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Fragile', 연약함을 마주할 때야 비로소 [음악]

글 입력 2021.05.11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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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어쩐지 유독 마무리 짓기까지 오래 걸렸다. 워낙에 끙끙거리며 글을 쓰는 편이기는 하지만, 초안에서 발전이 잘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우선 내게 음악적 지식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 문제였고, 둘째로 이이언과 그의 노래에 대한 팬심이 커서 조심스러웠던 탓도 있다.

 

그렇다고 이 글 하나만을 위해 지금부터 일주일 간 음악적 소양을 길러보자,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은 내 안에 있는 말들을 아주 세심히 다듬고 고르는 일이다. 이이언의 노랫말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길고 구차한 글들은 다 필요없는 노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노래를 그만큼 표현해낼 수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런 약간의 허무함과 죄책감을 앞에 두고도, 이 글을 내보인다.


이이언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듣게 된 곳은 언니의 블로그 bgm 목록이었다. 아마 “서울은 흐림”이었나, “날개”였나 그랬을 것이다. MOT의 1집 앨범 <비선형>의 수록곡이었다. 그의 우울하고 나직한 목소리는 꼭 주문처럼 들렸다. 우린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더 높은 곳으로만 날았다는데,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아리송했다. 내 나이대의 아이들은 들으면 안되는 노래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계속 들었다. 단언컨대 나와 친언니의 성격과 취향에 이이언은 얼마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올해 4월 30일, 9년 만의 솔로 정규 앨범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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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언(eAeon)은 밴드 MOT과 2인조 프로젝트인 나이트오프(Night Off)에서 노래를 하는 싱어송라이터이다. 그는 특유의 미성과 독보적인 사운드 구성 능력, 그리고 섬세한 우울의 정서로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다. 이이언이 9년 만에 들고 온 이번 앨범 은 총 열한 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01. 그러지마 Don’t (feat. RM)

02. 그냥 I Just

03. 바이바이 나의 아이 Bye-Bye

04. Null (feat. Jclef)

05. 많은 밤을 지나 Nights Gone By

06. 어쩌면 Maybe

07. btfl mind

08. 왜일까 I Wonder

09. Mad Tea Party (feat. Swervy)

10. 우리 함께 길을 잃어요 Let’s Get Lost

11. 언제까지나 우린 Evermore

 

 

2집 Fragile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RM이 피쳐링한 타이틀곡 “그러지 마”는 76개국의 아이튠즈 1위, 아이튠즈 월드 차트 1위, 유튜브 500만+뷰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럼에도 이 수적인 반응을 이번 이이언 2집의 ‘결과’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반응들은 말 그대로 반응에 불과하다. 결과라고 명명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이이언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에 있을 것이다.

 

 

나는 여전한 채로 더 자랐습니다. 사람들을 더 이해하게 되었고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들과 계속 만날 수 있었던 건 아마 운이 좋아서였을 겁니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가져다 변하지 않는 연약함에 대한 노래를 지었습니다. 쉽고 간결하게, 때론 이상하고 흥미롭게 들리길 바랍니다.


- 이이언

 

 

Fragile의 앨범 소개 글이다. 그의 신보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퇴근길에 앨범 전체 재생을 했다. 매장을 나서서 지하철을 타고 천천히 걸어 집 문 앞에 다다를 때 쯤, 마지막 곡이 끝났다. 가사를 더 집중하기 위해 이번에는 조용한 방에서 또 한 번 전체 재생을 돌렸다. 또 다시 마지막 곡의 마지막까지 모두 듣고 난 뒤 든 생각은, ‘이이언의 시간도 흘렀구나’ 였다.

 

Fragile은 지난 1집은 물론, 이이언이 "못", "나이트오프"를 통해 발표했던 노래들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우선 가사가 조금 더 쉽게 다가온다. 그 특유의 시적임은 여전하지만 조금 더 직설적이게 되었달까.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가사 뿐 아니라 앨범 전체의 배경이 되었다. 멜로디와 사운드에서도 전과 다른 대중성과 전형성이 느껴진다. 이 부분은 타 매체들과 했던 인터뷰를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이언은 “1집은 치밀하고 정교한 사운드를 만드는 데에 집중한 반면, 2집은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를 중심에 두고 다른 모든 것을 배치했”다고 이야기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강박과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져 만들었”다고도 밝혔다. 확실히 2집의 수록곡을 들을 때는 1집을 들을 때보다 편안한 느낌이 든다. 그가 노래라는 이정표에 이르기까지 거친 과정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전에는 일부러 궂은 길만을 골라 걸으며 그 안에서 발견한 사운드들이 치밀하게 겹쳐 있었다면, 지금은 그 길이 한결 수월해진 것 같다고 해도 될까.

 

하지만 사실 이이언은 2집을 내기 몇 해 전, 시간이 멈춘 시기를 보냈다. 그는 몇 해 전 공황장애를 겪었다. 그리고 그 때 멈춰있던 시간들은 이번 2집에 묵직하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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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공황장애를 겪으면서 우리 영혼의 연약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사랑과 이별과 상처와 교훈 같은 것들을 겪고 통과하면서 어쩔 수 없이 흔들리고 부서지는 마음에 대해서, 그리고 부서진 마음을 다잡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한 것들을 노래로 담았습니다."

 

- <멜론>과의 인터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좋아한다. 내 삶의 태도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겠다. 아주 많은 것들을 관통하는 말이기도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지나치는 모든 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귀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대한 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마무리 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애쓰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금 이 글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이언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노래하는 사람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번 앨범에서 인상깊게 들었던 "btfl mind"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중략)

오 이제부터 우리 함께 길을 떠나요

이제부터 우리 함께 길을 잃어요

(중략)

더 높이 높이 날아

이 끝엔 뭐가 있을까

(중략)

우리는 죽을 수도 있었을 거야

우리는 계속 서로를 지켜줄 거야

우리는 말 대신 노래를 할거야


- “우리 함께 길을 잃어요" 中

 

 

그는 순순히 길을 잃자고 말한다. 길 앞에 무엇이 놓여있을 거라는 단언도, 길을 헤매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찬-어쩌면 오만한-각오도 하지 않는다. 가사는 ‘길을 잃을 것’이라는 사실만을 확신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죽을 수도 있었을 것’, ‘계속 서로를 지켜줄 것’, 그리고 ‘말 대신 노래를 할 거’라는 말은 유독 희망차게 들린다. 희망차다는 말이 모두에게 적확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다만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말은 결국은 죽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다행스러운 사람도, 안타까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가사는 두 갈래로 나뉘는 감상을 동시에 껴안으며 ‘어쨌든’ 지금은 우리가 함께 살아있으며, 계속 서로를 지켜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불확실함과 망설임이 짙게 드리운 노래 속에 서로를 계속 지켜줄 것이라는 말은 유일한 빛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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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혹은 대부분은- 이이언의 노래가 비관과 우울을 담고 있으며, 그도 그러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분명 그의 노래는 우울하게 들린다. 하지만 나는 그가 우울을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나는 이번 2집에서 그의 위로를 분명히 들었다. 그는 인간 영혼이 가질 수밖에 없는 연약함과 우울함을 전면으로 긍정한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위로법이 있는데, 그는 시간이 멈춘 이의 팔을 억지로 잡고 일으켜 나아가자고 하는 대신, 곁에 털썩 주저 앉아 함께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려주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느껴진다. 연약함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내일은 우리 곁에 온다. 그리고 결국엔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이이언은 그것을 누구보다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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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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