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Video Killed The Radio Star -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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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노시스의 공동 창립자인 스톰 소거슨(오른쪽)과 오브리 파월(왼쪽)
인류가 공유하는 감정에 대해서 생각한다.
'전설'이란 단어가 가지는 서글픔에 대해서 생각한다.
감사히 얻은 시사회를 기회로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을 보고 온 것이 바로 지난 수요일이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 극장 문을 나서며, 나는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바보배> 속 [새로운 유행을 좇는 바보]를 떠올렸다.
예전에는 창피하게 여겼던 일들이
요즘은 예사롭고 대수롭지 않게 되었네.
<바보배>의 여러 목차 중, [새로운 유행을 좇는 바보]는 글쓴이 제바스티안 브란트가 분별없이 유행을 좇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글이다. 유행에 따르는 이들이 그 치장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실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를 신랄한 문체로 지적하는 글이지만, 나는 이 첫 문장에서 글쓴이의 과거를 향한 그리움을 읽었다. 사람들의 행태를 열거하며 비판하기만 하지 않고, 지금과는 다른 보다 정중하고 정숙했던 과거를 회상했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요즘은 예사롭고 대수롭지 않게 되었네."란 문장 속에서 글쓴이의 씁쓸한 감상이 느껴지는 듯했다.
'시대 불문 모두가 가지는 마음이었구나.' 15세기, 그러니까 지금의 21세기로부터 아득히 먼 중·근세의 사람들도 다신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깊이와 정서를 그리워하고, 달라진 현재를 보며 쓴맛을 삼켰구나. 비단 우리만의 그리움이 아니었구나. 백년 전에도, 이백 년 전에도, 몇백 년 전에도 이미 인류가 계속해서 답습해 왔던 정서구나. 그들이 그렇게 혀를 찼던 15세기도 이제는 아득한 옛날임에도 사람들은 더 먼 옛날일 과거의 영광을 추억했다. 자꾸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서글픈 마음으로 종종 뒤를 돌아보며 미래로의 발걸음을 주저했다. 오랜 친구를 만나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는데."하고 불평을 늘어놓던 얼마 전의 내 모습이 600년 전의 작가가 쓴 책에서 그대로 비쳐 보일 때의 기분이란. 소름이 돋았다. 당신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시대가 21세기에선 종종 함부로 재단되어 불리는 '암흑의 시대'임에도, 사람들은 그리워했다. 새로운 유행에 외로워하며 과거의 온기를 다시 찾고, 몸을 데웠다.
핑크 플로이드의 < Wish You Were Here >이 흘러나오던 '포'(오브리 파월)의 조용한 퇴장을 떠올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포의 이 뒷모습은 흑백이 주는 적막감과 직전 장면 그의 흐느끼던 표정으로 고요하다 못해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자신과 자신의 절친 스톰이 함께 이룩한 거대한 업적인 힙노시스의 작품을 위풍당당하게 들고 오던 오프닝과는 전혀 다른 감상이었다. 너무나 가볍다는 듯 한 손으로 작품을 들고 오던 오프닝과는 달리, 마치 본인의 힘에 부치는 짐이라는 듯, 등에 이고 퇴장하는 포의 엔딩은 가로세로 교차해서 묶은 노끈이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의 뒷모습을 연상시킨 탓에 더욱더 무겁고 힘겨워 보인다. 극장의 문을 나오면서 <바보배>의 구절을 떠올린 건 바로 이 마지막 장면이 내게 회한 그 자체로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버글스의 < Video Killed The Radio Star >
해당 뮤직비디오는 MTV 개국 후 처음으로 방송된 음악이기도 했다.
대중예술, 특히 그중에서 음악은 빠르게 변화해 왔다. 노래에 동적인 스윙과 기교를 더한 흑인의 음악 리듬앤블루스가 백인에게 전위되었고, 이후 로큰롤의 시초가 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 Don't be Cruel >를 불렀고 비틀즈가 < Moon River >를 불렀다. 레드 제플린이 헤비메탈로 무대에 올랐고, 젊은이들은 펑크(punk) 음악 속에서 무정부주의를 외쳤으며, MTV의 시대가 열렸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머리를 기르고 부풀려 뱅(bangs)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렸다. 기른 머리를 싹둑 자르며 메탈이 저물어갔고, 얼터너티브가 시작되었으며, 일정한 비트 속에서 힙합이 떠올랐고 커트 코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많은 전설적인 뮤지션이 떠나간 시대에 사람들은 불안하고 흥분되는 마음으로 새천년을 맞이했다. 그 필연적인 시대의 흐름을 힙노시스도 피할 수 없었다.
예술은 자본과 무관할 수 없다. 예술은 비효율이다. 작품은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한다. 즉, 수지가 안 맞는다. 돈, 많은 시간, 노력, 노동력, 인내가 필요하다. 여기서 많은 시간이란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니다. 집중력과 몰입이 담긴 '질적으로 많은' 시간을 뜻한다. 이는 예술이 표현의 일종인 까닭이다.
이야기하는 주체인 작가조차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줄 모르고 있다면 그걸 감상하는 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득력 있게 담아내기 위해선, 작품을 만드는 작가 본인부터 그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어 있어야 한다. 작품 속 요소들을 자연스레 연결 짓고, 구성과 배치를 고민해 겨우 담아내도 닿을까 말까한 것이 의도기 때문이다. 문장의 끝을 생각해 둬야 말을 제대로 끝맺을 수 있듯이, 작가도 자기 작품의 행선지가 어딘지를 그려낼 줄 알아야 한다. 비록 원래 생각했던 행선지에 도착하지 못하거나, 길을 틀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곳에 도달하게 될지라도 열차가 무사히 완주할 수 있도록 철도를 짓고 수리하고 해체해야 한다. 덜컹거리고, 휘청이고, 자신이 만든 철도가 엉성하고 보잘것없어 보인다고 해도 말이다. 이 철로는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가? 이 철로는 얼마나 많은 못질을 하며 고정시켜야 하는가? 이 망치질의 강도는 왜 이만큼이어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던져지는 수많은 '왜?'라는 질문에 답하며 깡깡 못질을 해나간다. 설령 그 질문이 정답이 없는 의문일지라도 자기 나름대로 답을 내리면서 철로를 이어나간다. 종국에 도착한 곳이 지구 반대편이라도 열차는 도착해야 하니까. 예술에 집중력과 몰입이 필요한 이유다.
반면에, 이렇게 자신을 온전히 작품에 쏟아부을 여유가 없는 이들은 작품을 위한 집중력과 몰입을 시급과 교환해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작품 이전에 작가가 말 그대로 살아남기 위해서다. 이들은 작품에 최선의 몰입이 필요함을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 몰입을 깨는 모순을 겪는다. 결국, 깨진 몰입은 기존보다 더 많은 몰입을 필요로 하고, 작가는 저하된 시간의 질을 메꾸기 위해 다시 양적인 시간을 투자한다. 그렇게 작품은 시간이란 자본을 무자비하게 빨아들인다. 오직 자기 재산만으로 작품을 만들어 나갈 수 없는 이들은 이렇게 자본에 연약이 흔들리는 작품을 붙잡고 키를 잡고 전진하며, 후퇴하고, 다시 전진한다. 힙노시스처럼 실제 피사체를 모델로 두는 작업은 작업과정부터가 많은 돈과 인원을 필요로 하니 이 경우는 두말할 것도 없다.
이런 딜레마 속에서 포와 스톰의 갈등이 과연 세속적이기만 했을까. 포는 13년 동안 스톰과 연락을 끊고 지냈다. 15년을 함께 작업하며 한 시대의 음악 아이콘을 만들어낸 그들의 우정에 단절이란 방아쇠를 당긴 것은 결국 돈이었으나, 감히 "결국 돈"이라 평할 수 없다.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의 마지막 장면의 곡이 실린 앨범이자, 불타는 남자의 표지로 유명한 핑크 플로이드의 < Wish You Were Here >은 음악 산업에 '불에 덴 듯' 배반당하는 뮤지션들에 대한 비유를 담고 있다. 예술은 반드시 일정 이상의 돈(자본)을 필요로 하기에 자연히 시장의 변화에 취약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 Wish You Were Here >의 앨범아트다. 이 사진 속의 남자의 불이 꺼지지 않는 이상, 그들의 단절을 단순 세속적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예술은 계속해서 '전설'을 낳는다. 그리고 전설들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찬란하게 빛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탄생하고, 죽음을 맞는다. 비효율의 예술은 효율을 추구하는 시장의 파도에 부서지고 휩쓸린다. 비디오의 출현은 라디오 스타를 죽였고, OTT의 출현은 다시금 비디오 스타를 죽인다. 인류에게 예술이 있는 한, 우리가 짧은 수명일 수밖에 없을 예술을 향유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리움은 인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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