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2014년 아침 [음악]

글 입력 2021.08.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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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유독 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이 있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이 끝나면 도서관을 찾았더랬다. 매일이 똑같은 일상에서도 유난히 해야 할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 돌연변이 같은 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날이면 손에 잡히지 않는 일에 애써 매달려 있기보다는, 도서관 발코니로 나와 캄캄한 하늘과 밤공기 같은 것들을 느끼며 답답한 마음을 대변해줄 노래를 찾아 듣고는 했다.

 

마음이 답답할수록 빈틈이 없는 음악을 들었다. 잔잔하고 고요한 음악으로는 온갖 잡생각들을 쫓아보낼 수 없었기 떄문에, 잠시라도 다른 생각 없이 멜로디와 가사에만 빠져있고 싶었다.

 

밴드 음악에 빠지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목소리가 멈춰도 악기들이 소리를 채우며 빈틈을 내어주지 않는다. 악기들은 저마다의 흐름을 가지고 곡을 이어나가고 서로 어우러진다. 나는 그중에서도 일렉기타 소리를 제일 좋아했는데, 귀를 사로잡는 기타 리프와 솔로에 집중하다 보면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을 리 만무한 팔천 원짜리 편의점 이어폰으로도 음악뿐에는 없는 세상처럼 느껴졌다.

 

 

 

나의 2014년 아침


 


 

 

등 뒤까지 쫓아 온 헤어짐의 그림자는 

일정하게 쪼개진 시계바늘의 초침 사이로 

가슴 아프도록 치열했던 나날들 

거품같이 부셔진 추억들은 모래사장에 남긴 채


 

나에게 Pathetic Sight는 아직 겪어본 적 없는 미래에 대한 동경인 동시에 그 시절의 나를 위로해주는 음악이었다.

 

책상 위에서 보내는 이 아득한 시간을 지나고 나면, 자유로이 밤바다를 친구들과 여행하기도 하고, 사랑과 우정에 울고 웃으며, 달콤 쌉싸름한 20대의 청춘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멀게만 느껴지던 '면허', '바다', '술 기운'과 같은 '어른스러운' 단어들이 로망으로 다가왔고, 즐겁고 치열했던 청춘의 시간 끝에서 뒤를 돌아보며 추억하는 듯 애틋한 감성은 당시 10대였던 내가 겪어보지 못한 20대 청춘에 대해서 그리움까지도 짐작하게 했다.

 

그 누군가의 '가슴 아프도록 치열했던 나날들'이 결국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곡이 되어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곡의 화자마저도 이 시절을 추억하며 애틋함을 느낀다는 점에서 용기를 얻었다. 지쳐도 힘들어도 그 순간을 버텨내 흘려보내고 난 후에는, 뒤를 돌아보며 추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순간을 버텨낼 용기를 찾아내 손에 쥐었다.

 

 

 

나의 2021년 아침


 

거기까지가 나의 2014년 아침이었다면, 현재 20대를 함께하고 있는 나의 2021년의 아침도 있다.

 

10대에 꿈꿨던 20대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돌이켜 생각해봤다. Pathetic Sight 속 화자의 회상 같은 모습을 꿈꾸지 않았나 싶다. '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된' 친구의 차에 '무작정 올라타' 떠나는 것처럼 무모하고, 즉흥적이고, 도전적인 면모라든지, '가슴 아프도록 치열했던' 날들을 추억한다든지, 격정적인 무언가를 상상했던 것 같다.

 

그러나 20대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루하루가 흘러가듯이 성인이 되었고, 세상이 뒤집히고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이 20대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20대의 일상이란 애매모호하고, 인생의 성공에는 대학 입시보다도 뚜렷한 왕도라고 할 것이 없으며, 실패는 수십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가 여기 있었단 사실을 과연 누가 증명해 주려나

어째선지 나만 빼고 다른 것 같아

어째선지 나만 빼고 변하는 것 같아

익숙한 척 괜찮은 척 하는 것도 나뿐인 것 같아

 

- 맞은편 미래 中

 

 

그렇게 얼렁뚱땅 성인이 되었고, 이제는 20대 중반에 접어든 나는 지금 아침의 음악에서 새로운 가사가 보인다.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달려왔다. 옆 주자에게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나는 나의 꿈을 좇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건만, 누구도 관여하지 않는 어른의 삶은 외롭다. 지금 이것이 옳은 방향인지, 다음 단계로 넘어선 것이 맞는지 무엇 하나 채점해주는 이 없이, 그저 나에게 끝없이 질문하며 나의 길을 간다.

 

과거와도 비슷한 듯 다르게 20대의 막연함과 불안함은 때가 왔다는 듯 찾아왔다. 지금의 나는 미래에 대한 환상이나 동경을 통해 버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의 나이대에 느끼고 남겨둔 음악을 통해 그들이 앞서 겪었을 것들을 이해한다. 그 마음이라든지 상황이랄 것들을 이해하기 때문에 위로를 받고 이 시기 역시 버텨낼 명분을 또 찾는다.

 

 

변하지 못하는 것과 변하는 것 중 어느 쪽을 따라가야 해

나는 어느 쪽에 서있는 걸까 어느 쪽에 서야만 할까

 

- 딱 중간 中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들리지 않던 가사가 들린다고는 한다.

 

그들이 지나간 20대의 자취를 이제는 내가 따라 밟고 있다. 예전엔 그저 좋아서 듣던 노래들이 이제 나에게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겠지만, 어쩌면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고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으로 되어가는 과정에서, 무엇이 되어가는지 모른 채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20대의 나에게, 20대의 아침은 나도 그러했다고 말한다. 어디론가 방향을 제시해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오래전 같은 시기를 겪었던 그들이 있었고, 그들이 꽤 괜찮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또 하나의 시기를 버텨낼 용기와 힘이 된다.

 

 

"음반을 듣는 모든 이들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화려한 소리나 유려한 가사에서 느껴지는 자극을 넘어 '당장 뭐라도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다. 누군가는 유치하다고 비꼴지도 모르지만, 이게 우리의 솔직한 바람이다."

 

- Hunch 앨범 소개글 

 

 

[weiv] : '이런 정서'를 가진 음악을 어떤 사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권선욱 : 조금 웃기는 이야기인데,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꿈이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좋겠어요. 인생에 대한 목표라든가 현실적인 포인트를 바라보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요.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제가 그런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으면 좋겠어요.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 weiv 인터뷰

 


Pathetic Sight가 수록된 아침의 정규 1집 'Hunch' 앨범 소개와 음악 웹진 [weiv]의 권선욱 인터뷰를 읽고 나서 그들의 음악을 관통하는 지향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꿈과 이상을 좇아왔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추구해왔으며, 음악을 통해 그들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누구에게나 아침의 음악은 결국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아침은 10대의 나에게 미래에 대한 부푼 기대감으로 수험시절을 버티게 해주었고, 이제 20대 사회초년생이 된 나에게 너뿐만이 그런 고민을 하는 건 아니라는 위로와 버팀목이 되어준다. 나의 과거를 끌어주었고 현재를 있게 하며 미래를 꿈꾸게 하는 아침의 음악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부디 오래 함께하며 더 많은 시간과 경험을 나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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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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