려웠다. 심지어 책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큰 도움이 되질 않았다.

 

‘아빠’와의 관계는 내게 큰 짐이었다. 오해를 부를 수 있는 표현인 것 같아 덧붙이자면, 내가 아끼는 중요한 짐이었다. 아빠에게 바라는 나의 이상, 서운한 걸 고쳐줬으면 하는 욕심, 사랑, 고마움, 분노, 섭섭함, 아빠와의 추억과 즐거움, 희생하는 아빠에 대한 안쓰러움, 존경, 닮은 모습에 대한 인정과 부정, 그리고 등등. 아빠는 내게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과 기억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였다.

 

한 번 문을 열고 나면 내내 고민했던 일이 그렇게 걱정할 만큼 어려운 문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지만, 내게 ‘아빠’라는 문제는 유독 문을 처음 열어젖히기까지가 어려웠던 문이었다. 그래서 아빠와의 관계를 큰 짐이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아빠와 진심을 말로 꺼낼 수 있게 되고 나서 ‘해결하고 싶던 짐을 하나 벗어던진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도움이 될 몇 가지 방법


 

첫 번째로 아빠와 갈등이 있을 때 모닝 페이지나 일기에 조목조목 왜 화가 나는지를 적어보는 걸 추천한다. 내가 느끼는 정당한 감정을 인정해주고 구체적으로 이해해보려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무엇이 나에게 어떠한 종류의 감정을 일으켰는지. 내가 바라던 모습은 무엇이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조목조목 적어나가다 보면 갈등의 이면에 있었던 나의 감정과 바람을 마주하게 된다.

 

내 마음을 머리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머리로 정리가 되면 말로 전달하기도 쉬워진다. 마음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미리 말로 적어보는 과정을 한 번 거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적고 나서 며칠 후에 밥을 먹으면서 제대로 말할 수 있었다. 반사적으로 눈물이 나왔지만 울면서도 제대로 하고 싶던 말을 끝까지 할 수 있었다. 내가 내 마음을 분명히 알고 있고 말로 한 번 정리가 되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아빠와 그리고 내 마음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다. 아빠에 관해서 마음이 복잡하다면 글로 풀어 적어보는 걸 추천한다.


두 번째는 엄마와 더 친해지는 것이다. ‘스텝 바이 스텝’이라고 어려운 일이라면 쉬운 단계부터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 아빠와의 관계갱신이 어렵다면 엄마와 관계갱신부터 해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언어로 표현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다 보니 나의 필요에 의해 엄마에게 열심히 애정을 표현했다. 어른으로 커가면서 깨닫는 생각들을 나누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많이 포옹하고 말이다. 그렇게 엄마와 더 친밀한 관계가 되면서 엄마만큼 친하지 못한 아빠와의 관계에 아쉬움을 느꼈다. ‘아빠와도 엄마처럼 진심을 더 표현하는 사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내가 의식하게 된 것이다. 의식하면 나도 모르게 변화가 생기는 법. 시작이 어렵다면 쉬운 단계부터 시작해보길 추천한다.


세 번째는 아빠와 단둘이 통화로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아빠가 약간 술기운에 기분이 좋은 상태라면 또 좋다. 엄마와 더 친해져 있다면 엄마·아빠가 함께 있는 상황에서는 아빠와 깊은 대화를 나누기 어렵기 때문이다. 쉬운 길이 있는데 어려운 길로 굳이 가려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출장을 나온 아빠와 밤에 1시간 동안 통화를 한 그 순간이 나에게 큰 변곡점이었다. 아빠의 이야기를 잘 듣고 내 이야기를 꺼내며 대화를 하다 보니 그 상황에서 신기하게도 낯간지럽지만 중요한 마음도 꺼내놓을 수가 있었다. 아빠의 힘들었던 과거의 이야기, 엄마에 관한 걱정, 내 미래에 관한 나의 불안, 딸에 대한 믿음 등등.

 

아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아빠는 훌륭한 아빠인 것 같다고 말로 표현했던 그 순간이 너무나 강렬하고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빠와의 이런 대화가 자연스러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보는 걸 추천한다. 얼굴을 마주해서 대화하는 것보다 목소리만으로 하는 통화가 종종 더 괜찮은 방법이기도 하다.

 

*

 

사람마다 가족의 모습이 다 다르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가 당신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겠다. 어른이 되어 아빠와의 관계갱신을 바라는 어떤 딸에게 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된다면 아주 기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사랑하고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부모님과 어른 대 어른으로, 그리고 가족으로 남은 생을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람에게 말로 표현하며 살기를 권하며 글을 마친다.

 

 

 

이진교 에디터 (아트인사이트 태그).jpg

 

 

[이진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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