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흩날리는 나뭇잎이 마냥 재밌을 때도 있잖아요 - 영화 "소울"

어떤 날은 날씨가 좋아서, 어떤 날은 맛있는 피자를 먹어서, 그래서 사는 거면 뭐 어떠한가.
글 입력 2021.04.2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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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 없이 산다고 혼나는 줄 알았다"

 

- 영화 <소울> 네이버 평점 中

 

 

영화 <소울>의 후기 중 가장 웃기고 공감 가는 문장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꿈이 없고, 목적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수도 없이 자책해왔고, 그런 자신에게 동기부여가 될 자기 계발서, 성공한 사람들의 드라마틱한 강연, 역경을 딛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영화나 드라마를 주입하기도 했다.

 

없는 목적을 억지로 만들어 내기 위해, 없는 꿈을 그럴듯하게 만들어 내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있어야 잘 사는 인생이고,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 믿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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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억지로 목적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에게 영화 <소울>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다. 꿈이 있고, 꿈을 향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멋있는 인생이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며 채찍질하는 사회에 그냥 사는 대로 살아지는 게 좀 어떠냐고 말한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나는 뒤통수를 댕~ 맞는 기분과 동시에,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주인공 '조 가드너'가 인생의 전부라고 믿었던 '재즈'는 사실은 그냥 살아가는 일상의 일부였을 뿐, 재즈 이외에도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건 순간순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22'에게 흩날리던 나뭇잎을 건네며 이것이 '불꽃'이라고 얘기하는 장면은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던 우리에게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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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조 가드너'의 영혼, 오른쪽이 '22'의 영혼이다.

 

 

그동안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먼 미래에 나를 돌아봤을 때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었다. 그리고 조 가드너가 22에게 그랬듯, 목적 없이 사는 주변인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며, 내가 남들과 다르게 지금의 유흥을 참으면 미래엔 내가 더 나은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소서를 쓸 땐 난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게 보낸 적이 없으며, 동아리도 취미 생활마저도 내 꿈에 끼워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난 이만큼 내 인생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았다는 걸 증명해야 했다.

 

그리고 그 바탕엔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에 맞추어 열심히 한 우물을 판 사람을 선호하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줏대도 없고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이라 비난하는 사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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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울>을 극장에서 처음 만났을 시점에 나는 휴학을 하고 내 진로를 위해 자기계발에 몰두하기로 결심했었다.

 

휴학하는 동안 최대한 많은 것들을, '내 꿈을 위해'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 영화는 잠시 멈춰서 맑은 하늘을 보며 따스한 햇살과 살랑거리는 바람을 느껴도 좋고, 맛있는 피자를 먹는 것도 좋고,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쌓아도 좋다고, 그것들 또한 나의 꿈만큼이나 '불꽃'이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바다'라고 말해주었다.

 

<소울>은 나에게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고, 사소한 것에 웃고 즐거워하는 여유를 가져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지난날의 내가 너무 안쓰러웠던 것과 동시에 영화가 너무 고마워서, 나는 모든 것을 쏟아붓듯 울었다. (물론 픽사 작품들은 늘 내게 눈물 버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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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물고기가 있었는데, 나이 든 물고기에게 헤엄쳐 가서 물었지.

'바다라고 하는 걸 찾는데요'

'바다?'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어

'여기가 바다야'

젊은 물고기는 말했지

'여기? 이건 그냥 물인데.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

 

- 영화 <소울> 中

 

 

대한민국에서 자란 대부분은 조 가드너가 멋진 공연을 마치고 느끼는 허탈함을 아마 '수능이 끝나고' 느껴봤을 것이다. 제도 교육 12년이 대입에 맞춰져 있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불꽃의 시작점이며, 우리가 열망하는 넓은 바다처럼 큰 세상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열심히 세뇌한다.

 

수능을 앞두고 수능을 먼저 쳐봤던 친오빠한테 '끝나면 후련하겠지?'라는 질문을 던지니 '끝나면 허무할 것'이라고 답했다. 대체 뭔 소리고.. 했는데 정말 탐구영역 2까지 끝나고 답안지와 시험지를 걷어가는 감독관을 보고 있으니 세상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다.

 

학생으로서 이 날을 위해 많은 걸 포기하고 왔는데, 수능이 끝났을 때보다, 그리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보다 길거리에서 정말 사소한 이야기에 친구와 빵 터졌을 때, 학교에서 몰래 떡볶이를 배달시켜 숨어서 먹을 때, 점심 먹고 매점에 갈 때 더 크게, 더 많이 웃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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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는 흩날리는 나뭇잎이 더 재밌을 때가 많았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사소한 것이 큰 기쁨이,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한다.

 

꿈이 없고, 목적이 없으면 뭐 어떠한가. 하루는 날씨가 좋은 날 산책하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살아갈 수도 있다. 별 거 아닌 것 같던 모든 순간들도 다 바닷속을 헤엄치는 것이며, 인생을 밝혀주는 수많은 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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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소울>은 애니메이션에 큰 획을 그었던 픽사 스튜디오의 23번째 영화다. <소울>이 공개되기 전 픽사는 22개의 영화를 제작했었다. 22!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22는 어떠면 '픽사'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장난감의 시점, 물고기의 시점, 인간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감정들의 시점 등 독특한 시각에서 우리의 보편적인 삶의 요소인 만남과 이별, 가족애, 여러 감정들에 관해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던 픽사가 어느 순간 '그래도 예전 <토이스토리>나 <업> 나올 때가 전성기였다' 소리를 들으며 부진한 성과를 내고 있을 때 (그럼에도 충분히 명작들이지만) 픽사 역시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픽사가 <소울>과 함께 재도약을 결심한 것 같다. 굳이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없더라도, 그저 '픽사답게' 이런 것도 해보고 저런 것도 해보면서 뚝딱 뚝딱 영화를 만들어가겠다고 다짐한듯하다.

 

<소울>로 다시 나아갈 픽사를, <소울>을 보고 조 가드너와 22처럼 잘은 모르겠지만 '즐기면서' 살아갈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응원한다!

 

 

★★★★☆

"이제껏 22편을 만든 픽사가 재발견한 일상이라는 불꽃의 바다."

 

- 이동진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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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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