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윌리엄 웨그만 - 서로의 우주가 된 인간과 동물

글 입력 2021.08.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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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Wegman

 

 

털복숭이 친구들

네 발 달린 친구들


언제부터였을까. 필자도 모르는 취향을 한낱 휴대폰에게 간파당했을 때가.


휴대폰 사진첩에 뜬 두 문구. ‘털복숭이 친구들’, ‘네 발 달린 친구들’. 휴대폰은 지난 몇 달간 필자도 모르게 보기만 하면 셔터를 누르는 특정 피사체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전 직장에서 공동육아했던 말티즈 보리, 사람 손을 많이 타 동네 고양이들에게 소외되는 터줏대감 길고양이 누리, 자신이 사람인 줄 아는 친구네 강아지 하루 그리고 귀여움에 미간을 찌푸리며 저장한 유튜브 속 반려동물들.


사진첩의 콘셉트는 ‘자연스러움’이다. 행인의 시선에도 당당히 배를 드러내고 인도에 누워있는 고양이, 완벽한 범죄를 꿈꿨지만 입 주변 양상추와 소스는 숨기지 못한 샐러드 절도견 보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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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Wegman

 

 

하지만 사진작가, 화가 그리고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윌리엄 웨그만의 콘셉트는 필자와 확연히 다르다. 프레임 속 14마리 털복숭이 친구들은 하나같이 컨셉츄얼하고 해학적이고 상징적이다.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다.

 

 


윌리엄 웨그만의 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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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Wegman

 

 

50년 전, 윌리엄 웨그만의 가족이 된 견종 바이마라너.

 

 

바이마라너(Weimaraner)

독일에서 사냥한 새를 물어오는 목적으로 개량한 개의 한 품종이며, 회색의 짧고 매끈한 털이 전신을 덮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네이버 백과

 


만 레이(Man Ray). 작가 윌리엄 웨그만이 가장 존경하는 사진작가의 이름을 따서 지은 그의 첫 번째 바이마라너 반려견이다. 주인과 반려동물, 이 관계에서 발전하여 그들은 작가와 모델이 되었다. 만 레이가 윌리엄 웨그만의 첫 번째 뮤즈가 된 이후 캔디, 토퍼, 페니, 배티, 천도, 크루키, 칩 등이 바이마라너 가문의 모델 경력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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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Wegman

 

 

윌리엄 웨그만은 모델인 바이마라너의 행동, 패션 등에 그의 예술 사조, 사회 현상 등을 투영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메시지를 담기 마련이다. 해당 작품에서 윌리엄 웨그만은 대중을 기만하는 정치인들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사회 비판’. 자칫 단조로운 메시지가 될 수 있는 주제를, 작가는 전달 방식에 변주를 둬 대중에게 신선함을 선사했다.


즉, 그에게 있어 바이마라너들은 최고의 표현 방식이자 전달 수단이었다.

 

 

 

모델의 자격 논란(?)



윌리엄 웨그만이 자랑하는 그의 모델들. 작가의 영상과 사진, 심지어 유명 패션 잡지에서도 당당히 고개 든 바이마라너들.


과연 그들은 모델로서 몇 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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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Wegman

 

 

이 공허한 눈빛을 보라.


작가는 해당 작품을 통해 상류층의 화려한 삶에 가려진 공허함을 드러내고자 했다. 상하의, 액세서리까지 강렬한 빨간색으로 깔맞춤하며 매운맛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바이마라너. 하지만 그의 내면은 옷만큼 그리 선명하지는 않다.


공허한 눈빛, 시선이 어디에 닿는지도 모를 흐릿함. 이 모델보다 인간의 양면성과 인생무상의 깨달음을 두 눈동자에 담을 수 있는 자가 있을까. 일단 필자는 두 손 두 발을 든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은, 모델들은 촬영 내내 무슨 생각을 할까. 작가가 내리는 미션을 성공한 후 다가올 달콤한 간식만을 생각한걸까.


어떤 이유든 그들이 프로페셔널한 모델인 건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인간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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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Wegman

 

 

윌리엄 웨그만에 대한 비판이 있진 않을까.


지난 2020년, 한 케이블 방송사에서 방영된 프로그램도 비슷한 논란을 겪었다. ‘집사도 모르는 고양이들의 속마음을 낱낱이 파헤치는 신개념 고양이 예능’이라는 기획의도. 고양이의 마음을 헤아려보자는 기획의도가 무색하게도, 제작진은 주인공인 고양이를 방송에서 ‘사용’하기 위해 단기 임대한 숙소에서 지내게 했다. 그 외에도 고양이를 소품 그 이상 그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은 지점이 몇 가지 더 있었다.


더하여, 프로그램의 핵심 포맷은 고양이의 마음을 나레이션하는 것. 하지만 실제 고양이가 ‘야옹~’할 수 없으니 인간의 목소리로 진행. ‘나레이션이 몰입을 깨는데?’정도로만 생각한 필자는 회차가 거듭할수록 나레이션이라는 장치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나레이션은 모두 가상의 스토리. 즉, 동물행동전문가 등 고양이의 행동과 심리를 분석하는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작성된 대본이 아닌 오직 인간의 시선에서 동물의 행동을 일방적으로 해석한 ‘대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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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Wegman

 

 

윌리엄 웨그만은 반려 동물에게 옷을 입히고, 특정 행동을 취하게 하고, 특정 부위에 큐브를 올리고 집중하게 한다. 작가의 영상에서는 4마리의 바이마라너가 알파벳 'A, B, C, D'를 온몸으로 만들고 공원에서 사람인척 변장을 한 뒤 기름진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와구 먹어버린다.


하지만 그의 작품 활동이 용인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샤넬, 디올, 입생로랑 등 유명 패션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하며 작가의 작품 세계가 인정받고 있을까.

 

 

 

윌리엄 웨그만이라면



자격이 있지 않을까.


메이킹 필름에서 모델들은 촬영 내내 꼬리를 마구 흔든다. 꼬리가 매우 산만하다며 태도 논란(?)이 있을 정도로 활발하다.

 

 

영리한 바이마라너는 머리와 몸통을 흔드는 깜찍한 재주를 부리며 착시 현상을 이용하여 8개의 눈을 지닌 무시무시한 괴물의 형상을 띈 심령으로 둔갑하여 인간을 깜짝 놀래킬 수 있다. 이러한 기상천외한 잔꾀에 대한 비밀은 사진작가에게도 털어놓지 않는다.

 

- 전시 설명 중

 

 

사실 이 작품에 출연한 모델 캔디(Candy)는 이런 점잖은 자세보다는 달리기와 점프, 공중부양, 물구나무서기 같은 곡예를 더 좋아하는 무척 활동적인 친구라는 건 안 비밀입니다.

 

- 오디오 가이드 중

 


전시장 내에 있던 설명은 100% 완벽할 수 없지만 동물을 주체로 하여 작성되었고, 오디오 가이드에는 각자 다른 바이마라너의 특성이 있었다. 캔디가 공중부양, 물구나무서기를 좋아한다는 건 그와 많은 시간을 보낸 주인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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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Wegman

 

 

윌리엄 웨그만은 작품 활동 초창기, 개와 인간의 상호 관계에 집중했다. 그 후 그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예술 사조 등을 접목하며 바이마라너와의 작품을 발전시켰다.


물질적으로나 비물질적으로나 윌리엄 웨그만이 바이마라너들에게 쏟은 정성은 헤아릴 수 없다. 작가는 첫 번째 뮤즈인 만 레이가 세상을 떠나고 두 번째 뮤즈인 페이 레이(Fay Ray)를 받아들이기 까지 4년이 걸렸다고 한다. 윌리엄 웨그만과 만 레이는 서로의 깊은 우주가 되었다.


그렇기에 찰칵! 한 번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폴라로이드에 모델을 담을 수 있지 않았을까. 몇 장의 필름이 버려졌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그 시간을 함께 보내진 않았지만 작품을 보는 내내 모델들이 기특하기도, 주인과 동물 사이의 연대감이 느껴져 코끝이 찡하기도, 뭉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면, 사진을 찍기 위해 작가는 모델에게 얼마나 많은 개껌을 줬을까.

 

 

 

우주가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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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Wegman


 

누군가 필자에게 이러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은 배신하지만 동물은 배신 안 해”


대화를 나누며 관심사와 가치관을 나눌 수 있는 인간이 좋다. 하지만 인간관계에 지칠 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동물이 좋다.


그래서 최근(정확히 말하면 어제)집사가 되었다. 이름은 ‘지구’. 세계일주가 꿈인 필자의 욕구가 반영된 2개월 남짓한 크림색의 미묘다. 수많은 바이마라너의 우주가 되어주었던 윌리엄 웨그만처럼, 자신의 견생을 윌리엄 웨그만이라는 주인으로 가득 채운 바이마라너처럼, 서로에게 특별한 삶을 선사하고 서로에게 깊은 우주가 되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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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lliam Wegman

 

 

전시 <윌리엄 웨그만> 전.


털복숭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윌리엄 웨그만과 바이마라너들의 따뜻한 관계를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가지는 건 어떨까.

 

 

[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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