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라진 소녀들 -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글 입력 2021.07.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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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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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첫 만남에 ‘대뜸’ 상대의 이름을 물어볼까. 우리의 것도 아닌, 상대방 소유의 ‘이름’을 ‘말하라’고 하는 걸 왜 실례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상대가 물어보지 않아도 친절하게 나의 것을 오픈한다.


“저는 신재희입니다”


‘이름’이란 무엇일까.


*


최근 ‘이름’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석 달 전엔 필자가 이직한 회사에서 쓸 영어 이름을 지어야 했고,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명名을 리스트업 해야 했다. 친구 부대에 새로 생길 식당 이름을 추천해줘야 했고, 지인의 반려동물 이름을 고민해야 했다.


모든 일의 시작엔 이름 짓기가 있었고 그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어떤 이름이 내 이미지와 어울릴까?’, ‘프로젝트 명에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의 목표와 의도가 담겼을까?’ ... ‘이름에 내가 담겨 있을까?’


그렇다. 이름은 ‘나’를 보여주는 표면적인 것, ‘나’를 표현하는 수단에 불과하지만, 결국은 내가 된다. ‘김연아’라는 이름을 듣고 사람들은 전 피겨스케이팅선수를 떠올림과 동시에 그의 ‘업적’, 성격 등도 함께 떠올릴 것이다. 이름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이름’은 사물/인물의 정체성을 담고 있다. 결국 ‘이름’이 있다는 건 본인 삶에 주체가 되고 주체성을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름 있는 여성들 



소설 <사라진 소녀들>에는 ‘이름’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중요한 건 그들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마리, 조시, 엘레노어, 그레이스, 제인, 메들린, 진...


테스의 엄마, 톰의 아내, 누구의 하나 남은 딸 등 소설 속에서는 이름 대신 사회적 ‘역할’이 인물들의 이름이 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소설은 온전히 마리, 조시, 엘레노어로 살아가는 모습에 집중한다. 그들에게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문이 따를 수도 있다.


“소설, 영화 속에 이름 없는 인물도 있나?”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을 그리거나 인물에게 익명성을 부여하기 위해 A군, B양, H씨 등으로 대체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은 보통 각자 이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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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소설 <사라진 소녀들>는 그 의미가 다르다.


소설의 배경은 여성 인권이라는 인식이 낮은 1900년 대자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전쟁에 투입될 수 있는 남성만이 ‘쓸모 있다’는 인식이 있었던 1940년대다.


소설은 마리, 조시, 엘레노어, 그레이스, 제인, 메들린, 진을 통해 전쟁 영웅에는 여성도 있음을, 그 이름이 전쟁의 참혹한 결과와 남성 희생자를 집중적으로 기리는 사회에 가려지지 않게, 계속해서 그 이름을 조명한다.


 

"사진 속 소녀들의 이름도 있나요?"


마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에일린 넌 그리고 조시 왓킨스라는 이름을 가리켰다. 성과 이름을 모두 알아냄으로써 완벽한 인물로 태어난 셈이었다.


- 소설 <사라진 소녀들> 中

 

 

제 2차 세계대전.


끝없는 전쟁이 계속된 비극의 1944년. 영국 특수작전국 고위 간부의 비서이자 폴란드 출신 엘레노어. 그는 가능성과 추진력을 인정받아 여성 비밀요원을 발탁•교육하고 투입하는 임무를 맡는다.


도망간 남편을 뒤로하고 딸 테스를 지키는 마리. 엘레노어에게 발탁된 마리는 요원으로서 완벽하지 않지만 능통한 프랑스어 실력과 투지를 인정받아 독일군에 장악당한 파리에 파견된다.


그로부터 2년 후 종전을 맞이한 1946년. 전쟁 통에 남편을 잃은 그레이스. 그는 기차역에서 우연히 엘레노어의 가방을 발견한다. 호기심에 열어본 가방 안에서 그레이스는 열두 명의 ‘소녀’가 담긴 사진을 발견하고 본능에 이끌려 사진 속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인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레이스는 그들이 전쟁 중 나치의 작전을 무력화하기 위해 힘쓴 여성요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같은 사건을 두고 세 주인공의 시점으로 해석되며 정답에 도달하는 소설 <사라진 소녀들>.

 

 

 

결핍된 자들의 연대 



모두 어딘가 부족한 인물이다.


어머니에게 인정받지 못한 딸 엘레노어. 그의 어머니는 딸이 영국 특수작전국에서 일하는 것조차 못마땅하다.


남편과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딸 마리. 아버지는 그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남편은 그를 떠났다. 그런 마리에게 딸 테스는 그의 존재이유다.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그레이스. 가족과 친구의 따뜻한 보살핌을 뒤로하고 뉴욕에서 자신을 찾아간다.


누구하나 완벽한 인물이 없다.


 

"우리 모두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 소설 <사라진 소녀들> 中

 


어딘가 결핍된 있는 인물들은 단 한번도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아픔을 남에게 드러낸 적 이 없다. 개인사 보다 국가의 위기가 우선이었기 때문일까. 엘레노어와 마리는 오로지 전쟁 중 본인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수작전국을 이끌고, 작전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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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물들은 어딘가 모르게 서로에게 끌린다. 서로에게 잃어버린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이 되려는 걸까. 엘레노어는 자신이 발탁한 요원들에게 책임감을 느낀다. 하지만 유독 마리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알 수 없는 개인적인 감정이 섞인다. 작전 내내 마리의 친언니처럼, 엄마처럼 그의 안위를 걱정한다.


엘레노어의 걱정이 마리에게 닿았을까. 아니면 겉으로는 냉혈한 같지만 남성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엘레노어의 속을 봤을까. 마리는 엘레노어에게 ‘인간적인’ 친근함은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그에게 존경심과 경외감을 느낀다.


그레이스는 엘레노어와 마리를 직접적으로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마리와 여성 요원의 사진을 보자마자 ‘비밀’을 풀어야만 할 것 같은 사명감이 든다.


그들은 연대한다. 서로를 지키고 받쳐주고 의지한다.

 

 


Girls Can Do Anything. 



 

"그래, 여자들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레고리가 반문했다.

 

"남자 요원들이 하는 일을 똑같이 하는 겁니다." 엘레노어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뻔한 일을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자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비밀 메시지를 전하는 급사 역할부터 무선통신기 메시지를 해독하는 것 외에 파르티잔을 무장시키고 다리를 폭파하는 겁니다."

 

- 소설 <사라진 소녀들> 中

 


소설 <사라진 소녀들>은 여성의 힘을 보여준다.


아무도 믿지 못한다. 여성 요원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하지만 해낸다. 마리는 작은 몸을 이끌고 수십 개의 폭탄을 다리에 설치했다. 그리고 독일군에게 타격을 주는데 성공한다.


다르지 않았다. 마리, 조시, 엘레노어, 그레이스, 제인, 메들린, 진은 여성요원이 아닌 ‘요원’으로 역할을 다했다.


 

"치밀하게 짜인 서스펜스와 스파이의 복잡한 심리, 정교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이야기.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제시카 섀턱,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우먼 인 더 캐슬》 작가


"전쟁 중 비밀요원으로 활동하기 위해 평범한 생활을 뒤로한 평범한 여성들의 역사를 훌륭하게 되살렸다. 위험과 미스터리로 가득 찬,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숨겨진 여성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리사 윈게이트,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비포 위 워 유어스》 작가

 


소설 <사라진 소녀들>은 자칫 지나칠 수 있는 익명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목표의식과 뿌리 깊은 연대감으로 전쟁에서 살아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길 때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마리, 엘레노어, 조시, 그레이스 등 인물들의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소설 <사라진 소녀들>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고, 이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직 이름 없는 익명의 여성 영웅들을 떠올리는 책이 된다.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여성의 힘. 소설 <사라진 소녀들>은 인물들의 뜨거운 숨결을 통해 독자에게 가장 가까이서 말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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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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