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능력주의의 계단에서 내려와야 하는 이유

글 입력 2021.06.24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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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 년간 이 사회가 정말 공정한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 것을 시작으로 공정이 근본적으로 무엇인지를 묻는 ‘공정 담론’이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 담론은 자연히 공정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줄 세우자’는 능력주의 기반의 주장이 대두되었다. 언론과 정치권에서 주목하고 있는 능력주의 사고는 ‘부모 찬스’ 등 권력의 개입 없이 오로지 개인의 시험 성적, 그 결과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투명한 경쟁 시스템을 지향한다. 권력의 세습과 소득 양극화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는 사회에서 계층 상승의 희망을 상실한 현세대가 탈출구처럼 발견한 대안이다.

 

능력주의는 갑자기 불거진 개념이 아니다. 능력주의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58년 발간된 마이클 영의 풍자소설 ‘능력주의의 부상’을 통해서다. 능력주의가 하나의 사회체제인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은 메리토크라시가 실현된 가상의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능력주의의 구체적인 면면을 제시한다. 이 소설이 그리는 세계에선 지능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능력(merit)이 높은 사람일수록 높은 사회적 지위를 차지하고, 국가는 자원 낭비를 줄이기 위해 지능검사를 통해 조기에 인간을 선별한다. 국가는 효율적인 운영과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만한 인간을 우선하고 사람들은 능력에 따른 차별과 인간의 도구화를 받아들인다. 언뜻 들으면 비현실적인 판타지 소설 같지만, 대규모 실업과 고용불안 등 경제적 위기 속에서 능력주의의 대안적 가능성이 주목받는 이야기의 맥락 등 지금의 사회 모습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많아 예언적인 성격을 지닌 사회과학적 텍스트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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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메리토크라시는 ‘데모크라시(민주주의)’에 대척하는 개념으로서 디스토피아로 그려진다. 계층과 역할의 구분이 뚜렷하고 민주적 질서가 결여된 메리토크라시는 사회가 규정한 능력의 척도에서 하위를 차지하는 계급의 사회 참여를 제한하여 담론의 형성을 막고 저항을 차단하여 결국 기득권 중심의 세상을 만들어낸다. 또한, 능력을 측정하는 기준은 기득권이 임의로 설정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계급의 전복은 이뤄지지 못하고 사회는 기득권의 지향을 따른다. 교육학적 관점에서 메리토크라시를 분석한 성열관은 이 소설이 능력주의를 자기 파괴적 모순을 끌어안는 체제로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한다. 분석대로, 소설은 메리토크라시의 한계에 분노한 시민들로 인해 체제가 붕괴되는 결말로 끝이 난다.

 

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대안처럼 여겨지는 능력주의가 사실은 부정적 의미의 개념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괄목할 만하다. 능력주의의 한계는 소설에 국한되지 않으며 현실에서 더욱 뼈저리게 나타난다. 인간의 가치와 능력을 일대일로 대응하는 능력주의 사회는 인간을 일원적인 척도에 제한하여 시험과 성적만을 위하도록 획일화한다. 한국의 학교가 전인적인 발달이라는 공교육의 목표를 실현하지 못하고 ‘국영수’ 잘하는 학생만을 길러내고 있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학벌주의라는 메리토크라시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획일화는 체제 유지를 위한 인간의 도구화로 이어지며 이는 곧 인간 존엄성 훼손과 계급 구조 공고화를 초래한다. 계층 구조를 전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 전망과 달리 능력주의는 소설 속의 도식처럼 민주주의와 상충하는 체제로서 오히려 불평등한 계층 구조를 정당화할 위험을 다분히 내포한다.

 

그럼에도 능력주의가 끊이지 않고 사회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제기되는 것은 마땅한 최선책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능력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인간을 선발하고 경쟁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쟁이 필연적이고 불가피하다면 시스템이라도 투명하고 공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투명성과 공정성은 모든 조건을 배제하고 개인의 능력만을 보는 기준을 통해 성립된다. 인간의 출생과 신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귀속성을 전근대적 속성으로, 개인의 능력에 따르는 업적성을 그보다 진보적인 근대적 속성으로 분류한 사회학자 탈코트 파슨스의 도식에 의하면 능력주의는 전근대에서 세습되었던 생득적인 권력의 차이를 무효화하고 진정한 의미의 평등을 실현해 줄 것처럼 보인다.

 

경쟁 시스템이 지속되는 가운데 기준을 벗어난 권력이 개입하여 보상이 세습되는 불공정이 관습화된 사회에 대한 진단은 정확하다. 그러나 이러한 불공정을 상쇄할 대안으로서 능력주의는 적절치 않다. 능력 또한 세습되기 때문이다. 풍부한 인프라를 통해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공부하는 학생과, 가장 가까운 학교조차 험준한 길을 통해 겨우 갈 수 있는 학생의 시험 점수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을 온전히 개인의 노력에 의한 것으로 보긴 어려울 것이다. 백인 사회에서 주류 지식과 헤게모니를 흡수하며 조직된 교육을 받은 백인과 흑인의 점수 차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교육은 선별된 지식을 전수함으로써 지배 권력을 존속하는 정치적인 기제로 작동하는 측면이 있으며 교육에 유리한 학생과 불리한 학생을 나눈다. 현재까지도 공신력 있는 평가 척도로 여겨지는 검사 중에선 소수자를 배제하고서 개발된 것이 적지 않다. 낮은 점수를 곧 적은 노력, 나아가 낮은 인격적 가치로 치환하는 능력주의가 간과하는 부분이다. 개인의 점수에는 너무나 많은 생득적 변수가 개입된다.

 

근대를 넘어 탈근대의 흐름에 있는 지금, 우리는 업적성이 귀속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사회는 백지상태가 아니며 시험 성적만으로 개인의 능력을 측정하는 척도 역시 차별과 배제 속에서 개발되어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능력주의는 귀속과 세습의 불공정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오히려 불공정을 정당화함으로써 단단하게 지속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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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가 반대하는 할당제의 필요성은 이러한 실제적 맥락에서 도출된다. 생득적으로 험난한 길에 놓인 사람은 평탄한 길에 놓인 사람보다 훨씬 더디게 걸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하에 최소한의 선발 가능성을 마련하여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할당제의 원리는 개인의 권리 확보뿐 아니라 사회 공동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능력주의로 인해 획일화된 사회는 기득권 중심의 제한적인 담론을 형성하며 대표성의 결여로 인해 폭넓은 민주적 논의에 제동을 건다. 한국 사회가 압축적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 능력주의 경쟁 체제가 규범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라면, 빠른 과정을 위해 결여되고 누락된 계층이 있었다는 것 역시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로 인한 선별적 성장과 부족한 민주적 논의는 현재 곳곳에서 증거처럼 나타나고 있는 차별과 갈등의 계기가 되었다.

 

능력주의는 공정한 경쟁을 실현하지 못한다. 오르기 쉬운 계단을 걷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를 가리고 무조건 먼저 올라간 사람에게 인격적 가치를 부여하는 경쟁을 공평하고 올바르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능력주의가 정의하는 공정이 모순적인 이유는 과정의 불평등을 간과해서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 위치하는 인간을 일원화된 척도에 제한하는 불합리성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척도에서 1등을 하는 사람은 없으며 누구나 어떤 척도에서는 하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능력주의는 기득권에 의해 규격화되는 하나의 척도에서 우위를 점한 사람이 하위에 있는 사람을 마땅히 밟고 누를 수 있다고 역설한다. 척도는 절대불변하지 않으며 권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밟히고 눌리지 않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마이클 영이 예언했듯, 능력주의의 끝은 결국 디스토피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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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목표 지점으로 가기 위한 계단이 모두에게 다른 지형으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계단에서의 위치를 절대화하지 않는 것이다. 높은 위치에 올라서 있다고 해도 결국 누군가보다는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이 계단의 속성이다. 능력주의가 완전히 실현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인간을 하나의 기준으로 줄 세우는 계단에서 내려와서 각자의 지평을 넓히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경쟁과 선발이 불가피한 체제라면 목표 지점으로 향하는 길을 다양하고 폭넓게 마련하여 점수와 인간을 일대일로 대응하는 능력주의 사고를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최선책이 될 것이다. 낙선한 정치인일지라도 보여주지 못한 가능성을 고려하여 투표와 여론조사 등을 통해 다시금 활약의 기회를 제공하는 한국 정치의 원칙이 일례가 되겠다. 그것은 능력주의가 신봉하는 시험 성적, 그 결과가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품은 인간 자체를 바라보는 포용의 시선과 시선의 주체인 국민주권에 대한 신뢰로 인해 실현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가 권력의 차이 없이 반영되는 민주적 질서가 성립된다. 이것이 공정의 시작이다. 언제나 포용 없이는 이뤄지지 않았던 역사의 새로운 돌풍이 다시 한번 불어야 할 시점이다.

   

 

참고자료


성열관, 「메리토크라시에서 데모크라시로: 마이클 영(Michael Young)의 논의를 중심으로」, 교육학연구 53(2), 2015, 55-79.

이재호, ‘능력은 왜 폭군이 되는가’, 아주경제, 202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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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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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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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럴만두하군
    •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마이클 영이 쓴 책은 <능력주의>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정식 출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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