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의 책, 자연과 맞닿은 채 바라본다면 - 출판저널 522호

글 입력 2021.04.30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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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주의 관점에서의 책 문화? 어려울 것 같다. 책을 펼치기 전 지레 겁먹었다. 공학과는 거리가 멀고도 먼 인문학과 디자인 계열의 복수 전공을 가진 내가, 감히 이것을 소화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감히 소화해냈다. ‘생태주의’라 함은, 사전적 의미로 ‘인간을 생태계의 일부로 보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 골조로 한다.‘를 뜻한다. 그러므로 이 관점과 책 문화의 관계성을 쉽게 풀이한다면 ‘자연의 특성과 본질을 책 문화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는가’라 표현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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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관계들이다. 식물이 햇빛 없이 살아갈 수 없다거나, 동물이 식물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람이 동식물 없이 생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는 본능적인 관계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무척이나 본능적인 나머지, 우리는 종종 이러한 관계들을 머릿속에서 배제한다.


조금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생태주의적 관점을 우리 가족에 대입해 본다. 나는 무남독녀의 외동딸이며, 길 때부터 유치원에 맡겨졌던 터라 스스로가 매우 독립적인 사람이라 생각해왔다. ‘나는 혼자 컸어!‘라며 당당하게 말하던 시절도 했다. 하지만 그런 오만에서 벗어나, 나의 성장과 현재의 기술엔 두 명의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는 피로를 무릅쓰고 매일 밤마다 동화책을 읽어 주셨고, 엄마는 내가 원하는 모든 종류의 책(만화책은 사 주지 않았다)을 책장 빼곡히 담아두었다. 그들이 나에게 만들어 준 환경과 습관으로 인해, 온갖 영상 콘텐츠와 뉴미디어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상황에서도 꾸준히 독서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인 측면으로 확장했을 때, 생태주의적 관점에서의 책 문화는 독자들, 나아가 대중들의 성장과 깊이를 결정짓는다. 나무가 뿌리를 굳건히 내릴 수 있도록 흙을 다듬어 주는 일이며, 파도가 바위를 거세게 휩쓸 수 있도록 커다란 바람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독자라는 나무를 성장시키는 이들은 출판사, 서점, 인쇄, 비평가 등 독서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들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바람과 비를 내릴 수 있는 이들은 얼마나 균형 잡힌 생태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어느 관점에서도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유일한 ‘책’ 관련 공공기관인 출판진흥원 임원 목록에는 특정 출판이익단체가 과반수를 차지했다. 독서, 서점, 도서관, 인쇄, 출판학 등 독자와 최전선에서 마주하는 이들이 배제된 것이다. 또, 임원 10명 중 여성 임원은 단 2명뿐이다. 이는 문화예술진흥법의 법을 가뿐히 어겼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렸을지도 모르는 독서 생태계의 다양성에 위협을 가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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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세대의 ‘어른들’은 책을 읽으라 종용했다. 요즘의 영상 매체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얕으며, 찰나의 쾌감에 그친다며 활자를 들여다보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책문화의 다양성과 평등, 이에 뒤따를 생태계를 다채로이 가꾸는 일에 열을 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깊이 있는 사유와 인문학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우리는 간단하게 꺼내들 수 있는 모바일 세계에 빠져든다. 이는 단순히 ‘요즘 젊은이’들의 가볍고 선택적인 취향이 아니라, 열려 있는 다양성의 세상에 자연스레 흘러갔을 뿐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작은 바람인 나는 무던히 애를 써본다.  새로 생긴 지역 도서관에 흔적이 드문 책을 기부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쌓인 새 책을 뒤로하고 결제 버튼을 누르기도 한다. 작은 바람이 모여 ‘환경’이 되리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는 것이 나의 위치에서 책 문화를 일으켜 보자는 작은 바람에 기인한다.

 

 

[이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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