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계사 속의 나비효과 같은 순간 - 도서 '인류 모두의 적'

글 입력 2021.07.1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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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효과라는 말을 다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폭풍우와 같은 엄청난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게 바로 나비효과의 골자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한국에서 일어난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에 폭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들 수 있지만 비유가 나비여서 그렇지 생각해보면 사소한 일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집을 불려가 큰 사건으로 불거지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히 볼 수 있다. 초기의 상황과 그 직후 연계되는 조건들의 결합으로 결과물은 거대해지는 것이다.


개인의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상황들, 인물들만 놓고 보아도 이런 경우들이 있는데 과연 이런 일을 전 세계라는 광범위한 스코프로 확장했을 때 과연 이런 나비효과 같은 순간들이 없었을까. 범위를 세계로 확장한다면 나비효과의 사례는 훨씬 더 많이 찾을 수 있다. 생각보다도 세계는, 비단 현대에 이르러서뿐만이 아니라 과학 기술이 현재와 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의 시점에서도,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이라는 문구는 너무나 흥미로웠다. 해적? 세계사에 많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해적에 딱히 관심을 관심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해적으로 인해 나타난 나비효과가 대영제국의 탄생이라는 게 과연 유의미한 분석일지 궁금해졌다. 그야말로 궁금증을 자극하는 부제가 아닐 수 없었다.

 

 



< 책 소개 >


아마존 베스트셀러 분야 1위!

사라진 해적왕은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천재 이야기꾼 스티븐 존슨이 추적한 해적과 제국의 세계사 


이 이야기는 한 명의 해적에 관한 실화다.

 

주인공은 헨리 에브리. 1695년 무굴제국 황제의 건스웨이호(현재 가치로 약 545억 원)를 손에 넣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해적, '해적왕'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 '블랙 샘' 벨러미보다 한 세기 앞서 활약한 해적으로 이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며,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국제 현상수배범'이기도 하다. 어마어마한 보물을 실은 황제의 배를 약탈한 탓에 '인류 모두의 적'으로 명명되었던, 세계 최초로 1억 원이 넘는 현상금이 걸린 수배자였다.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등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써온 저술가이자 천재 이야기꾼인 스티븐 존슨은 이 책에서 한 남자의 삶이 세계사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추적한다. 에브리 선장은 사라졌지만, 그의 건스웨이호 습격 사건은 역사에 영원히 남았다. 해적왕이 자신도 모르게 대영제국 시대를 여는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명의 해적이 동인도회사의 번영과 대영제국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한 사람이 역사 속에서 유의미한 불꽃이 되는 과정과 그 불꽃이 어떻게 세상을 활활 태우는 화재로 번져가는지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연과 선택이 얽혀 만드는 역사의 현장에 한 걸음 깊숙이 들어가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근대의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영제국과 동인도회사가 어떻게 해적이라는 키워드에 엮일 수 있을까. 도서 '인류 모두의 적'에 나오는 이야기를 아주 간략하게 축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695년 9월 11일 영국 출신 해적인 헨리 에브리를 필두로 한 일당이 인도 수라트 근처 바다에서 무굴제국의 보물선을 약탈했다. 해적들은 단순히 보물선을 약탈하는 점에만 방점을 맞추고 행동했다. 그런데 그 배는 일반 상선이 아니라 무굴제국 황제 소유의 배였고, 확실하지는 않으나 황제의 손녀 혹은 친척으로 추정되는 여인도 타고 있었다. 즉 황족을 태우고 성지 순례를 다녀오는 배를 헨리 에브리와 그의 해적 일당이 급습한 것이다.


일반적인 상선과 달리 배에 여자들이 가득하자, 헨리 에브리의 수하들은 비단 배에서 보물을 약탈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여인들을 강간하고 폭행하며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 지옥도 속에서 수많은 여인들이 바다에 몸을 던지거나 칼로써 자결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물론 생존한 여인들도 있었다. 살아남은 그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무굴제국의 황제에게까지 들어갔다. 자연스럽게, 황제의 분노는 동인도회사와 영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무굴 제국의 황제 아우랑제브는 재빨리 영국과의 무역을 중단했다. 그 무역이 매우 중요했던 영국은 무굴제국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에브리와 그의 수하들을 '인류 모두의 적'이라며 규탄하였고, 막대한 현상금을 내걸며 공개수배에 나섰다. 헨리 에브리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500파운드, 현재 가치로는 1억이 넘는 금액이었다고 하니 전 세계의 눈이 해적왕 헨리 에브리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동인도회사는 황제에게 해적을 격퇴할 수 있도록 황제의 군인으로서의 법적 권한을 요청했다. 이미 인도 현지에 들어와있는 그들을 활용하는 게 나쁘지 않은 계산이라고 생각한 황제는 이를 승낙했다. 이로써 동인도회사는 처음으로 인도 지역에서 합법적으로 법을 집행하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황제 아우랑제브가 비록 장수하였으나, 그의 사후에 무굴제국은 맥을 못추고 혼란에 빠져들었다. 그 혼란을 틈타 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동인도회사는 더욱 행사력을 확장하며 그들의 영향력을 강화하였고, 이는 종국적으로 대영제국이 인도 전체를 지배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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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자체는 비단 근대의 산물이 아니다. 그보다 더 이른 12세기, 13세기 같은 과거에도 소위 바다 민족으로 활동하던 세력들은 있었다. 그러나 헨리 에브리를 위시한 그 당시의 해적들은 출판산업의 발달을 힘입어 그들의 행적들이 일반 시민들에게 급속도로 전파되면서 위세가 더욱 높아졌다. 가사와 삽화가 담긴 출판물이 발라드몽거의 노래와 함께 시민들에게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해적은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동경과 로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헨리 에브리 없이, 그의 수하들이 체포되어 맞았던 첫번째 재판에서 배심원들이 그들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기까지 했을 것이다. 즉 해적이라는 범죄활동과 인쇄술 및 출판 산업이 본의 아니게 서로의 몸집을 불려주는 형국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해적들의 사회는, 그들이 공해에서 범법행위들을 일삼는 것에 비해 굉장히 진보적이고 놀랍게도, 민주적이었다. 우선 그들은 이익을 공정하게 배분했다. 물론 선장이나 항해장 등 직위자들은 일반 해적 선원들보다는 기본적으로 약정된 이익의 규모가 조금 더 컸다. 그러나 일반 선박에 비하면 큰 차이가 아니었으며, 그 약정된 이익의 규모를 채우고 나서도 남는 잉여 이익에 대해서는 동등하게 배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해적들은 선장을 따라 항해하기는 했지만,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는 모두가 동등하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선장의 독단적인 판단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위계적인 구조는 아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배에 머무는 동안 해적 동료들끼리 잘 지낼 수 있도록 유희거리를 즐길 수 있었으며 각 개인이 문서 상에 자신의 서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독립적이었다. 그리고 본토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이루어지기 어려웠을 동성애 역시도 배에서는 암묵적으로 허용되는 분위기였다.


그뿐만 아니라 해적들은 현대의 보험에 해당하는 규칙들도 갖고 있었다. 만일 보물을 갈취하는 과정에서 부상이 발생한 경우, 부상부위 별로 보상금액을 정해두었다. 부상을 당한 해적이 은퇴하더라도 충분할 만한 보상액을 해적선의 규칙으로 정하여 구성원들이 전투 상황에서 소극적으로 변하지 않도록 독려한 것이다. 과장해서 표현한다면 현대의 손해보험을 이들은 이미 앞서 구축하고 있었던 셈이다. 비단 보험뿐만 아니라 수평적인 문화, 민주적인 조직, 출판업과의 연계 등 해적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도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이후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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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변하지 않는 진실은 그들이 범죄자였다는 것이다. 헨리 에브리의 수하들은 현상수배가 되고 난 후 각지로 흩어졌고 그 중 영국에서 체포된 여섯 명의 해적들은 재판장에 회부되었다. 첫번째 재판에서는 그들의 해적질에 대하여 배심원들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두번째 재판에서 최초에 찰스 2세호를 갈취하고 반란에 동조하지 않았던 선장 및 일부 선원들을 내쫓았던 죄목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 결과 그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헨리 에브리는 아일랜드에 도착한 이후 모두의 추적을 피해 살았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행적이 되어 그가 죽은 지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이후 행적은 오리무중이다. 심지어 건스웨이호에 타고 있었던 무굴제국의 공주(라고 유추되는 인물) 그리고 헨리 에브리 사이에 염문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추측이 이후 세대에 들어 가미되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 스티븐 존슨 역시 이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두고 나름대로의 가설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글쎄, 썩 와닿지는 않았다. 결국엔 절도범이자 성범죄자인 것을.


어렸을 때에도 딱히 모험이나 탐험에 관심이 없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해적을 떠올렸을 때 그다지 모험, 탐험, 도전 이런 긍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항상 '소탕되어야 할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해적 하나에서 이렇게나 수많은 것들이 비롯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리고 이 해적 자체가 과거의 누군가에게는 로망이었다는 것마저도 신기했다. 헨리 에브리의 수하들이 첫번째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아마 당시의 판사가 느낀 감정과 같았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사 속에서 나비효과를 제대로 보여주는 헨리 에브리와 동인도회사, 대영제국 그리고 무굴제국의 인과관계는 아주 흥미로웠다. 

 

도서 '인류 모두의 적'은 헨리 에브리라는 악명 높았던 해적 한 명을 추적하면서 과거 실제 해적의 생활과 시대상 그리고 역사적인 순간들까지 모두 아우르는 블록버스터였다. 어쩜 해적이라는 존재에 착안하고, 영국과 인도 그리고 그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기착지들을 넘나드는 에피소드들을 발굴해내고, 심지어 역사적으로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대한 픽션과 저자 본인의 상상력까지 발휘해가며 나름의 인과관계를 유추해보면서 이 모든 흐름들을 완성시킬 수 있었을까. 이 한 권의 책을 완성하기 위해 저자가 참고했을 수많은 문헌들을 생각하면 아득하게 와닿는다. 각 논문과 저서, 그리고 재판 판결문 등에 쓰여있는 파편들을 하나하나 모아 이렇게 엮어내는 과정이 결단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아니까 말이다.


만화 원피스나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처럼, 현재에도 여전히 해적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콘텐츠들이 있다. 과거에 해적이 융성한 그 시기 해적 문학을 읽고 왠지 모를 모험과 탐험을 동경했던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지금도 해적은 충분히 소비자들에게 흥미로운 소재로 와 닿는 듯하다. 해적 그리고 격동하는 세계사의 한 순간 중에 어느 하나라도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엄청난 이야기꾼인 스티븐 존슨이 엮은 헨리 에브리 추적기가 분명 당신을 즐겁게 만들 것이다.


 



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


지은이/옮긴이: 스티븐 존슨/강주헌

출판사: 한국경제신문 출판사


분야 : 역사

페이지: 380쪽


정가: 16,800원

ISBN: 978-89-475-4723-9 (03900)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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