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우리는 모두 줄 위의 인생 - 창작연희극 '줄 타는 아이와 아프리카도마뱀'

글 입력 2021.09.05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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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인생, 한 줄의 인연


 

극은 하나의 줄로 시작해서 하나의 줄로 끝을 맺는다. 어머니의 탯줄을 끊고 태어나, 이 험난한 세상을 줄 하나만 의지하며 살아가기 시작한 한 아이가 있다. 아이는 막 말을 뗀 상태다. 걷기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냥 해맑은 아이.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조금이라도 몸을 기대면 크게 휘청거리는 줄타기처럼, 아이의 탄생에는 세상과 사람 사이를 헤치고 지나온 한 여자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는 아이와 만난 아프리카도마뱀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아이는 우연히 만난 아프리카도마뱀의 꼬리를 빼앗아 엄마 아빠를 찾아주면 돌려주겠다고 떼를 쓴다. 그렇게 도마뱀으로부터 듣게 된 아이의 가족사는 기구했다. 아이의 어머니는 여자씨, 고불고불 전화줄을 타고 일하던 콜센터 직원. 여자씨는 전봇대와 긴 전선을 타고 일하던 남자씨를 만나 우연히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이 소식에 남자씨는 여자씨를 떠나고 만다.

 

그 이후 여자씨의 일상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불러오는 배를 감추기 위해 두터운 줄로 제 몸을 조이며 여자씨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감내한다. 결국 배를 힘겹게 조여온 탓일까, 그녀는 아이를 칠삭둥이로 낳은 후 마음의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강물로 뛰어든다.

 

하지만 강물로는 이들의 인연은 끊을 수 없었다. 아이를 다시 한번 만나길 간절히 바란 여자씨가 용궁의 신들을 만난 후 새 생명을 얻어 뭍으로 올라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여자씨가 환생한 대상은 다름 아닌 아프리카도마뱀이었다. 전화줄, 전선, 배를 묶던 줄, 탯줄, 그리고 생과 사 이후에도 길고 긴 줄을 따라 이어진 인연. 다소 직관적일 수 있으나 연극은 ‘줄’이라는 하나의 대상을 다양한 상징적 요소로 풀어내며 스토리와 연출을 매끄럽게 통합한다. 인형인 아이의 주된 모션 역시 줄타기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인생을 아찔한 줄 위의 움직임으로 묘사하며 흐름을 심화한다.

 

특히 여자씨와 아이의 인연은 환생을 토대로 다시 연결되는데 이 점을 굉장히 성숙하게 소화한 점이 인상깊다. 아프리카도마뱀으로 환생한 여자씨는 극중 남자 배우가 맡아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을 은근하게 뒤집었으며, 환생 후 말 그대로 ‘도마뱀으로서의 삶’이 주어졌으므로 ‘아이를 지켜주는 엄마’가 아닌 자신의 두번째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된다. 현실에서 아이와 여자씨가 다시 만난 것은 말 그대로 지난 인연을 갈무리하기 위함이었다.

 

마무리에 이르러 어머니의 역할을 지나치게 부각하지 않기에, 어머니와 아이를 각각 사회에 나아갈 독립적인 개체로 이해함으로써 두 대상을 모두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를 뗄 수 없는 한 갈래의 운명으로 여기기보다 아이의 길, 여자씨의 길 두 갈래로 나뉜 앞으로의 인연을 따스하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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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눈물이 어우러진 해학적 매력


 

미혼모, 영아 유기 등의 사회 문제가 나타나지만 그 톤은 지나치게 절망적이지 않다. 문제 의식을 발전시키는 것은 청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극중에서는 이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인물들의 입장에서 상황을 이해하게 만든다. 자극적인 소재라고 생각해 거리낄 것 없이 아동과 성인 모두 관람할 만하다.

 

주인공이 아이인 만큼 일련의 사건을 천진난만하게 받아들이는데 이 점이 비극적인 감상을 부각하는 동시에 순수와 희망을 전하기도 한다. 자신이 이 세상에 홀로 남게 된 것도 탯줄을 끊고 바깥으로 나와 자유로워졌다고 이뻐하는가 하면, 여자씨의 죽음을 듣고는 자신도 강물에 들어가고 싶어졌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아울러 관객이 기억하고 따라 부르기 쉽게 만든 노랫말, 한국 전통 음악과 아프리카 음악을 적절히 변주한 연주곡 등이 합일해 진중한 이야기마저 담백하고 신나게 받아들이게 된다.

 

특히 음악과 완벽히 하나된 춤사위는 주목할 만한 요소다. ‘줄’과 ‘선’을 모티브로 전개하는 동작, 인물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율동 등이 이야기를 실감나게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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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이기에 더 뜻깊은


 

빛이 맺히지 않아 살짝 맹하게 보이는 눈동자, 웃고 있는지 슬퍼하는지 알 길이 없는 묘한 표정, 인간의 것보다 투박하고 큼직하게 생긴 손발까지. 인형극의 주인공에 기대하는 것은 소름돋을 정도로 완벽하게 사람 같은 인형이 아니다.

 

무형의 사물임을 인지하게 만드는 생김새에 감정을 부여해 도리어 인간이라는 존재를 한 발짝 물러나 관조하도록 의도한다. 연극에 나타나는 주인공 아이의 누가 봐도 인형이지만 그래서 그의 감정 묘사와 성장해가는 모습이 더욱 흥미롭다.

 

무엇보다 극에 몰입하게 만드는 것은 인형을 살아있는 것처럼 실감나게 움직이는 단원들의 손끝이다. 아장아장 바닥을 걸어다니는 모습이나 가느다란 줄 위를 타고 노는 모습 등 인형에 숨이 깃든 것처럼 생생한 연기를 보여준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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