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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아름다운 기억 - 아웃 오브 이집트

<아웃 오브 이집트>를 읽고

by 정선희 에디터
2021.10.2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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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애치먼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의 작가이다. 많은 사람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좋아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영화만큼이나 너무도 매력적인 원작 소설을 꼭 추천하고 싶다.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을 읽다 보면, 책 속의 이야기들이 눈앞에 잔상처럼 떠오른다. 그만큼 안드레 애치먼의 글은 섬세하고도 정성스럽다. 그래서 나는 안드레 애치먼의 글을 좋아한다. 작가 특유의 섬세한 방식이 독자로 하여금 책 속의 내용에 더욱더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그러한 그가 <아웃 오브 이집트>라는 책을 새로이 발간하여 역시나 발 빠르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이야기하려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내 기억 속에 깊게 자리 잡은 장면 중 하나는 눈부신 햇살 아래 다 함께 둘러앉은 주인공과 가족들, 적당한 바람과 청량한 들판, 그 사이를 가르는 즐겁고 자유로운 분위기 등의 여름과 초가을 어느 즈음의 장면들이다. 보고 듣고, 읽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여유로운 그들의 삶으로부터 받았던 선물같은 위안은 한동안 계속해서 되뇌었던 잊지 못할 장면들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느껴졌던 어린 시절 안드레 애치먼의 회고록 속 이집트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속 장면과 익숙한 듯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미 그의 감성은 어쩌면 어린 시절의 안드레 애치먼으로부터 완성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웃 오브 이집트>는 작가인 안드레 애치먼이 14년간 살았던 이집트에서의 삶과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던 상황들을 그의 어린 시절의 시선으로 나열한다. 안드레 애치먼의 어릴 적, 그 시절에서만 보고 듣고 느꼈을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고, 그의 가족을 통해 이집트에서의 유대인으로서의 삶, 그곳에서 벌어진 일 등 그들의 이야기와 역사의 일부분을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40여 년 전의 추억을 작가 특유의 디테일한 감성으로 마치 어제 일인 양 섬세하게 표현을 하는 방식은 지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굉장히 인상 깊게 봤던 매력이었는데 역시나, 이 책에서도 분명 마냥 좋은 일들만 있었던 게 아니었음에도 안드레 애치먼의 가족과 지인들과 함께 했던 그의 어린 시절은 그에게 있어 그저 아름답고 아련하기만 하다.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의 가족과 관련된 다양한 주변인물들, 유대인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부당한 대우와 고난과 역경에도 아름답고 애잔한 감성을 이끌어내는 그의 필력이 너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읽는 내내 나는 왜 지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의 모습이 줄곧 떠올랐을까. 황홀했던 대자연의 따사로움과 벅차올랐던 아름다움, 코끝을 간질이는 듯한 바다내음,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악과 눈부신 햇살을 좋아했던 섬세하지만 불완전하고 예민했지만 마음이 깊었던 엘리오의 모습과 저절로 오버랩되며 역시나 그의 영화와 소설 속에는 그가 어린 시절 소중히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갔음을 느끼며 무언가 가슴이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나는 이집트라는 나라를 한 번도 가본 적 없다. 유투버들의 여행기에서 보았던 무례한 현지인들의 언행과 행동에 여성들이 기피해야할 여행지 베스트 5위안에 드는 나라 정도, 고대 이집트의 불가사의한 피라미드가 떠오르는 나라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한 이집트에 대한 내 모든 단편적인 기억을 안드레 애치먼은 또 다른 방식으로 깡그리 없애버렸다. 추억 속의 이집트는 분명 현실적으로는 녹록지 않은 힘든 현실이었을지라도 그가 그려낸 이집트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가 표현해 놓은 40여 년 전의 장면들은 마치 영화 속 세트처럼 지금도 이집트 어디에선가 나른한 여름의 오후처럼, 그러한 존재로 있을 것만 같다.

 

마지막 챕터에서 결국 안드레 애치먼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이집트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때까지의 기억이 그에겐 가장 아름다웠고, 그것이 비록 완벽하고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들로만 가득한 아름다움이 아니었어도 어린 나이에 많은 일들을 겪으며 마주한 값진 아름다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기억들을 기록해 두고 싶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다양한 감정이 공존하며 차츰 성장했을 아름다움이기에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삶의 일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그의 감성은 어릴 적, 그곳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그는 앞으로도 늘,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것들을 사랑할 것이다. 그것이 마냥 좋은 것이 아닐지라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오감으로 사랑할 또 다른 것들을 발견해가며 계속해서 기록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늘, 안드레 애치먼의 삶에 무한한 응원을 보낼 것이다.

 

***

 

바포레토는 산자카리아를 지난 후 급강하하듯 널찍하게 돌아 석호를 거쳐 리도로 향했다. 속도가 두 배로 빨라진 배가 시끄럽게 통통거리며 나아갔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안개 자욱한 시로코 날씨가 수그러들었다. 나는 비스듬히 누워 머리를 뒤로 젖혔다. 외할아버지의 농담을 흉내 내 이제 베네치아는 다 본 거네, 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돌려 끝없는 밤으로 가라앉는 베네치아를 바라보며 플로라 숙모를 떠올렸다. 내가 아는 모든 도시와 해변과 여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여름을 사랑한 이들, 한때 사랑했고 이제는 사랑하지도 추모하지도 않지만 지금 이 순간 같은 집, 같은 거리, 같은 도시, 같은 세상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을 전부 떠올렸다. 내일은 가장 먼저 해변에 갈 것이다. p.125

 

옥상은 매우 고요했다. 저 아래에서 윙윙거리는 자동차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손 닿는 것마다 델 듯이 뜨거웠다. 텅 빈 옥상을 돌아다니며 다른 건물들의 옥상을 바라보노라면 무한한 지평선을 따라 늘어진 거대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운 파란색이 시야에 들어왔다. 언제나 나를 손짓해 부르는 바다였다. p.143~144

 

만다라에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가로 달려가 바다 상태를 확인했다. 침대에 누워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만 듣고 그날의 날씨를 알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물살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소리치는 날은 파도가 거칠다는 뜻이었다. 한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파도 소리도, 아이들 소리도, 노점상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공기 중의 무언가가 모든 소리를 덮어 버린 것처럼 고요했다. 그런 날은 플로라 숙모의 표현대로 바다가 엷은 기름막처럼 매끄러워 잔물결조차 없었다.
집 안에 커피 가루 향기가 퍼졌다. 록사네는 아침 일찍부터 주방에서 담배를 피우며 작은 주전자에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수영복 차림이었다. 조이는 아직 잔다고 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고 하인들도 오기 전이었다. 우리는 베란다 문을 조용히 열었다. 성글게 짠 커튼을 들어 올리면 기적 같은 풍경이 나타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주차된 차들의 후드만 이른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그 너머로 모래언덕과 오래된 야자수, 일요일의 고요함에 잠긴 저택들, 반짝거리는 옅은 파란색 바다가 펼쳐졌다. p.375


축축하고 오돌토돌한 방파제 표면을 만지는데 문득 이 밤을 언제까지나 기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이 자리에 앉아 있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산책로 아래의 커다란 바위를 때리는 물소리가 들리고, 해변을 향하는 구불구불한 행렬처럼 어른거리는 아이들의 머리를 바라보며 혼란스러운 갈망에 휩싸였다. 내일 밤도, 모레도, 그다음 날 밤도 다시 오고 싶었다. 이곳을 떠나는 것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이유는 이런 밤이 다시 없으리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저녁에 해안 도로에 앉아 질척한 팬케이크를 먹는 일은 올해도 그 어떤 해에도 다시없을 것이기에. 비록 잠깐일지라도 사랑하는지조차 몰랐던 이 도시를 갑자기 갈망하는 혼란스러운 순간의 묘미 역시 다시는 없을 것이기에.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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