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라진 해미들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영화]

영화 <해미를 찾아서> 리뷰
글 입력 2021.07.0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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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해미’가 나타났다.


해미는 백 교수의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백 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한 이들은 ‘해미’라는 이름으로 연대하며 그를 고소했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 판정이 내려졌다. 어수선한 교내 분위기 속에서 백 교수는 복직를 준비하고, 동료 교수는 복학한 선아를 이용해 백 교수를 도우려 한다. 한편, 페이스북 페이지 ‘해미를 찾아서’를 운영하는 민주와 연주는 백 교수를 쉽게 놓아줄 생각이 없다. 탄원서를 모으고, 아직 나타나지 않은 해미를 기다리며 다음 재판을 준비한다.


선아는 차갑게 뻗은 복도에 서서 복도 끝을 응시한다. 오랜만에 찾은 학교가 낯설어서인지, 무엇을 보기 위해서인지는 확실치 않다.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선아를 알아본다. 언니의 중학교 동창, 민주다. 카메라는 편집이라는 지름길로 둘 사이를 오 가지 못하고 애써 패닝(panning)으로 빙 돌아 선아와 민주 사이를 오간다. 카메라가 패닝 하는 거리만큼 둘 사이에는 미묘한 어색함이 흐르고, 민주는 선아에게 동아리 방에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해미.jpg

 

 

“언니도 해미예요?” 해미들을 위해 싸우는 민주에게 선아가 묻는다. 그들이 있는 동아리 방에는 백 교수를 규탄하는 대자보가 큼지막하게 붙어있다.

 

민주는 대답하지 않고 되묻는다. 네가 생각하기에는 어떻냐고. 과 대표이자 백 교수와 친분이 두터웠던 민주는 선아가 탄원서를 써 달라고 부탁한 후, 돌연 휴학을 신청한다. 선아의 부탁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초조해하는 눈빛과 어쩔 줄 몰라 하는 손 등 몸이라는 증거는 맞다고 답한다.


재판에서 주요 증거를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인물, 아홉 번째 해미는 바로 선아다. 그녀는 백 교수를 옹호해서 휴학한 것이 아니라, 백 교수를 피하기 위해 휴학한 것이었다. 선아는 백 교수로 인해 망가졌다. 잘 쓰던 시도, 다른 글도 좀처럼 쓰지를 못한다. 백 교수에게 배운 글을, 문장을 자신의 손으로 적는 것이 용납이 안 됐을 것이다.

 

선아는 다시 일어서기 위해 아홉 번째 해미를 소환하는 글을 쓴다.

 


해미. 당신이 소설 속에서 애타게 찾아 헤매던 소녀.


내가 바로 그 사라진 사람, 이름을 잃은 사람이었다.


사라진 해미들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도망쳤을 때, 나는 그곳에 그토록 사랑하던 나의 문장들을 그대로 버려두고 와야 했다.

 

나는 당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제 나는 당신이 부르는 해미가 아니라 내 스스로 당신을 찾아 깨부수는 해미가 되려 한다.

 

 

영화 말미, 선아는 남학생이 훔친 탄원서 뭉치를 되돌려주기 위해 동아리 방으로 향한다. 문고리를 돌리는 선아의 모습은 이전까지와는 다르다. 문이 열리고, 화면에는 선아의 뒷모습과 그녀의 어깨 너머로 민주와 연주가 흐릿하게 보인다. 형체는 흐릿하지만 연대의 가능성만큼은 또렷하다. 마침내 선아는 해미가 된다. 해미들의 용기 있는 고백과 해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백 교수는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토록 찾아 부르던 자신의 해미에게 부수어질 것이다.


<해미를 찾아서>*는 용기와 지지로 폭력에 맞서는 연대의 영화다. 해미는 특정 인물의 이름이 아니다. 피해자들을 한 곳으로 소환하는 이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환 술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단편 영화 안에서만 통한다. 백 교수가 창작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백 교수와 (백 교수가 창작한) 해미, (백 교수에게 글을 배운) 학생들이라는 특수한 관계를 벗어나는 순간 이름이 가진 힘은 하릴없이 사라진다. 다만 끊임없이 언급되는 백 교수의 실체를 영화 속에서 드러내지 않은 것은 영민하다.


해미와 달리 백 교수는 현실로 불러올 수 있다. 누구나 백 교수가 될 수 있다. 자신도 자각하지 못한 채 이미 백 교수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영화는 실체를 드러낸 가해자와 더불어 아직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가해자 또한 백 교수로 지목하고 있다. 그를 끌어내리는 것은, 그를 향해 뻗어 있는 손가락들이다. 실형과 전자 발찌라는 처벌은 피해자들이 겪은 말 못 하는 고통에 비할 것이 못 된다. 가해자는 발찌를 달고 세상에 나오지만, 피해자는 그의 존재를 상기하며 벌벌 떨 수밖에 없다.


선아는 계속해서 초조해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 초조함이 무엇에 기인한 것인지 정확히 밝히지 않고, 이야기의 바퀴를 굴린다. 처음에는 선아가 백 교수를 지지하기 위해 휴학했다고 오도하는 부분, 선아가 쉽게 나서지 못한 이유를 생략한 부분은 다소 아쉽다고 느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피해자의 고통을 전시하지 않고, 묵묵하게 연대의 포착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오히려 잘한 선택이라고 여겨졌다. 성적 수치심**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성적 불쾌감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날까지, 아니 백 교수가 존재하는 한 연대는 계속되어야 한다.

 

*


*<해미를 찾아서>는 2019년에 개봉한 단편 영화다. 허지은과 이경호가 공동 연출한 이 작품은 서울독립영화제, 미장셴 단편 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상영된 바 있다. 독립 단편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은 흔치 않지만, 여성 영화 전용 OTT '퍼플레이'에서 해당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수치심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다. 지금까지 성범죄를 겪은 피해자들의 심정을 언론과 재판부는 ‘성적 수치심’으로 표현했다. 심지어 수치심의 여부를 두고 무죄와 유죄가 갈리기도 했다. 하지만 수치심을 피해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떳떳하지 못해야 하는 이는 오히려 가해자다. 피해자를 숨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드는 성적 수치심 대신, 가해자를 못마땅해하는 성적 불쾌감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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