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서사가 보이는 현악 4중주 – 노부스 콰르텟: 브리티쉬 나잇

글 입력 2024.03.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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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보기 어려운 장르임을 차치하고서라도, 클래식은 언제나 어렵다는 생각으로 이번에도 잔뜩 힘을 주고 향한 공연장이었다. 감상은 공연에 따라오는 것이지, 보여주기식 감상을 위해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며 주객전도하지 않기로 마음 먹던 중. 갈색 어둠이 더 짙게 관객석에 내려앉으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노부스 콰르텟은 지난 5년의 시간동안 무려 4차례의 현악사중주 전곡연주 사이클, 런던 위그모어홀 상주음악가 선정, 인터내셔널 음반 발매 등 말그대로 ‘초인적이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행보를 이어왔다. 한시도 안주하지 않은 쉼 없는 이들의 담금질은 또 한차례 높아진 팀의 위상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다. 유서 깊은 세계적인 홀인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에 한국인으로서 최다 초청, 한국인 음악가로 최초의 위그모어홀 상주음악가 선정이라는 이들이 전해준 낭보를 떠올려오면 노부스 콰르텟이 오는 3월 공연을 앞두고 에드워드 엘가, 윌리엄 월튼, 벤저민 브리튼 이 세 명의 영국 작곡가들의 현악사중주 작품들을 고르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예술가로서 끊임없는 추구와 탐구를 위한 원동력을 얻어 ‘나 자신을 또 뛰어넘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은 숙명과도 같은 과업이라고 한다면, 2024년 내년이면 17년차가 되어 가는 앙상블인 노부스 콰르텟에게는 ‘꿈의 무대’ 위그모어홀을 비롯해 영국에서 마주한 수많은 음악적 경험은 이들을 다시 한번 콰르텟을 시작하던 순수한 열정으로의 회귀와도 같은 순간이었다. 전곡 연주와도 같은 초인적인 도전의 완주, 영웅적인 기록들에 젖어 있지 않고 또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네 연주자를 반겨준 음악적 영감의 공간, 영국이 낳은 세 작곡가의 현악사중주 작품을 연주할 예정이다.

 

 

 

오늘부터 알 것도 같아요, 4중주의 매력


 

바이올리니스트 두 명, 비올리스트 한 명, 첼리스트 한 명이 하나의 조합이 되는 현악 4중주는 모든 악기 구성이 다 갖춰져 있는 관현악보다는 작은 규모이지만 독특하고 분명한 매력이 있었다. 이전에도 4중주를 들어본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공연이 유독 선명하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 까닭은 상투적이게도 빼어나게 빼어난 연주자 4인의 실력이었다. 


노부스 콰르텟은 클래식을 좀 듣는다, 안다고 할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해서 현악 4중주의 아이돌이라고도 불린다는 것을 약간의 조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2007년 창단 이후 벌써 20년차를 향해 가고 있는 오랜 경력의 베테랑이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콰르텟이라는 장르가 국내에서는 흔치 않았고 학생 신분으로 시작된 팀이었다는 데서 적잖이 새로운 아우라를 뿜어내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노부스라는 이름에서부터 ‘young, fresh’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니, 능숙한 실력 속에서도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에서 공연 내내 신선한 감상을 받은 것이 착각은 아니었나보다.


콰르텟은 구성이 지닌 매력도 뚜렷한 장르였다. 관현악의 경우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가 한데 어우러져 소리를 내기에 규모에서 오는 웅장함과, 함께 연주하는 악기들이 내는 소리의 조합으로 다채로운 구성과 완급 조절을 비교적 손쉽게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콰르텟은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라는 세 악기만으로 말그대로 선율과 속도, 볼륨 조절을 통해 소리를 만들어가기에 연주자의 실력이 더욱 돋보일 수 밖에 없는 고독한 도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악기에 묻어갈 수도 없이, 바로 옆의 연주자에게만 그것도 힘들 때만 아주 살짝 기대어 온전히 뱃심으로 소리를 하는 창자(창자 한자) 같았달까.

 

감정을 실어 연주하는 그들의 모습에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악기 본연의 매력을 발견하며, 그 풍부함과 다채로움에 나는 계속 감탄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다. 


 

 

영국의 밤에 초대합니다


 

런던 위그모어 홀의 상주 음악가로 선정되었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영국의 음악으로 노부스콰르텟이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일단 관객에게 브리티쉬 나잇이라는 테마를 던져주었기에 나는 하나의 배역을 맡은 것처럼 빠르게 프로그램을 훑어보았다. 역시나 알 수 없는 영어와 숫자의 조합이었지만 모르는 사람일수록 대화를 해봐야 한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감상에 임했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로의 전위가 무르익던 시대에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지켜졌고 발전했던 영국적(British) 감수성이 존재한다. 노부스 콰르텟은 에드워드 엘가, 윌리엄 월튼, 벤저민 브리튼으로 이어지는 영국음악, 더 나아가 근현대 현악사중주 음악의 발전상을 노부스 콰르텟 특유의 예리하면서도 절묘하게 균형감 있는 해석으로 선보인다.

 

비와 안개의 도시를 연상하며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우수(憂愁)와 멜랑콜리의 차원에서 더 나아가 영국 특유의 색채 속에서 노부스 콰르텟이 그간 닦아온 학구적인 레퍼토리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가 그간 현지에서 흡수하고 자신의 음악으로 체화시켜온 영국적 감수성을 통해 아티스틱한 변모를 유감없이 선보일 수 있는 구성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주목해 봄직하다.

 

요약하자면 세 편의 단편극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세번째 네번째의 곡이 비슷한 흐름을 갖고 있는 듯했다. 각각의 곡은 다른 흐름을 갖고 있었지만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첫 순서는 에드워드 엘가의 곡이었다. 사랑의 인사로도 잘 알려져있는 영국의 낭만주의 작곡가답게 명성에 걸맞는 부드럽고 감성적인 연주가 봄날의 정원을 연상케 했다. 여유로움과 분주함이 적절히 혼재해 봄을 맞는 사람들의 기대와 설렘을 회화적으로 그려내는 듯했다. 벌써 머릿속엔 온통 드가의 작품이 여럿 지나가고 있었다. 그 중 한 작품을 잡아 인물들의 표정, 옷차림, 색감을 하나하나 그려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다음 곡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단조작품이었다. 단조로 그려낸 봄의 설렘이라니.


두 번째는 윌리엄 월튼의 곡으로 웅장함과 비장함을 흠뻑 머금은 분위기가 관객을 사로잡았다. 1947년이라는 시대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무게를 잔뜩 잡고서 허무주의에 빠진 지식인의 표정, 지지자가 별로 없는 연설가의 제스처가 아른거리는 분위기였다. 장르에 대한 전문성은 일절 없이 겉핡기식 감상일지 모르겠으나, 결국 모든 관심의 성장은 이런 창의적(?) 관점에서 촉발되기 마련이니, 초심자의 귀여운 발상이라 봐주어도 좋겠다.


가장 영국적인 곡은 역시 마지막 두 곡이었다. 민요적인 색채가 짙은 프로그램이어서 이 두 곡만으로도 오늘이 브리티쉬의 나잇이라 이름붙여도 합당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엘리자베스 왕조 이래의 영국음악, 민요에 크게 영향을 받아 동시대적 재해석을 거쳐 만들었다는 그의 곡에서는 자국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 동네, 공간을 익숙하지만 친근하고 매력있게 소개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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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웠던 것은 네 곡 모두 굉장히 빠른 템포와 날렵한 연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시대인지, 작곡가인지, 국가의 특성인지 모르겠으나 급박한 긴장감이 계속되는 구성에 관객들의 집중도는 올라갔으나 연주자들의 체력이 우려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념을 갖고 악장의 마무리에서 매번 완벽한 결실을 맺고야 마는 그들의 실력은 찬사가 담긴 박수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불러냈다. 세 곡을 앙코르로 더 듣고 나서야 관객은 그들을 놓아줄 수 있었고, 서운함 없이 감사함을 안고서 기억에 남을 좋은 이별을 맞을 수 있었다.

 

연주자와 관객, 테마가 있는 곡 선정으로 영국의 흥미로운 서사에 편안하게 담뿍 젖어 감상했던 현악 4중주 브리티쉬 나잇. 재연이 벌써 기다려지고야 만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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