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운드 오브 메탈 - 상실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영화]

나라고 생각하던 것들을 잃을 때,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글 입력 2021.07.3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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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4월, 영화 미나리와 배우 윤여정 씨의 인기에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챙겨 보았다. 여우조연상 수상을 기다리는데, 국내에서 들어보지 못했지만, 다양한 부문의 후보로 계속 호명되는 영화가 있었다. 이름이 강렬해서 한번 들으면 잊기 힘든, ‘사운드 오브 메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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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마더의 첫 장편 영화 연출작, '사운드 오브 메탈'은 2021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포함해 총 6개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편집상과 음향상을 수상했다.

 

‘사운드 오브 메탈’은 갑작스럽게 청력을 잃게 된 드러머의 이야기를 다룬다. 2인조 헤비메탈 밴드 블랙가몬의 드러머인 루벤(리즈 아메드)는 어느 날 귀에서 이상 증세를 발견한다. 음악으로 살아가던 그가 청력을 잃고 맞이하는 삶의 새로운 면에 대한 영화이다.

 

 


나라고 부르던 것들을 잃을 때



포스터를 보고 위플래쉬 같은 강렬한 음악 영화를 기대했다면 당황할 것이다. ‘사운드 오브 메탈’에서는 오프닝 직후 주인공이 청력에 이상이 생기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헤비메탈 드러머로서의 루벤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루벤을 비춘다.


영화는 주인공 루벤을 비추면서 시작된다. 2인조 헤비메탈 밴드 블랙가몬의 열정적인 드러머. 공연에서 팬들의 응원은 뜨겁다. 같은 밴드의 가수자 애인인 루와 함께 캠핑카에서 생활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그녀를 위한 아침을 차리고, 운동하고, 음향 기기들을 조심스레 정비한다. 행복한 표정이다.

 


films without faces - Sound of Metal (2019) dir_ Darius Marde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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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 루와 함께 밴드 생활을 하던 루벤

 

 

잔인하게도, 영화는 곧바로 루벤을 이루던 것들을 앗아버린다. 어느 날 그의 청력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당황한 루벤은 홀로 병원을 찾는데, 의사는 그의 청력이 20%도 남지 않았으며 큰 소리에 노출되지 않고 지내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수술이 가능하지만, 그가 당장 부담하기에는 큰 금액이다.

 

짓궂은 농담처럼 찾아온 갑작스러운 이상에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무대에 서보지만, 무너질 뿐이다. 뒤늦게 애인에게 털어놓고, 그는 밴드 스폰서의 조언에 따라 ‘조’가 이끄는 농인 커뮤니티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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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찾아간 병원의 복도에서 그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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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고립된 루벤에게 다가가는 조

 

 

당장 돈이 없는 그를 기꺼이 받아주는 단체이지만, 조건이 있었다. 핸드폰도 반납하고, 인터넷도, 전화도 없이 외부 세계와 단절되는 것이다. 그의 삶의 이유였던 루와도 떨어져 지내야 한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음에 좌절하며 커뮤니티에 들어간다. 루에게 자신을 기다려달라고 약속을 하고서.

 

이처럼 영화의 초반에는 상실을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도 함께 청력에 이상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음향을 따라 루벤에게 몰입하여 상황을 바라보게 된다. 그를 둘러싼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들리지 않기에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자신을 두고 애인은 무어라 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불투명하다.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드럼을 더는 칠 수 없다. 갑자기 무능하게 된 그는, 애인의 곁에서 아침을 챙겨줄 수 없다.

 

캠핑카 열쇠까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빼앗긴 그는 위태롭다. 그가 익숙한 방식으로는 소통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 남겨진다. 더는 이전의 호칭으로 불릴 수 없다. 그의 이름은 이제 수화 이름으로 불린다.

 

거짓말 같은 상황 속에서 분노로 가득 찬 그에게, 조는 ‘청각 장애인 되는 법 익히기’라는 과제를 내준다.

 

처음에는 낯설게만 느껴지던 이들과 농담을 나눈다. 멀게 느껴지던 아이들과 어울리며 논다. 그곳에서 그는 드러머 루벤도, 누군가의 애인도 아니지만, 그는 여전히 루벤이다. 그가 전부라고 여겼던 이름들을 잃는다고 하여 자신마저 잃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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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공동체의 일원이 된 루벤


 


고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렇게 루벤은 커뮤니티에 적응하고 새로운 자신을 받아들이며 잘 살아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루벤은 자신이 그대로 있으면 여자친구 루에게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으로 조 몰래 캠핑카와 음향 장비를 팔아 수술을 받는다.

 

루벤이 커뮤니티에 잘 적응하는 것은 보기 좋으면서도, 얼른 수술을 받아 드러머로서의 꿈을 다 이루길 바라는 마음, 애인과 다시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이 복잡하게 섞여 그의 선택을 지켜본다. 어느새 루벤의 입장이 되어 고민하다 보면 그의 수술은 모든 상황을 타개할 것만 같다. 새로운 사회에서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평범한’ 일상을 되찾을 방법이 있다면, 그게 우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루벤에게 몰입하여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즈음, 수술이 끝나고 돌아온 루벤에게, 그리고 지켜보던 관객에게 조는 중요한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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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 : Ruben. As you know, everybody here shares in the belief that being deaf is not a handicap. Not something to fix. It's pretty important around here. All these kids... all of us, need to be reminded of it every day.

 

조: 루벤, 알다시피, 이곳의 사람들은 같은 믿음을 공유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불리한 장애가 아니라는 것이지. 고쳐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고 말이야. 여기에서는 이 믿음이 중요해. 그 아이들… 우리 모두, 이 믿음을 매일 상기해야 해.

 

 

루벤도, 영화를 보던 나에게도 잘못된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어느 날 청각 장애를 갑작스레 가지게 된 주인공을 무의식 중에 동경하며 보고 있지는 않았는가. 어찌 되었건, 그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 여기지 않았나.

 

조가 루벤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사는 삶도 고려하길 바랐던 것처럼, 영화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저 또 다른 삶의 상태에 불과하다고 알려준다.


영화의 초반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커뮤니티에 들어온 지 며칠 안 지났을 때, 루벤은 평소의 부지런한 습관대로 아침 일찍 일어나 지붕 처마를 고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조는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고칠 필요가 없다’고 일러준다.

 

“You don’t need to fix anything here”

 

무엇이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그에게 강박을 내려놓으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동시에, 약간의 흠집일지라도 얼른 고쳐 평균치로 만들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되리란 두려움이 가득한 나에게 하는 말이라고 느껴졌다.


조금의 흠집도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낡은 것들을 모두 새것들로 대체하는 곳에서 고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얼마나 큰 위로인가. 영화에서의 청각 장애는 그저 비유일지 모른다. 세상이 고치라고 말하지만 달리 보면 우리가 그저 안고 함께 살아가도 좋을 우리의 상태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상실은 결여가 아니다.



영화의 음향에 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운드 오브 스틸’은 뛰어난 음향 연출을 통해 관객이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보도록 돕는다. 루벤이 처음 청력 이상을 느끼던 그 순간에 관객도 함께 그 기이함을 느낀다. 웅웅거리는 소리와 나에게 닿지 못하는 인물들의 대사들, 처음 겪는 청각적 환경 속에서 그가 느꼈을 당혹스러움과 어지러움을 간접적으로나마 함께할 수 있다.

 

인상 깊었던 점은 이러한 음향 효과가 단지 청력 문제를 묘사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주어지는 새로운 경험도 함께 묘사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청력의 상실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루벤은 더는 밴드 음악을 하며 자신이 연주하는 드럼의 소리를 강렬하게 듣지 못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새로운 소리의 세계가 시작되었다.

 

한 소년과 놀이터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소년과 루벤은 미끄럼틀로 소통한다. 손바닥으로 미끄럼틀을 친다. 손바닥의 두드림에 따라 그들이 앉아있는 미끄럼틀은 진동하고, 그 울림은 기분 좋게 들린다. 루벤이 익히 듣던 화려하고 강력한 드럼은 아니었겠지만, 그들은 조용히 그들만의 소리로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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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해당 장면의 끝부분에서 미끄럼틀을 두드리던 소리를 루벤의 입장이 아니라 제3의 입장으로 보여준다. 기분 좋게 울리던 소리는 사실은 둔탁한 쇠소리일 뿐이었다. 동시에 감독은 우리에게 물어보는 것 같다.

 

저들에겐 저들만의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 그것이 우리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부정할 것인가.

 

 

 

침묵에 대하여



영화는 청력 부족이 극복해야 할 장애가 아니며, 이 세상의 모든 상태가 그러하듯 장단점 모두를 가진 또 하나의 상태일 뿐임을 보여준다. 그것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침묵’이다. 조는 루벤이 소리의 부재를 침묵이라는 새로운 상태로 받아들이길 바랐다.

 

영화의 초반에 낯선 상황에 대환 당혹스러움과 분노로 가득 찬 루벤에게 조는 개인적인 과제를 내준다. 글을 쓰라고 과제를 준다. 가만히 앉아있기 힘들 때, 어떤 글이든, 누구도 보지 않을 테니 글로 토해내라고 했다. 그가 다시 평온하게 책상에 앉을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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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은 책상에서 화도 내고, 빵을 부수기도 하며 분노를 한다. 말이 안 되는 글이라도 무엇이든 종이에 적기도 한다. 그렇게 감정을 종이에 쏟아내며 루벤은 서서히 커뮤니티에 적응한다.

 

이 과제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루벤과 조의 대화로 이어진다. 루벤은 그가 수술을 받은 것이 다시 살아가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그에겐 어쩔 수 없는 발버둥이었음을 말한다. 그런 그에게 조는 침묵에 대해 질문한다.

 

 

Ruben : Like, what does it matter? What does it matter? It just passes. Yo. If I disappear, like, who cares? Nobody cares, man. Seriously. Yo, and that's okay. That's life. That's life. No, for real. Okay? It just passes. It just fucking... fucking passes.

 

다 무슨 상관인가요? 그저 흘러가요. 제가 사라지면, 누가 신경이나 쓰나요? 아무도 신경 안 써요. 정말로요. 그리고 그건 괜찮아요. 삶이 다 그런 거니까. 삶이 그런 거니까. 정말로. 알겠어요? 그저 지나간단 말이에요. 그냥..그냥 지나가요.

 

Joe : I wonder, uh, all these mornings you've been sitting in my study, sitting, have you had any moments of stillness? Because you're right, Ruben. The world does keep moving, and it can be a damn cruel place. But for me, those moments of stillness, that place, that's the kingdom of God.

 

내 서재에서 보낸 그 수많은 아침 중에, 가만히 앉아서 침묵의 순간을 느낀 적 있었나? 네 말이 맞아, 루벤. 세상은 정말로 계속해서 변하고, 지독하게 차가운 곳이기도 하지. 하지만 내게는 말이야, 그 침묵의 순간이, 그곳이 신의 성전이야.

 

 

세상은 끊임없이 흐른다. 루벤의 귀는 더 이상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할지라도, 세상은 계속해서 정보를 쏟아내고, 사람들은 그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가 있던 자리는 다른 이가 대체할지 모른다.

 

수술로 되찾게 된 청력은 예전과는 다르다. 기계음같이 날카로운 소리가 가득하다. 그런 소리에 익숙해져서 어떻게든 그 속도를 맞출 것인가. 소리를 내려놓고 침묵을 받아들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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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이 갑자기 끊기며 찾아오는 고요함의 연출은 소름돕도록 아름답다. 침묵이 이토록 축복받은 감각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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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소음 속에 루벤은 소리를 내려놓는다. 침묵이 찾아온다. 루벤에게도, 영화를 보던 나에게도.

 

동시에 영화는 내게 묻는다.


당신에게는, 침묵의 순간 있는가-

 

*


뛰어난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루벤의 갈등 상황과 새로운 삶에 대한 적응이 다소 쉽게 풀리진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감독은 우리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흘러가는 또 다른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겠지만, 모두에게 그런 기회가 쉽게 오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아름답고 담백한 연출과 스토리만으로 우리의 편견을 비춰주는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장애’를 ‘극복’하는 ‘성장’ 스토리가 아니라, 변화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얻는 고요함에 대한 영화. 이렇게 관점을 뒤집어주는 영화를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또한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잔잔한 영화 속 리즈 아메드의 연기는 단연 빛났다. 그의 연기는 주인공의 선택과 감정에 설득력을 불어넣었다.


훌륭한 연기와 연출력 만으로도 이 영화는 보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Sound of metal을 보며 sound of stillness를 누려보기를.

 

 

사운드 오브 메탈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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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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