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만화가 대단해! [드라마]

다큐드라마, TV 도쿄, 2018년 작
글 입력 2021.11.0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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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만화 좋아하세요?


 

 

"전혀 안 읽어요. 거의 안 읽고 살아와서 아직까지도 읽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이번에 공부 중이에요. 인생에서 빠진 조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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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읽지 않는 배우 아오이 유우가 매회 다른 연기자들과 만나, 그들 각자가 실사화하고자 하는 만화에 관해 이야기 나눈다. 자신이 동경해왔던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아니 더 나아가 그 캐릭터와 일체화되기 위해 연기자들은 연구를 거듭한다.

 

이 작품은 배우들이 어떻게 자신의 판타지를 실현해내는지 그리는 동시에 만화 초심자 아오이 유우가 만화의 세계에 입문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아오이 유우와의 만남에서 연기자들은 만화를 좋아하기 시작한 첫 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이 삶에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었는지 돌이켜보며 만화의 의미를 곱씹는다.

 

만화를 통해 누군가는 삶의 방식을 깨우쳤고, 누군가는 존재를 위로받았다. 만화는 여행을 갈 수 없었던 유년 시절에 나들이의 기분을 느끼게 해준 유일한 것이었으며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해준 것이었다.

 

이렇듯 삶을 지탱해준 허구세계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연기자들은 작품 속 캐릭터와 조금씩 거리를 좁혀간다.

 

 

 

2. 배우들의 '역할 만들기'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는 단연 배우들의 역할 구축 과정에 있다. 다양한 세대의 유명 배우들이 자신만의 접근방식을 경유해 만화 속으로 들어간다. 어떤 이는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을 재현해보며 캐릭터가 느꼈을 감각을 추측해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만화 속 로케이션을 찾아가 머무르며 힌트를 얻는다. 작가를 직접 만나 캐릭터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완벽한 구현을 위해 연출에 참여하기도 한다. 각자가 고유의 연기론을 전개하며 캐릭터의 매력을 자기 것으로 체현해낸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애정하는 작품과 인물을 재창조해내는 것에 대한 양가적인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실사화로 인해 작품이 왜곡되지 않길 바라는 또 한 명의 팬으로서, 그들은 동료 팬과 자신의 기대 모두를 충족시켜야 하는 압박 아래에 놓인다.

 

실사의 주인공으로 분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 '이 만화만큼은 실사화되지 않으면 좋겠다'라는 은밀한 소망을 떨쳐내야 하며 두 번째, 원작 팬들의 예견된 비판을 각오해야 한다. '성덕'이 되는 것에 대한 순수한 기쁨과 평가대상으로서의 두려움. 배우들은 매 순간 이 모순과 싸운다.

 

이것은 만화의 실사화가 주류적 경향으로 자리 잡은 일본의 영화산업에 대한 생각과도 이어진다. 배우들은 업계의 흐름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입장이라 말한다. 개인적 욕망과 방향을 달리하는 '직업인으로서의 고민'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이러한 자가당착의 상황에서, 그들은 심플하지만 견고한 다짐을 내어놓는다. 거짓 없는 존경의 마음을 가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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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에 대해 거짓 없는 존경의 마음이 있으니까... 검도를 그린 만화를 한다면 그 마음을 잃고 싶지 않고... 앞으로도 원작이 있는 걸 할 때 그 근본에 있는 것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절대적으로 없다면 하면 안된다는 걸 오늘 통감했어요."

 

 

 

3. 이토록 아름다운 덕질


 

드라마는 언제나 안쥬르므의 노래 "저마다 달라도 Like it!"이 울려퍼지며 시작된다.


 

十人十色. 好きなら問題ない ! 

가지각색. 좋아하면 문제없어 ! 

人気ランキングの上の人 好きになる義務はありゃしない 

인기랭킹에 있는 사람을 좋아해야 될 의무는 없어 

笑われてもいいんじゃない ?

웃음거리가 되어도 괜찮지 않니?

誇れ Like it!

자랑스러워해 Like it!

堂々と Like it!

당당하게 Like it!

 


좋아하는 걸 그저 마음껏 좋아하라는 그들의 명랑한 외침과 함께, 종이안경을 쓴 아오이유우가 등장한다. 인트로부터 만화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이 드라마는 현실에 만화문법을 덧대는 방식으로 일상과 비일상을 뒤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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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오이 유우가 좋아하는 비주류 아이돌그룹 안쥬르므의 노래를 통해 덕질의 자유를 선언한다. 누굴 좋아하든, 얼만큼 진심이든 부끄러워할 필요 없으며 그저 "熱く Like it!뜨겁게 Like it! まっとうに Like it!제대로 Like it!" 하면 된다고. 짐작컨대 이 곡은 아오이 유우가 스스로를 넘어 게스트들에게, 더 나아가 이 드라마를 보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일 것이다.

 

실제로 게스트들의 만화 취향은 각양각색이었다. 장르와 세계관, 구조와 그림체 어느 면에서도 서로 겹치지 않았다. 11개의 독특한 작품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띈 것은 배우 모리카와 아오이가 선정한 〈 NHK에 어서오세요 〉라는 만화였다. 이 작품은 '일본방송협회'로 불리는 NHK를 비틀어 '일본 히키코모리 협회'를 설정하고, 히키코모리인 주인공이 그 생활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스스로를 오타쿠라 칭하는 아오이는 이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실제로 히키코모리에서 탈출한 작가의 사연을 통해 구원받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나도 이렇지만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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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오이의 고백이, 이 드라마가 오타쿠라 불리는 이들을 바라보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무엇이든 마음 다해 좋아하면 그만이라고, 그런 자신을 긍정해도 되지 않겠냐며 말 거는 태도 같은 것 말이다.

 

〈이 만화가 대단해!〉는 열한 편의 2차 창작물을 통해 몰입하는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창조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덕질의 아름다움' 아닐까.

 

 

 

4. 이 연기자 대단해!



본래 드라마의 마지막은 내비게이터 역할이었던 아오이 유우가 차례가 되어 실사화를 경험하는 것으로 끝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원하는 캐릭터를 고르지 못한 그녀는 새로운 기획을 제시한다. 이 프로그램 자체를 만화로 만들어 실사화하자는 것.

 

11명의 연기자들과 함께한 시간을 만화로 그려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그녀는 오오하시 히로유키를 찾아간다. 만화가 히로유키와 아오이 유우는 긴 대화를 나누고, 그를 바탕으로 몇 가지의 이미지와 아이디어를 추출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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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역할에 다가가는 걸 보면서 저는 저를 다시 돌아봤어요. 만화라는 것과 그걸 실사화한다는 필터를 빌려서 연기자분들을 알고 싶었어요."

 


연기자를 좋아한다는, 연기하려는 사람의 에너지를 보고 있으면 즐겁다는 아오이유우. 그녀는 이 작업이 연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다고 밝힌다.

 

그녀는 2018년 여름을 차분히 더듬으며 드라마가 선물한 성장을, 의미를, 가르침을 되새긴다. 동행자였던 배우들 또한 그 과정에 힘을 보탠다.


 

"이 책이 계속 저에게 아직 전해주는 게 있다는 것도 엄청난 발견이었고..." - 칸노 미스즈

 

"제가 지금까지 만화를 읽으면서 눈치채지 못했던, 굉장히 여러가지가 보였어요." - 모리카와 아오이

 

"뇌 안에서 그 기세라든지, 자기 취향대로 작품을 보충하는 힘은 다들 굉장하구나 싶었어요. 개개인의 상상력이라 생각하고.." - 히가시데 마사히로

 


이들의 소회가 한데 모여 단편만화 <이 연기자 대단해!>가 탄생한다. 히로유키가 만들어낸 엉뚱한 공상의 세계 안에서, 12명의 배우들이 함께 일궈낸 귀중한 순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유여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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