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홍크(HONK) - J.DOE [음반]

무겁고 우울한 사랑
글 입력 2021.05.0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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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마주치는 어두움에 조금 놀랄 때가 있다.

 

'땅으로 꺼진다'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낮은 보컬이었다. 이내 목소리의 주인을 찾게 했다. 축축하게 구석으로 파고드는 보컬의 주인은 '홍크(HONK)'였다. 누구보다도 무거운 그의 개성은 수많은 음악 사이에서 독특한 색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홍크는 우울한 정서의 싱어송라이터다. 천천히 읊조리는 보컬, 갈라지는 저음과 공간감 가득한 악기들은 홍크의 장르적 우울함을 구성한다. 영국 음악가들의 우울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음악에도 금세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홍크는 미술을 전공한 음악가다. 그는 앨범아트를 비롯한 비주얼 작업을 직접 제작한다. 덕분에 아트워크와 음악이 함께하는 그의 작품은 완성도가 높다. 그의 낯설고 어두운 일러스트는 인스타그램과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홍크는 꾸준한 활동으로 디스코그래피를 채웠다. EP 1집 'You Drink I Honk'를 포함해 네 장의 EP와 두 장의 싱글을 내고서야 2018년 정규 1집 'monosandalos'를 발매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탄탄한 음악 세계를 구축한 그는 독특한 감성으로 주목받고 있었다.

 

지난 3월, 홍크의 정규 2집인 'J.DOE'가 발매됐다. 정규 1집으로부터 햇수로 3년 만에 나온 앨범이다. 더욱더 무겁고 짙어진 그의 음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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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doe'는 이름 없는 시체를 통칭하는 이름입니다.

 

‘사신사호’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처가 본인을 희생해서 호랑이에게 먹이를 준 내용에서 나온 말인데, 이 이미지가 제 작업에 대한 고민을 설명하는 좋은 그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계속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양한 답변이 존재하겠지만 저는 본인을 납득시킬 수 있는 이유를 명쾌하게 정할 수가 없습니다. 고민에 끝에는 허무만이 남지만, 행위는 반복됩니다. 저는 그 과정을 제가 아는 가장 모호한 단어인 사랑으로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호랑이가 남긴 상처투성이 가죽은 나의 시도의 흔적이자 사랑의 유산입니다. 그 가죽을 덮고 누워있는 이름 없는 시체의 얼굴이 낯설지 않습니다.

 

 

이번 앨범의 제목이자 주제는 '존 도(John Doe)'다. '존 도'는 영미권에서 신원 미상의 남자 변사체를 가리키는 단어다. 마치 한국에서 가상의 이름으로 '아무개'나 '홍길동'으로 사용하는 것과 유사하다. '존 도'는 시체를 발견했을 때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경우 사용된다. 그리고 끝까지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무덤에도 이 이름이 사용된다고 한다.

 

'죽어서 남긴다'라는 일은 가장 중요한 것을 가려내는 행위다. 사람은 이름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누군지 알 수 없어도 이름을 만들어 붙였다. 비단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건물은 흔적과 터를 남긴다. 죽음 앞에서 남기는 과정은 삶의 정체성을 스스로 묻는 일이다.

 

홍크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J.DOE'에 담아냈다. 열세 개의 트랙은 일상 속에서 겪은 일에 대한 감상과 생각의 기록이다. 우울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 축축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단편적으로 엮여있다. 홍크의 생각과 감상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사랑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앨범의 특징은 우울함이다. 그의 우울함은 사운드에서 짙게 드러난다. 앨범은 낮게 깔린 베이스와 재즈기타의 연주를 중심으로 변주된다. 대표적으로, 네 번째 트랙인 'J.Doe'는 짧은 연주곡으로 홍크가 사용하는 문법과 편곡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멜랑콜리한 재즈기타와 낮고 조용히 깔리는 베이스, 희미하게 울리는 신디사이저로 곡을 구성한다.

 

홍크의 가사 또한 우울함을 가득 담아냈다. 그는 노래를 희미하게 읊조리기 때문에 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집중하고 가사를 주목해보자. 시적인 가사에서 홍크가 겪은 상황과 생각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앨범의 가사는 그 자체로 분위기를 담아내면서 깊은 의미를 전달한다.

 

그의 가사는 상황 묘사에서 빛을 발한다. 열 번째 트랙인 '방'에서 '손목을 감추는 시계가 일러준 하루의 두 번째 2시 30분'이라는 가사를 읽어보자. '손목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0분이었다'라는 상황을 풀어 표현했다. 당연하게 존재하던 물체와 현상을 조금씩 다르게 바라본 흔적이다.

 

재미있게도, 그는 자신의 우울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수록곡 '옷장'의 가사 중, "9할이 우울한 인간인게 내 약점이지만"이라는 문장은 그의 성격을 직접 언급한 부분이다.

 

홍크의 음악은 문학과도 이어져 있다. 그는 이전 작품에서 문학의 주제를 차용하곤 했다. 이번 앨범에서도 수호지를 차용한 트랙인 '한지훌률'이 수록되었다. 수호지의 등장인물 '주귀'의 별호인 '한지훌률'은 마른 땅에 올라온 악어라는 뜻이다. 홍크는 악어의 모습을 시적인 가사와 음침한 사운드로 표현했다.

 

*

 

'J. DOE'의 볼륨은 열 세곡으로 꽤 큰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곡은 5분 이내로 짧은 호흡을 유지한다. 또한, 다채로운 편곡은 감상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음침한 단조 위주의 곡들이 이어지다 '손인형', '방' 등의 따뜻한 곡으로 분위기가 전환된다.

 

수록곡들은 개별적인 깊이를 가지고 있다. '죽어서 남기는 행위', '사랑'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앨범은 수록곡들에 각자의 맥락과 상황을 담았다. 홍크는 곡에 담은 경험을 느리고 천천히 서술했다. 그의 감정과 생각은 시적으로 함축되었다.

 

'J.DOE'는 개성 있는 사운드로 앨범 전체를 흐르듯이 감상해도 좋다. 하지만 수록곡을 각각 분리해 해석해도 앨범을 오랫동안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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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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