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네오 케이팝, 애매함은 횡단의 다른 말이라 [음악]

부딪혀 보자, 네오 케이팝
글 입력 2021.05.1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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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케이팝?


 

애플 뮤직에서 자체적으로 큐레이션하여 제공하는 플레이리스트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의 접근과 매끄러운 정보력으로 이목을 사로잡는다. 플랫폼 내에서 유명한 플레이리스트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KPOP의 저변을 보다 확장하려는 접근인 '+82-NEO-POP' 플레이리스트는 주목할 만하다.

 

Neo한 KPOP이란 무엇일까.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이긴 한 것일까? 애플 뮤직에서 선보였던 네오팝 플레이리스트는 그러한 전통적인 개념으로서의 케이팝 개념을 확장해나가는 시도인 동시에 리트머스지처럼 실험을 다양한 곡과 아티스트에 던져보는 작은 실험실이기도 하다.

 

애플 뮤직 큐레이션의 의도에 따르면, 전통 케이팝을 벗어나 힙합, 일렉트로닉, 앰비언트 사운드, R&B의 요소를 담은 새로운 스타일의 케이팝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네오 소울처럼, 네오 케이팝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포착하고자 한 시도의 일종이다. 이는 레트로한 비트와 최첨단을 오가는 사운드로 엮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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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함은 횡단의 다른 말이라


 

포스트 모던의 시대에 뉴미디어를 기반으로 다양하게 스며들어 가기 시작한 케이팝은 2000년대와 2010년대 초반과는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아이돌 중심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경계는 점차 흐려진다. 소비자는 전 세계이다. 규모의 문제나 내적인 특징을 떠나, 현시대의 모든 미디어 연계 상품들은 세계를 상대로 세상에 나온다. 문화산업 전반이 초국가적 유통의 시대를 맞닥뜨린 뒤로부터 고민하고 있는 아젠다가 케이팝에도 여실히 적용되는 것이다.

 

무엇이 케이팝을 정의하는가가 그 질문이다. 어느 국가의 자본이 투자되었는지, 어느 국가 출신의 아티스트인지, 어떤 엔터테인먼트의 구조적 특징의 영향을 받았지 등 굉장히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경계를 구성한다. 그러나 분명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전통적인 개념의 케이팝 역시 존재한다. ’한국곡’이면 모두 케이팝인가라는 질문에는 무엇이 한국곡인지 질문해야 할 테고 이는 굉장히 사회문화적인 다양한 관념들을 수반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복잡하고 중요한 질문들을 생각할 필요도 분명 있다.


전통 케이팝과 네오 케이팝이라는 분류가 존재한다고 전제하자. 그럴 때에 전통 케이팝과 네오 케이팝의 사회문화적 공통적은 ‘케이팝’일 것이지만 둘의 차이는 실험적인 사운드와 장르적인 도전에 있을 것이다. 결국 전통과 네오 사이의 경계조차도 상당히 흐려지는 결과가 발생한다. 전통 케이팝을 아이돌 음악으로 한정하기에는 아이돌 음악 역시도 소위 ‘네오한’ 시도들을 속속들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경계와 분류의 문제가 내포하고 있는 애매한 복잡성들은 역으로 케이팝이라는 장르의 특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애매하고, 뭉쳐져 있는 것, 한 데에 겹쳐져 있기에 풍부한 것으로 불가지한 케이팝의 저변을 인식하는 시도가 오히려 유의미하지 않을까?

 

 

 

부딪혀보자, 네오 케이팝


 

나아가 음악의 본질을 떠올릴 때에,  우리는 감각적인 경험으로 음악을 즐기며, 유형적인 특성은 즐거움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할 때가 더 빈번하지 않은가? 쉬이 말해, 좋아하는 곡과 비슷한 곡을 더 찾아볼 때에나 ‘장르’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운드에서 케이팝 특유의 즐거움을 찾는지 다양한 경계선을 탐색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청취의 경험 그 자체를 통해서 말이다. 따라서 애플뮤직의 플레이리스트로 구성되었던 네오팝의 주제의식을 수용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이 케이팝의 장막이 어디까지인지, 물방울의 표면장력처럼 탄력적으로 응집된 케이팝의 감각들을 직접 탐험해보는 것이다. 감각과 정동에 집중하고자 하는 철학적 사조가 포스트 모던 시대에 가장 뜨겁게 주목 받는 것처럼, 음악의 사조를 분류하는 작업에 있어서도 청취적 경험을 가장 메인으로 두고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특히 ‘신나는’ 노래들이 케이팝의 주를 이룬다는 점을 생각하며 적용할 수도 있겠다. 이는 미국 팝과 어떠한 영향관계를 가지고 케이팝이 자리 잡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다양한 장르적 음악을 흡수하면서도 적정하게 가공의 과정을 거쳐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자리 잡은 것이 케이팝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또한 현시점에서는 ‘틱톡’과 ‘유튜브’와 같은 Z세대가 주역으로 떠오른 플랫폼에서 빠르게 바이럴을 타고 퍼지는 것 또한 핵심적이다. 따라서, 즐겨 듣고 나아가 즐기며 움직이게 하는 노래가 케이팝의 경험적 특징일 수 있다는 생각도 가능하다.


따라서 부러 ‘애매한’ 앨범들을 떠올려보았다. 주류라기엔 신비롭고, 비주류라기엔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장르적인 규범을 자유롭게 오가는 노래들이 담겨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애매하다고 부르는 음악들은 경계를 넘나들며 횡단하고 있는 감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청각적 체험을 통해 질문을 시험해 볼만한 앨범들을 제안해본다. 자, 이제 리드미컬함의 배치로 ‘ ’를 유발하지만 ‘댄스곡’은 아닌 케이팝 앨범들로 실험해보자.

 

 


유라의 GAUSS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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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봄보다 조금 흐리고 뿌얀 봄날이 실로 우리에게 더 익숙하다. 뮤트톤의 색처럼 흐리고도 날카롭게 일상의 순간에 어우러지는 앨범이다. 흐린 봄날의 우리에게 밀착하여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곡이다. 앨범 전반적으로 레이버들의 옷차림이 떠오를 만큼, 차분하고 집요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사운드가 지배적이다.

 

‘미미’라는 곡으로 포문을 여는 이 앨범은 오히려 무감한 투로 가장 슬픈 것들을 이야기한다. 젊은 여성 시인의 시집을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노랫말들은 미끄러지듯 구성된 소리로 설득력을 얻는다. ‘미미’는 ‘미미하게 사라져 미미는 왜 날 떠났어 사랑은 왜 없어져’라는 가사는 곡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기묘한 고조감을 형성한다.

 

아티스트 유라의 신비로운 톤은 가장되거나 과장되지 않은 채로 앨범을 내내 부유한다. 리드미컬한 ‘숨을 참는 괴물’은 무당의 굿판을 떠올리게 하는 일정한 톤과 반복되는 리듬으로 오히려 후련함을 준다. ‘손으로 아 긋기만 해도’는 치기 어린 관능의 감각을 세련된 사운드로 풀어낸다. 얼룩말을 언급하는 가사는 가장과 과장에 대해 오히려 솔직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결국 담담하고 소박한 방식으로 이어지는 자기고백은 베일에 싸인 아름다움과는 정반대의 매력을 보여준다.


 

 

씨피카의 Intelligent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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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피카가 2016년에 냈던 앨범 Intelligentsia은 유라의 가우시안과 같은 맥을 타고 태어났으면서도 정반대의 스펙트럼으로 뻗어져 있다. 보다 더 잘게 쪼개진 사운드 사이에서 씨피카는 대담한 목소리로 온 곡을 누빈다. 담담함을 통해 연출한다기보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악기로 사용하며 종횡무진한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다.

 

바로크적인 미학이 돋보이는 악기로 첫대면하는 ‘After Usa’는 읊조리는 듯한 목소리와 사이버틱한 사운드가 어우러져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기분을 준다. 주술적인 분위기의 사운드를 구성한 ‘My Ego’는 씨피카의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무속적인 이미지가 입자감 있는 사운드 위에 새겨진 곡이다.

 

앨범명과 동명의 곡인 ‘Intelligentsia’는 우주에 신호를 보내는 듯한 비트가 인상적이다. 연극적으로 노래하는 씨피카의 목소리가 매우 매력적인 곡이기도 하다.

 

 

 

림킴의 Generas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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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림에서 림킴으로 돌아와 씬을 말그대로 뒤집어놓은, 림킴의 2019작, Generasian 역시도 네오 케이팝의 핵심적인 정동을 구성한다. 림킴은 정체성 자체를 앨범의 메인 테마로 끌어올려 소위 ‘동양적인’ 사운드를 매 트랙마다 부여한다.

 

그러나 이는 민족주의적인 정서로 ‘한국을 알리기’ 차원에 매몰되어 있는 시도가 아니다. 아티스트 개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횡단의 시도가 가장 핵심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서양의 접목’ 같은 고루한 수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적극적인 횡단과 경계 넘기의 투사로서 림킴이 등장한 것이다.

 

유명한 트랙인 ‘Yellow’과 ‘민족요’ 역시도 찾아볼 수 있는 톡톡 튀는 강렬함은 ‘Digital Khan’에서 가장 정점을 이룬다. 케이팝 매니아들 사이에서 흔히 ‘작두팝’이라고 불리는 무아지경의 느낌과 주술적인 이미지는 그만큼 파워풀한 사운드 위에서 제대로 구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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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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