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디 벨레(Die Well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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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벨레(Die Welle)
감독 데니스 간젤
출연 위르겐 포겔 크리스티아네 파울 프레데릭 라우 등
개봉 2008.01 | 상영 시간 107분 | 독일
✔ 토드 스트라서의 소설 파도(The Wave)를 원작으로 한 영화, 포스터부터 느낌이 오지 않나?
고등학교 교사 벵어는 나치와 파시즘을 지겨워하는 학생들에게 사회적 실험을 제안한다.
독재의 발생에 대한 프로젝트는 물결이란 뜻의 '디 벨레'라 명명되고, 실험이 진행될수록 학생들과 벵어 모두 권력과 집단에 빠져든다.
영화 <디벨레(Die Welle)> 시놉시스
영화 <죽은 시인들의 사회>가 떠올라 관련된 영화가 있을까 싶어 찾아 보게 된 영화 <디 벨레(Die Welle>,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간단히, <죽은 시인들의 사회>는 어떻게라도 긍정적인 해석을 가진 영화라면, 디 벨레는 그 반대다. 완벽한 반대보단, 정확히 찝찝함이 느껴지는 '반대'다. 디 벨레(Die Welle)는 한 프로젝트 수업에서 파생된 집단의 이름이다. 이는 독일어로 해석하면 '물결, 파도' 등의 뜻을 가진다. 프로젝트는 한 선생님의 희망 과목에서 밀려나는 것부터 시작한다.
무정부주의 수업을 가르치길 원했던 라이너 벵어(위그렌 포겔)는 김나지움(독일의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다. 다른 선생님이 먼저 무정부주의 과목을 선점하는 바람에 독재 정치 과목을 담당하는데, 독재 정치는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재의 위험성에 관해 끊임없이 배워온 독일 학생들에겐 굉장히 지루한 디폴트 수업이었다.
첫 날, 독재 정치를 주제로 알아서 형성되는 학생들의 토론 속, 그는 새로운 수업 방식을 제안한다. 한 주간 독재 정치의 수업 포맷을 진행해 본인이 얼마나 손쉽게 조작될 수 있는 존재인지에 관한 실험을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독일에서 금기시된 '독재 정치'를 실행하는 프로젝트는 파급력이 엄청났다. 향상된 결속력은 하나의 집단으로 형성되어 힘을 갖기 시작했고, 단체의 힘에 눌려 소외되고 배척되는 소수가 발생했다. 이들은 집단주의에 점점 도취하여 하얀색 상의와 청바지를 입거나 인사법을 만드는 등 단체성을 보여주는 무언가를 생산하길 원한다. '디 벨레'라는 이름 또한 프로젝트 그룹 시간 내 투표를 통해 결정된 이름이며, 자신들의 특별한 인사법, 물결 모양 로고를 정했다.
특히, 평소 반에서 겉돌던 아이들이 소속감을 얻자 그들의 세상은 세계의 아주 작고 일부분에 불과한 디벨레에 집중됐고 소위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만약 디벨레가 해체되면 다시 외톨이로 돌아가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맹목적으로 변하고, 그 외 다른 참여자는 점점 이상한 집단 광기를 눈치챈다.
이를 대항하기 위한 반 디벨레 파도 생겨났으며 대립 구도가 형성됐다. 결국 <디벨레>는 <죽은 시인들의 사회>와 같이 희생자가 발생한다. 자신 또한 독재 정치에 매료됐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라이너 벵어의 체포된 모습으로 끝이 난다.
집단이 묵살한 개인
그들의 김나지움(독일의 인문계 고등학교)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학교다. 교복 따위 없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복을 입으며 듣고 싶은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독재의 개념은 그리스 시대에서 유래했고, 자기 지배를 의미한다. 독재란, 개인이나 하나의 단체가 대중을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즉, 독재는 독일어로 'AutoKraita'라 쓰이며, 'Auto' 는 자기, 'Kraita'는 지배 또는 권력을 뜻한다. 이미 나치 정권으로 인해 '독재' 에 대해 끊임없이 배워온 학생들에겐 굉장히 지루한 프로젝트 수업이었고, 역사에 대한 책임감이 나오기 시작하며 학생들끼리 의견이 분분해진다. 시작된 질문은 간단하다.
여러분은 독일에서 독재자는 더 이상 안 나올 거라 생각하죠?
그럼요, 그건 이미 수없이 토론된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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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정치 체제의 기본적인 필요조건은 뭘까?
모든 독재정치는 중심적인 대표 인물을 내세운다.
규율로부터 권력이 나온다.
영화 <디 벨레(Die Welle> 중 프로젝트 일부분
'단체'의 힘을 누구보다 알고 있기에 극도로 조심하는 분위기 속에서 학생들은 집단이 주는 힘을 알아간다. 결속력이 생기고 목표를 향해 달릴 줄 알며, 발표에 자신감이 없던 리자(크리스티나 두 헤고)는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됐고, 하다못해 라이너가 담당하는 교내 수구팀에서도 드디어 팀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된다.
학생들에게 새로운 시도는 금세 호감을 사기 쉬웠다. 자잘한 불만이 있는 모나(아멜리 키퍼)를 제외하고는 모두 호의적이었다. 무엇보다 개인적 성과로 채점 시 항상 무리에 섞이지 못하던 팀(프레더릭 라우)은 속할 곳이 정해졌기에 소속감을 느끼고 점점 수업에 깊게 빠져든다. 아래층 무정부 정치 수업을 듣는 몇몇 친구들은 독재 정치 수업으로 바꾸기도 한다.
허나, 디벨레가 제안한 단체복을 계기로 소수가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관한 의구심이 생겼다. 그리고 디벨레에 감염된 반 친구들에게서 소외당했다. 그 중 대표적인 학생인 카로(예니퍼 울리히)는 심지어 남자친구인 마코(막스 리멜트) 조차 반대 의견을 가진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다. 정도를 벗어난 실험에 의문을 가진 건 카로뿐이 아니었으나 이는 매우 소수였고 같이 카로와 뜻을 동참하는 모나(아멜리 키퍼)와 함께 '반' 디벨레로 집단주의를 반대하는 전단을 만드는 등의 노력을 한다.
벵어도 팀이 디벨레에 보이는 집착적인 행동으로 인해 프로젝트 문제점을 느낀다. 과연 내가 통제할 수 있을까? 이미 자신의 의견에 반대표를 던진 카로를 배척한 라이너는, 라이너가 아닌 벵어 선생님이 되었다.
집단주의가 만든 광기
실제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실험한 것을 바탕으로 영화뿐만 아니라 책으로도 출판된 사건이다. 원래 2주 프로젝트였으나 단 5일만으로 종료해야 했다. 이유는 학생들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는 속도와 파급력이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실험 종료와 같이 학생들에게 독재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이뤄지고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고심하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
시작은 영화 <디벨레>와 같이 교사를 '선생님'으로 칭하거나 자세를 고쳐 앉는 등 작고 사소한 규율부터 시작했다. 교복을 입고, 단체생활을 배우고 무리를 형성한다. 우리나라 학교 문화와 다를 것이 없다. 단체가 주는 이점이 분명 존재한다. 협동심을 기르고 개인의 한계를 극복하며, 개인이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성공하는 성과를 보여준다. 상호간의 연결을 통해 이룩한 쾌거를 맛보며 학생들은 생각하지도 못한 방향으로 디 벨레를 이끌어간다. 그들은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감정에 도취하여 그들의 생각보다 말랑한 잣대를 단단하게 세운다고 착각한다.
봄버 말해봐, 어서 말해봐.
네가 이 녀석을 위로 끌고 왔잖아.
선생님이 시켜서 끌고 왔어요.
그래 내가 시켜서 응? 그럼 내가 이놈 죽이라고 하면 죽일 수 있겠네?
목을 매달아야 할까, 아니면 목을 잘라야 할까?
아니면 우리 법을 따를 때까지 고문할까?
독재 정치란 바로 이런 거다.
방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챘나, 너희들?
영화 <디 벨레(Die Welle> 중 프로젝트 마지막 날
공사 중인 건물에 씌운 천막에 올라가 디벨레 로고를 새기지 않나, 공공시설을 디벨레가 장악하여 일반 학생 출입을 금하기도 한다. 그들은 본인의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았고 옳고 그름을 구분할 능력도 없었으며, 자신이 누구인지에 관한 생각도 부족하다. 남과 자신을 구분하고 어떻게 융합할지 대한 메타 인지도 한없이 위태롭다.
첫 수업 시간에 내가 했던 질문 기억하나?
우리한테 아직 독 재청 지가 가능할 것인지?
이게 바로 그거다. 파시즘.
모두 우리 자신이 다를 거라고 착각했지, 다른 이들보다 낫다고.
더 끔찍했던 건, 우리가 생각이 다른 이들을 공동체로부터 배척했다는 사실이다.
우린 그들에게 사처를 줬어.
우리 능력이 어디까지였는지 알고 싶지도 않지만, 너희들에게 사과해야겠다.
우린 너무 심했어. 내가 너무 심했다.
모든 건 여기서 끝이다.
영화 <디 벨레(Die Welle> 중 프로젝트 마지막 날
벵어 선생님이 아닌 라이너가 디벨레에게
벵어는 통제하지 못한다. 파시즘으로 똘똘 뭉친 집단 광기는 한 사람을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의지를 상실시킨다. 집단이 곧 삶이고 집단에 속하지 못한 삶은 가치가 없다.
디벨레는 계속된다. 절대 안 죽어!
영화 <디 벨레(Die Welle> 중 프로젝트 수업, 팀
과연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나?
의문이 든다. 과연 나의 의식은 오염 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고 있을까? 나의 뇌는 감언이설에 흡수되지 않고 여과를 걸쳐 나에게 필요한, 올바른 정보를 흡수할 수 있을까? 아니, '필요한','올바른'의 판단 기준이 애초에 나로 인해 생긴 기준이 맞을까? 생각보다 우리는 '우리'를 지우고 살아간다.
동양권 문화가 보통 그렇듯 집단을 위한 기준과 규율이 많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바르다고 여기고 따라간다. 물론 지금은 조금씩 세대가 바뀌며 변화하고 있지만, 집단 형성 문화는 여전하다. 속한 그룹에 따라 우리의 말과 행동이 조금씩 바뀐다. 소속된 집단에 알맞은 형태로 빚어간다. 원래 세모난 데 꼭짓점이 갈려 사다리꼴이 될 수도 혹은 둥근 원이 되어야 하고, 둥근 원이었던 사람은 각 면이 닳고 닳아 세모가 된다.
제가 카로를 때렸어요.
왜?
저도 모르겠어요, 카로와 싸웠어요. 그거 때문에요.
선생님 때문에 제가 변했어요! 전 카로를 사랑해요, 그런데도 때렸어요.
이 가짜 규율, 다 파쇼 짓거리예요, 중단하셔야 해요. 라이너.
생각해 볼 게.
중단하셔야 한다고요, 당장요!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영화 <디 벨레(Die Welle> 중 벵어와 마코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니, 응? 너희들을 세뇌하려는 거잖아!
디벨레 가 바로 문제라고요!
영화 <디 벨레(Die Welle> 중 마코가 디벨레에게
우리를 집단에 맞게 애버리징을 하면서 보통 본연의 나를 잃게 된다.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성장하는 것이고,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주체성을 잃는 것이다.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기 위해선, 우리는 마모되는 과정에서 나를 지키며 일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춰야 하고 선명한 판단력, 그리고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이는 경험에서 온다.
누구보다 팽팽히 돌아가는 젊은 뇌를 가진 학생 시절의 그들은 영리하다. 습득력이 빠르고 재능이 풍부한 시절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절대적인 경험량과 대처하는 방식 범위가 좁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누구보다 '독재정치'의 위험성에 대해 교육받은 학생들은 결국 파시즘이 주는 단체 세뇌에 빠져들고 심지어 광기에 사로잡힌 학생도 생겼다. 라이너는 통제하지만 이미 시기는 한참 늦었고 그는 결국 체포된다.
교육자가 단 한번 발언으로 인해 자라나는 미래 새싹에 끼칠 수 있다는 영향력을 간과한 채, 라이너 또한 지속된 파시즘이 쌓아 올린 자신의 권위 의식에 빠진다. 정식 교사보다 조건이 열약한 자신의 위치를 충족한다. 라이너처럼 집단과 어울리며 집단에 맞춘 나를 통해 우리는 단체 내 위치를 만들고 권위를 갖는다. 그 위치에서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으며, 입지를 더 빚어 다지면 벵어 선생님과 같은 위치가 될 수도 있다. 예컨대, 관리직이 되어 흔히 간부가 되는 사람을 일컫는다.
간부는 일상생활에서 익히 볼 수 있다. 수평적 구조를 지향하는 회사가 생겨나고 있으나, 수평적 구조 내에 수직적 구조는 엄연히 존재하며 학교 내에서도 직급이 존재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계급은 우리를 나누고, 각 역할에 충실하게 생활하도록 유도한다. 그것이 규율과 연관되어 위반할 시, 그에 맞는 페널티가 부과된다. 당연한 수순이며 규율을 어긴 대가로 벌칙을 받는 것 또한 습관에 배어있다. 이론상 아무 문제 없고 오히려 순조로우며 단체의 목표에 효율적으로 달려갈 수 있다. 물론 한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집단으로부터 '나'를 지킬 수 있는가? 라는 조건부터 시작한다.
과연 우리는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의무교육을 받았다면 우리는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도덕 시간에 배운다.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면 윤리 과목을 들었을 수도 있고, 사회를 살아가며 사회 통념적으로 지켜야 할 선에 대해 배우고 체득한다. 물론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지는 그 사람의 선택에 달렸다만, 우리는 내부를 포함해, 외부로부터 나를 형성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집에서의 나, 학교에서의 나, 회사에서의 나, 친구와 있는 나 등 여러 개의 '나'를 가질 수 있다. 그 모든 '나'가 바로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 각 집단에 맞는 자아로 형성한 우리는 영역마다 상당히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수많은 사회 집단 속에서 우리는 중심을 잡지 않으면 그대로 분산되어 나의 자아는 소멸한다. 인간의 의존적이고 나약한 성향, 그리고 도태되는 지점 등이 모두 만나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부품이 되어 삶을 자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피할 수 없기에 마주해야 하고, 마주하며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단단한 방어막을 구축해야 한다.
또, 방어막을 구축하며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알맞은 방향성을 위한 끝없는 자기 검열과 장거리 달리기에 지치지 않도록 자신을 보듬어주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만큼 할 것도 많고 피곤한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나를 버리는 것과 같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으나, 항시 조심해야 할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어느새 무언가에 젖어 들어갔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이것이다. 잘못됐다는 점조차 알지 못할 때, 그것이 무조건 정답이라 생각할 때, 그것은 독재 정치와 파시즘이 가리키는 사전적 의미가 아닐지라도, 어느 파시즘에 빠진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이것은 헌재 나조차도 오염됐을지 모를 일이다.
끝없이 의심하고 질문하라. 멈추지 않고 끝없이 흘러가는데 벨레(Die Welle, 물결, 파도의 독일어)가 의미를 상실한 것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그것이 인생의 파시스트가 되지 않을 유일한 길이니까.
[이서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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