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너는 슬픈 이야기가 아니야 - 월플라워 [영화]

글 입력 2021.09.1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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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혼자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 소년이 있다. 그는 입학 첫날부터, 졸업까지 며칠만 더 버티면 되는지 날짜를 세어나간다.

 

원래 친구였던 이들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서 혼자 점심을 먹고, 수업 시간엔 선생님의 질문에 손들고 대답하기가 눈치 보여서 정답을 알아도 입 밖에 내지 않고 자신의 공책에만 적는다. 어울릴 사람 하나 없이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외톨이, 영화 <월플라워>의 주인공 찰리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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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친구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어쩐지 순식간에 이미 무리가 정해져 버린 고등학교에서 새로 친구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계속해서 주변에 다가가던 찰리는 풋볼 경기를 보다가 패트릭이란 친구에게 말을 건 후로 그와 그의 이복 남매인 샘과 함께 셋이 저녁을 먹게 된다.

 

학교의 홈커밍 파티에서 찰리는 여전히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홀로 벽에 기대어 있다. 영화 제목인 ‘월플라워(wallflower)’는 파티에서 아무도 없이 혼자 벽에 기대어 있는 외톨이, 즉 주인공 찰리와 같은 사람을 말한다.

 

월플라워의 정의와도 같던 찰리는 춤을 추는 샘과 패트릭을 바라보다가 심호흡을 하고 용기를 내어 그들을 향해 걸어 나간다.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춤추기 시작한 그 날 밤, 찰리는 그들의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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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들은 영화를 먼저 보신 후에

아랫글을 읽기를 권장해 드립니다.

 

 

 

월플라워가 되는 것의 특권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홈커밍 후에 패트릭과 샘은 자신의 친구들이 있는 파티에 찰리를 데려간다. 그곳에서 찰리를 위해 건배를 제안하며 패트릭은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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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see things, and you understand. You’re a wallflower."

(너는 세상을 바라본 다음, 그들을 이해해. 너는 월플라워야.)

 


패트릭의 이 대사는 월플라워에 대한 완벽한 재정의다. 천천히, 그리고 주의 깊게 타자를 바라보고 끝내 그들을 이해하는 사람. 샘은 찰리에게 “망가진 장난감들의 성에 온 걸 환영해”라며 그를 반긴다.

 

찰리는 월플라워였기 때문에, 다른 “망가진 장난감”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더 나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음을 알아본다. 이런 월플라워의 능력은 영화 말미에 찰리의 대사를 통해 다시 한번 드러난다. “고통스러운 일이 너무 많아요. 그걸 알아차리지 않는 방법을 모르겠어요.”

 

영화의 원제는 <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이다. 한국에서는 <월플라워>로 번역되었지만, 원제의 뜻은 ‘월플라워가 되는 것의 특권’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원제가 말하고자 했던 월플라워의 특권이란 이런 게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한눈에 알아볼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통까지 민감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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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앉아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기만 하는 건 사랑이 아니야"


 

영화는 이처럼 월플라워의 소중함을 알려주지만, 동시에 월플라워들에게 때로는 용기 내어 사람들 사이로 걸어 나갈 필요도 있다고 말한다.

 

샘과 친구가 된 찰리는 후에 샘을 사랑하게 되지만 그에게 먼저 마음을 표현하지는 못한다. 샘은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 전날, 찰리에게 왜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지 않았는지 물으며 이렇게 말한다.

 

 

"You can't just sit there and put everybody's lives ahead of yours and think that counts as love... 

I don’t want to be somebody’s crush. I want people to like real me."

 

(거기 앉아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기만 하는 건 사랑이 아니야…

나는 누군가의 짝사랑의 상대로만 남고 싶지는 않아. 사람들이 현실의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어.)

 

 

이 대사는 누군갈 사랑한다면 깨지고 상처받더라도 눈앞의 상대에게 다가가서 부딪치고, 그를 겪어야 한다는 걸 깨우쳐 준다.

 

상대에게 다가가 마음을 전하고, ‘내’가 아닌, ‘나와 상대’ 두 사람을 이 사랑의 주체로 만들어야 한다. 멀리서 바라보며 혼자서만, 내 머릿속에서만 그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마치 찰리가 홈커밍에서 벽에 붙어 있다가 패트릭과 샘을 향해 나아갔던 그 순간처럼, 두려워도 용기를 내어 사람들 사이로, 세상 속으로 자신을 던져야 하는 순간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멀찍이서 바라보고만 있는 건 사랑이 아니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두려워 걱정만 하며 피하는 건 현실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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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e not a sad story"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봤던 건 5~6년 전쯤이었다. 그때는 찰리와 이모 사이에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지, 찰리가 샘과 있다가 갑자기 놀란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잘 파악하지 못하면서 본 기억이 있다.

 

그렇게 여러 부분을 놓치면서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내내 무언가 찡하게 기억되었는데, “This one moment when you know you’re not a sad story(니가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어).”라는 찰리의 대사 때문이었다. 나와 내 인생은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 비관하며, 자신을 동정하던 때에 이 대사를 만났고, ‘사는 건 이런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위로를 받은 것 같기도, 혼이 난 것 같기도 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최근, 전체 맥락을 이해하며 다시 영화를 보니 앞뒤 대사까지 함께 가슴에 남는다.

 

 

"And know these will all be stories someday and our pictures will become old photographs …

but right now, these moments are not stories. …

This one moment when you know you’re not a sad story. You are alive. …

and in this moment, I swear, we are infinite."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이야기로만 남겠지. 우리 사진은 오래된 추억이 될 거고 …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야. …

인생은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어. 너는 살아 있어. …

지금 이 순간, 단언컨대, 우리는 영원해.)

 

 

찰리와 친구들의 삶도,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의 삶도 언젠가는 과거가 되어 기록과 이야기 속에만 남게 되는 순간이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의 지금은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을 깊게 이해하고, 때로는 그들과 함께 세상 속으로 우리를 던져야만 한다. 그게 단지 슬픈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삶을, 무한한 지금을 사는 가장 충만한 방법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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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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