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구를 산책하며 침략할 수 있는 외계인이 있다고? - 산책하는 침략자

글 입력 2021.08.1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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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아트센터 SPACE 111에서 공연되는 SF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는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희곡을 원작으로 했다. 산스크리트어로 LAS(라스)라는 뜻을 가지며 ‘연극은 놀이다’라는 정체성을 추구하는 창작 팀 LAS가 연극을 이끌어 나갔다.

 

사실 이 연극은 2018년부터 시작해 삼연째 진행되고 있다. SF 연극이 초, 재연에 끝나지 않고 삼연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연극일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 연극이 지속적으로 사랑받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지구를 산책하며 침략할 수 있는 외계인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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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미군 기지의 전투기 소리가 고조된 어느 날, 일본의 어느 작은 항구 마을에 3일간 실종되었던 남편 ‘신지’가 죽은 물고기를 손에 쥔 채 돌아온다. 아내 ‘나루미’는 곧바로 ‘신지’를 마주한다. 하지만 기존의 ‘신지’와 외형만 같을 뿐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가진 채 나타난다. 비슷한 시기에 이 마을에서는 괴이한 일이 생겨났는데 할머니에 의해 일가족이 살해당하고 손녀만 살아남은 사건이 발생한다.

흉흉한 마을에선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며 불안감이 고조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을엔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한 병이 발생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지’는 어느날 나루미에게 지구를 침략하러 온 외계인이라고 고백을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산책을 하며 개념들을 수집한다는 수상한 외계인…. 그 외에 2명의 외계인도 개념을 훔치는 작업을 수행하며 개념을 잃어버린 정신과 의사, 나루미 언니 등 마을 사람들은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작전을 수행한 외계인들은 지구를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나루미는 ‘신지’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인가 주게 된다. 무엇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이야기해 볼 것이다.
 
이 연극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인간의 욕망과 감정들을 섬세하게 드러낸 SF 연극이다.
 
 
 
기표와 기의


이 연극에서 개념을 빼앗아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단어들을 언급한다. 상대방이 단어에 대해 떠오르는 것들을 연상하면 외계인은 이 단어의 개념을 가져갈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은 그 개념을 영원히 잃게 된다.
 
필자는 이 장면들에서 소쉬르의 언어학이 떠올랐다. 소쉬르는 기호를 기표와 기의의 '임의적' 결합으러 규정하며 그 혁명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단어 그 자체는 소리 나는 기표로서 단어(signifiant)일 뿐 감각으로 지각할 수 없는 뜻의 면인 기의(signifie)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연극이다.
 
우리가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사용했던 단어들 가족. 직업, 자유 등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고민해 보게 된다. 그리고 이 단어를 뜻하는 개념들이 우리의 일상에서 사라진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너무 막연히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연극이다.
 
 
 

개념에 대한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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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때론 우리 사회를 규정하고 있는 개념들이 없어져 또 다른 자유를 찾을 수도 있다. 등장인물 중 `마루오`는 `신지`가 `소유`라는 개념을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자신을 묶어두었던 쇠사슬을 벗어낸다. 그는 `소유`라는 개념을 잃고 의욕 없던 삶에서 희망을 찾게 되었다.
 
필자는 이 장면을 통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개념들이 어쩌면  `마루오`처럼 나 자신을 구속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만약 `신지` 와 같은 외계인이 정말 존재한다면 나도 나를 옥죄고 있는 개념을 주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에 한편으론 부러웠다.
 
실제로 이러한 개념을 가져가는 외계인은 없지만, 우리가 고민하던 것들 또는 우리를 구속하던 개념에서 탈피해 자유를 찾는 현대인이 되어보려 노력하면 어떨까?
 
 
 
SF 연극에서 나타난 ‘사랑’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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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 / ⓒ옥상훈

 

 
이 연극을 보며 내가 주목하고 싶은 단어는 ‘사랑’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에겐 당연히 가져질 수 밖에 없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며 욕망이다.
 
연극 <산책하는 침략자>에서 아내 ‘나루미’가 남편 ‘신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여준 개념은 바로 ‘사랑’이었다. SF 연극에서 사랑 이야기는 조금 어울리지 않다는 편견이 이었지만 <산책하는 침략자>연극이었기에 ‘사랑’을 잔잔하고 섬세하고 풀어내지 않았나 싶다.
 
지구를 떠나게 된 ‘신지’에게 ‘나루미’는 사랑이란 개념을 주게 된다. 사실 이 장면은 얼마나 나루미가 신지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누군가를 가슴 저리게 사랑했다면 상대방이 나와 같은 마음이길, 그리고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랄 것이다. 사랑이 시작되면 일종의 상대방에게 기대라는 감정을 무의식 속에 품게 된다. 나루미는 자신의 사랑을 신지가 알아주길 바랐던 것 같다. 자신과 똑같은 마음이길 간절히 바라며.
 
필자가 생각하는 '사랑'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필수적인 감정으로서 ‘사랑’이 있으므로 인간이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사랑’이란 기의는 영화, 노래, 미술, 연극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수 세기에 걸쳐 표현됐다. 그리고 매일 경험한다.
 
근데 왜 ‘사랑’은 질리지 않는 것일까? 매일 사랑 노래를 듣는데도 고리타분하지 않은 이유, 매번 사랑에 실패하는데도 다시 사랑하는 이유는 ‘사랑’이 있어야 인간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개념을 부들부들 떨며 줄 수 있는 ‘나루미’의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도 누군가에겐 용기를 내어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박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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