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민중 미술과 현실 간의 간극 – 바람보다 먼저 Before the Wind [전시]

바람보다 먼저 Before the Wind
글 입력 2021.09.0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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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보다 먼저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 김수영 「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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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도슨트와 전시를 함께하지 못하는 요즘, 나는 전시연계 교육에 푹 빠졌다. 전시연계 교육은 전문가의 강의를 통해 보다 깊고 이해도 높은 관람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듣고 있는 교육은 수원시립미술관 <바람보다 먼저> 전시연계 인문학 강좌로, 각 분야의 전문가가 전시 공간과 주제에 관련한 심화 내용을 총 3회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이다.
 
전시연계 교육을 신청하기 전, 나는 일찍이 <바람보다 먼저> 전시를 관람했다. 짙은 초록 글씨로 굵게 쓰인 제목만으로는 주제가 무엇일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다만 오랜 휴관 이후 개관한 수원시립미술관의 특별 전시가 매우 궁금했다.
 
<바람보다 먼저>는 민중미술을 주제로 한 전시이다. 민중미술은 1980년대 격변하던 한국의 시대 변화에 발맞추어 태어난 사회·참여적 미술을 이르는 명칭이다. 대한민국 현대미술사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현대미술은 해방과 분단 이후 모더니즘 시대를 맞게 되면서, 민주적 시민의식 성장과 더불어 현실 비판과 저항 정신을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수원을 중심으로 여러 작가들이 어떤 사회상을 반영하고 정치적 메시지를 담아내었는지 소개한다.
 
사실 대한민국의 굴곡 지점을 담아낸 이 전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어 쓰는 글이기도 하다. 수많은 작가와 소집단의 작품들과 메시지를 명확하게 기억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그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작품과 작가를 조금이나마 소개해보고자 한다.
 
 
1부 포인트 수원
 
이 섹션에서는 수원을 중심으로 활동한 민중미술의 그룹과 작가들을 집중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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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경 무제 1990

 

     
황호경 작가의 작품 제목은 <무제>이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위 작품은 지쳐있는 암울한 순간과 현실에 맞서는 저항 정신의 인간상을 보여준다. 목탄지에 콩테로 작업한 것으로, 거침없는 선으로 인간의 거친 삶을 실감 나게 표현했다. 다시 말해 삶과 미술을 결합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중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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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엽 작품

 

     
바닥에서부터 높은 천장까지, 이윤엽 작가의 수많은 작품들이 넓고 높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윤엽 작가는 목판화를 매개로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어 왔다. 황호경 작가 외 손문상, 최춘일 작가와의 교류로 자연스레 미술의 사회적 참여에 눈 뜨게 되었다 한다. 이렇듯 작가의 독립적 예술 활동이 아닌 교류적 활동으로, 서로 영향을 받는 것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관념적인 민중 미술과 실제 민중의 현실 간의 간극을 조명한 듯 보인다. 대한민국의 자연을 담는 한편, 민족 간의 화합과 애국심이 나타난 작품도 여럿이다. 나사 접합 합판화 및 다색 목판화 등 판화의 형식에 있어서도 새로운 시도들을 이어오며, 현실과 예술을 잇는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2부 역사가 된 사람들
 
이 섹션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활동했던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품을 포괄적으로 조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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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군상 1986

 

     
1980년 광주, 그해 봄은 역사적으로 수많은 민중이 끔찍한 고통을 느껴야 했던 암흑의 시기였다. 이응노 작가는 수많은 군중을 수묵으로 작업하여 혼란의 시기를 적극적으로 알리고자 했다. 사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개인 위주의 활동보다는 집단적 움직임이 거세었던 것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선전 이미지였던 작품들이 현장에서 급히 제작되어야 했기 때문에 목판화, 고무 판화, 걸개그림 벽화 등이 주를 이루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응노 작가의 <군상> 또한 거대한 벽화 속에 수많은 군중이 들끓고 있다. 다가오는 새로운 세계를 위해 끝까지 붓을 놓지 않은 작가들에 박수를 건넨다.
 
 
광주의 희생자들은 승리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기억은 영원히 우리들의 피 속에 살아 있고, 자유를 위한 그들의 외침은 예술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많은 화가와 시인을 탄생시켰습니다. 광주 사태를 계기로 내 작품 활동의 목적도 바뀌었습니다. 1967년주터 2년 반 동안의 옥중 생활은 내면 탐색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나 자신만을 위하는 대신 민중의 한가운데 뛰어들어 남은 생을 마감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매일매일 군중의 외침을 화면에 옮기고 있습니다.
 
- 이응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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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수 예감 1985

 

 
민중의 현실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들이 수없이 그려낸 이웃의 현실은 영웅들이 등장하는 역사화와는 거리가 멀다. 정하수 작가는 그늘진 사회적, 역사적 현실을 폭로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표현해냈는데, 작품 속 사람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저 평범한 ‘이름 없는 사람들’이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역사의 그늘에 갇혀있기도 했고 스스로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스스럼없이 걸어들어 가기도 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소외된 이들의 마음과 의식을 회복시키고, 역사의 초상으로 남겨진 이들을 되새기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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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민중에게 ‘현실주의’란 무엇일까.
 
우리들은 사회의 부조리로 인해 억압받는 자, 인권을 유린당한 자,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에서 민족의 현실을 끊임없이 자각하게 된다. 어쩌면 민중의 현실의식은 곧 주체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타인의 인권까지 존중할 수 있는 움직임이 아닐까.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현대미술, 대한민국의 민중 미술의 움직임은 여전히 굳건하다. 노동자, 여성, 사회적 약자 등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전시이다. 그리고 우린 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작가의 움직임을 다양하게 엿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전시를 관람하기 전 궁금한 점이 많았다. 과연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고 바로 눕는 존재는 무엇인지 말이다. 우리가 곧 민중이며 바람을 일으키는 존재였던 것이다. 특히 민중미술의 양상이 노동과 분단, 그리고 여성의 문제를 동시다발적이고 다양하게 폭발시킨 전국적인 양상임을 알 수 있었다.
 
아직 전시를 완벽히 이해하고 정리하지는 못했으나 남은 전시연계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바라본 민중미술과 민중, 그리고 공동체는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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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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