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요즘, 뭐 하고 노세요? [사람]

우리는 지금껏 유희하고자 그렇게나 노력해왔다는 것
글 입력 2021.09.0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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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이번으로 벌써 네 번째에 접어든 비대면 대학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매번 비슷하게 녹화된 강의, 비슷하게 부여되는 과제. 대학생이지만 대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갈 수 없는 슬픔은 예상보다 상당했다. 팬데믹이라 일컬어지는 상황은 나아지는 것 같지 않은 가운데, 학년은 오르고 분명 더 바삐 지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게 생긴 변화들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저께 정정기간을 타고 ‘게임 메이킹 워크숍’이라는 전공 강의를 신청했다. 당장 휴학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신선하고 기존의 것보다는 접근이 덜 복잡한 강의가 필요했다. ‘게임.’ 이런 소재라면 왠지 내 지친 영혼을 지혈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첫 오리엔테이션 수업, 교수님께서는 ‘게임’의 본질을 이야기하시며 내가 성장해오면서 재미있게 했던 ‘놀이’들을 되짚어 보고 쭉 기록해 보라고 하셨다. 게임은 본래 놀이에서 온 것이고 디지털의 형태로 변한 것일 뿐이라며. 게임은 나쁜 게 아니고, 그러므로 놀이와 노는 것 역시 나쁜 게 아니라며. 나는 그 말에 새삼 실감했다. ‘아, 나쁜 게 아니었지.’ 그러고는 그간 지나왔던 교육기관 순서대로 지금껏 해왔던 놀이와 그때의 감회들을 거침없이 적어 내려갔다. 유치원,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현재...

 

 

2. (8-11세) 초등학교 저학년 때: 쥬니어 네이버와 야후 꾸러기는 언제나 우리들의 핫플레이스였다. 그 유명한 '슈 게임'부터 '동물농장,' '고기 굽기 게임,' '마법학교 아르피아'까지. 온라인 RPG 게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특히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 '한자마루'와 여전히 인기 있는 '메이플스토리'를 했다. 한자를 온라인 게임으로 배웠고, 야박한 세상을 메이플스토리로 배웠다. 슈 게임은 외모지상주의를, 동물농장은 자본주의를, 고기 굽기 게임은 인생이 타이밍이라는 것을 내게 알려줬다.

 

하지만 학교에 있으면 게임을 할 수 없으니, 지우개와 종합장을 적극 활용해야 했다. 지우개로는 짝꿍과 함께 각자의 캐릭터와 몬스터를 흉내 내며 놀았고, 그 놀이가 시작되는 순간은 항상 수업 시간에 다가왔다. 종합장은 쉬는 시간에 주로 가지고 놀았다. 어디서 본 적 있는 게임은 다 끌어다 종합장에 욱여넣었다. 캐릭터 생성 시스템은 슈 게임을 참고했고, 던전 시스템은 마법학교 아르피아와 메이플스토리를 참고했다. 빨간색 HP와 파란색 MP는 필수. 레벨업은 게임을 종합장에 일일이 그려야 했던 나에게나, 내 게임을 하는 친구에게나 노가다였다. 물론 그래도 재밌었다.

 

문방구에서 팔던 500원짜리 무서운 이야기 모음 책을 보고 대단한 작가적 영감을 얻기도 했다. 그래서 수업 시간이면 공책에 미친 듯이 무서운 이야기들을 지어냈다. 그러고는 꼭 친구에게 보여줬다. 그때 나는 내가 세상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제일 잘 쓰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쓰는 놀이를, 친구들은 그걸 보고 호응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던 거였다. 친구들은 그때부터 사회생활에 능할 인물들이었던 게 분명하다. 나는 물론 글을 쓰고 살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 분명하고.

 

>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내가 했던 놀이 이야기

 

 

그러고 보니 어릴 때 난 정말 잘 노는 애였다. 종합장과 샤프 하나씩만 있으면 한 시간이 될랑 말랑한 수업 시간 다섯 개 정도는 거뜬하게 견딜 수 있었다. 스티커 수집하기, 무서운 이야기 쓰기, 딱지치기, 공기놀이하기, 놀이터에서 ‘지옥탈출’ 하기. 콘텐츠도 이렇게나 많았는데, 심지어는 방학이 오면 한 달 내내 온라인 게임이나 닌텐도 게임 하나에만 온종일을 바칠 줄도 알았다. 솔직히 놀랐다.

 

‘아니, 내가 이렇게 잘 놀았던가?’

 

그렇게 잘 놀고 죽어라 쉴 줄 아는 아이였다고 하기에는, 나는 언제부턴가 그러는 법을 거의 잊어버린 상태였다. 가만히 쉬려고만 하면 그러고 있어도 되는 거냐고, 지금은 놀 때가 아니라 뭐든 해야 할 나이이자 시기라고 되뇌며 내 마음을 혼자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 시간에 공백이 생기면 곧 바로 다른 일을 채워 넣어 매일 더 바쁘게, 더 가만히 있지 않을 수 있게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매일 숨을 헐떡거리며 ‘이제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내 시간을 조금이라도 꽉 채우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결과, 나는 내가 만들어낸 일들을 소화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고자 노는 날을 확보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살기 위해 배드민턴과 필라테스라는 취미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놀기 위해 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쓰러지지 않고 할 일을 하기 위해 노는 것. 그마저도 일주일 중에 하루를 완벽히 놀겠다고 다짐하면, 밤을 새는 일이 있더라도 그 전날까지는 할 일을 다 끝내놓아야 했다. 물론 누군가는 미래를 위해서라면 이것이 바람직한 편이라 말할 수도 있겠다. 어딘가에서 나는 계획적이고, 목표 지향적이며, 미래를 위한 준비를 똑 부러지게 해나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여겨지고도 있다. 그리고 실은 그런 주위의 인정이 내게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정말 힘이 들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이렇게 대학 공부에 열중하고, 대외활동에도 시간을 투자하고,

무수히 많은 경험들에 눈과 발을 들여가며 결국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꿈을 향한 성취들의 수집과 목표하는 업계로의 발돋움? 인정? 그곳에서의 영향력 있는 입지? 안정적인 삶의 완성? 아, 전부 중요하지만 지금껏 찾아온 이 답들이 어딘가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다. 그것들이 내가 얻고자하는 궁극적인 것들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은 물론이거니와, 그 다음과 그 다음다음은 무엇일지 짐작해보려고만 하면 오르고 올라도 계속되는 무한의 계단에 놓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노는 것은 나쁜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시는 교수님에, 무슨 메커니즘에서인지 내 자문에는 이런 매듭이 지어졌다.

 

‘모든 걸 떠나 행복하려고 했던 게 아니던가?’

 


엄마아빠.jpg

> 이미 답을 주셨던 부모님

 

 

나는 무언가를 위한 판을 짜고 아이디어를 마련하는 것, 글을 쓰는 것, 그런 것들이 즐거워 고등학교 때 연극동아리 활동을 했다.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 시청각실에 모여 아이들과 연습하는 시간이, 내게는 놀이 그 자체였다. 그래서 연극은 성공적일 수 있었다.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그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을 하나의 산문으로 완성하고, 문학이나 미디어 작품을 다루고,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이 내 세상에서는 여전히 둘도 없이 재밌고 흥미로운 학문이다.


참 웃기고 어리석은 것은, 지금 그렇게 힘들다고 낑낑대며 하고 있는 모든 것들 역시 그런 경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끌어안고 있는 것들을 전부 사랑하는데, 다 행복하려고 내 곁으로 끌어온 것들인데, 나는 어쩌다보니 이것들에 스스로 파묻혀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이것들을 가지고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에, 이것들을 잘해서 잘되고 싶은 마음에 너무 진심이 되어버려서.


그러나 요한 하위징아는 우리가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고대 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은 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놀기 위한 것이었고, 그들에게 필요 이상의 일은 벌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그들은 잉여노동을 할 필요가 별로 없었으니, 오로지 삶의 질을 높이는 수단으로써 일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놀이하는 인간’들이어야 할 우리에게 오늘날은 대체로 놀이와 노동이 주객전도된 사회겠다.


번듯한 사회인이 되어 제 몸 하나를 건사할 수 있도록 성장하기 위해 너무 어릴 적부터 필요 이상의 공부를 시작하고, 원치 않아도 필요 이상의 경험들을 찾아 나서고, 그렇게 필요 이상의 노동을 얼마나 요구받을지도 모르는 일자리에 목표지점을 두는 우리들. 이런 입장에 서게 되면 비록 필요 이상으로 해야 한다 해도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하며 삶의 질을 높여 나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어떻게든 놀아야 하니까.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런 이유로 좋아하는 걸 찾아야, 장래희망을 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라기도 했을 테다. 나도 그래서 학창시절에는 그렇게나 동아리에 집착했고, 지금은 문화콘텐츠학을 전공하고 있고.

 

 

>쉼없이 달려온 또 한사람

 

 

하지만 만약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며 움직이고 있다면, 오히려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진짜 목표지점이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괜찮은 삶의 질을 위해 움직여나가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노는 것은 무작정 나쁜 게 아니고, 우리는 지금껏 유희하고자 그렇게나 노력해왔다는 것을. 이걸 잊지 않으면 적어도 나중에 있을 행복을 목표하다 지금의 행복과 자신을 스스로 단절해버리는 실수정도는 관둘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뛰고 있는 곳이 쳇바퀴 안일 거라는 상상감옥을 만들지 않을 수는 있을 것이고, 어떻게 노는지를 까먹는 (즉 본질을 잊어버리는) 바보가 되지는 않을 테다. 좋아하는 일도 그래야 계속 좋아할 수 있지! 그러니 가끔은 스스로를 위해 넌지시 물어주길.


“요즘, 뭐하고 노세요? 잘 놀고 계신가요?”

 

 

“모든 문화와 문명은 놀이에서 유래했고, 진정한 문명은 어떤 놀이 요소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 요한 하위징아(1872-1945), 『호모 루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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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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