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롤리타'에서 사랑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 [영화]

물리적 폭력보다 무서운 정서적 학대
글 입력 2021.04.2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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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버트는 롤리타를 사랑했는가, 롤리타는 퀼티를 사랑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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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콤플렉스'란 미성숙한 소녀에 대해 정서적 동경이나 성적 집착을 가지는 현상이다. 이는 소아성애자와 같은 맥락으로 꾸준한 이슈가 되고 있으며, 미성년자를 사랑한 성인들은 하나같이 '그것은 사랑이었다'라고 말한다.


롤리타의 원작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라는 책을 보지 않은 나로서는 영화를 보면서 이질감을 느꼈다. 대부분 미성숙한 여아를 성적으로 학대한 소아성애자들은 말로는 '사랑'을 했다고 하면서 실상은 '성적 집착'에 불과한 모습만 보여왔다. 그러나 영화 속의 험버트는 실제 나이 차이가 많은 연인을 대하듯이 롤리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코 험버트가 한 것이 사랑이었다는 것이 아니다. 일부는 이 영화가 '험버트를 세기의 로맨티스트처럼 포장한 것이 아니냐'라고 비판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점이 소아성애자의 '독특한 사랑법'이었다는 말 같지도 않은 논리를 부수고 그들의 실체를 드러낸다.

 

 

 

'그녀'가 나를 먼저 유혹했어


 

극 중 험버트는 어린 나이에 짝사랑하던 소녀를 잃고 내면적으로 아직 그때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년으로 살아간다. 그러던 도중, 샬롯이라는 미망인의 딸 롤리타를 본 순간, 롤리타 곁에 있기 위해 샬롯과 함께 살아야겠다고 결정한다. 따라서 그는 샬롯을 사랑하는 척하면서 모든 시선은 롤리타에게 쏠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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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물을 맞으며 책을 읽는 롤리타, 순수한 웃음으로 자신에게 안겨오는 롤리타, 독서를 하는 험버트의 책에 씹다 만 껌을 붙이며 순진하게 웃는 롤리타. 영화 속에서 이 모든 장면들이 아름답게 표현되어서, 사실 롤리타도 험버트를 '사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험버트'의 시각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에게는 이 모든 것이 어린 소녀의 '유혹'이자 '성적인 시그널'이었다.'

 

 

 

롤리타를 사육하던 새장, 그 밖에는



험버트는 자신의 실체를 알아버린 샬롯을 뒤쫓다가 그녀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것이 험버트에게는 롤리타와의 사랑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의 소멸이었다. 따라서 험버트는 롤리타를 기숙사 학교에서 꺼내 와 자신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영화에서 성적인 장면이 대놓고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롤리타가 바나나를 물고 있거나 그와 키스를 하고, 침대 위 얽힌 몸이 비춰지는 등 그들은 성적인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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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험버트는 점차 자신에게서 벗어나려고 하는 롤리타를 구속한다. 급기야 롤리타의 뺨을 때리는 지경에 이르는데, 이후 롤리타는 험버트에게서 벗어날 궁리를 하다가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험버트는 그녀의 흔적을 찾아 미친 듯이 수소문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롤리타를 발견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롤리타에게서 편지가 온다. 험버트가 마주한 롤리타는 이전과 다르게 조금 성숙해 있었으며, 임신한 상태였다. 그녀는 충격을 받은 험버트에게 자신이 '사랑'한 것은 험버트가 아니라 또 다른 성인 남성 '퀼티'였다고 말한다.


'퀼티'는 그들이 여행하는 동안 롤리타를 탈출시키기 위해 그녀를 미행했다. 그러다가 기회가 되는 순간, 롤리타와 함께 험버트에게서 '탈출'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롤리타의 탈출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 어린 소녀의 생각에서는 모든 경제권을 잃어버리고 유일하게 자신을 먹여 살릴 어른이었던 험버트의 사육장에서 해방된 것이었겠지만, 퀼티에게는 그녀를 소유하게 되는 욕망으로 점철된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험버트는 퀄티를 찾아가 그를 죽인다. 이후 험버트 또한 감옥에서 병에 걸려 죽고, 롤리타도 출산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다.

 

 

 

'그녀'는 소녀다. '성인'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누군가는 롤리타가 '발랑 까진 여자아이'라고 말한다. 롤리타가 험버트의 돈을 보고 '꼬리를 친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험버트의 시선이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우리는 롤리타의 입장에서 영화를 다시 써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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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이 자란 롤리타에게 성인 남성의 존재는 간절했다. 그러한 점에서 험버트의 경제력은 롤리타가 붙잡아야 할 것, 마치 원하지 않아도 아양을 떨어야 할 대상과 같았다. 롤리타는 험버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어린 두뇌로는 그를 만족시켜야 이 모든 것이 유지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퀼티를 '사랑'했다는 말은 무엇인가. 롤리타는 자신에게 없는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결핍과 성인 남성에 대한 사랑을 혼동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주위에는 롤리타를 이성으로 보는 소아성애자 험버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롤리타는 퀼티를 진정으로 사랑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것은 사랑이 아닌 부성애에 대한 갈망에서 오는 집착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없다면 너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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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내내 연인 행세를 하는 험버트를 보면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비록 험버트가 소아성애자라 할지라도, 어쨌든 롤리타를 사랑했는가. 아니다, 그것은 성적 취향이 아닌 어린 소녀에 대한 학대였다. 만약 험버트가, 말도 안 되지만 롤리타를 사랑하기라도 했다면, 그녀가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자신의 세상에서 풀어줬어야 했다. 험버트는 어린 시절 첫사랑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환자였고, 이미 커버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해 로리타를 사랑한다고 믿었던 범죄자일 뿐이다.


사실 그는 롤리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롤리타에게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줄 어른도 없었으므로 유일한 동아줄은 험버트 자신이다. 그래서 비록 성적인 행위는 롤리타의 자발적인 의사로 보이지만 이것은 물리적인 압박보다 무서운 정신적 족쇄였다. '내가 없다면 너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 것이지?' 험버트의 모든 말 뒤에는 이와 같은 압박이 숨어 있었다.

 

 


 

또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만약 험버트가 임신한 롤리타를 성공적으로 자신의 곁에 두었을 때, 여전히 그녀를 사랑할 것인지'이다. 험버트는 첫사랑을 잃은 어린 소년이었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만난 롤리타는 '임신'을 하여 더 이상 그가 사랑하던 소녀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억지로 입을 맞추려고 하지도 않았고 험버트에게 아양을 떨지도 않았다. 그래도 험버트는 롤리타를 사랑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로리타가 아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소녀의 이미지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롤리타가 험버트에게 돈을 달라는 편지를 보낸 것은 그녀가 결코 험버트를 사랑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편지에 답한 험버트도 결국은 자신이 롤리타를 경제적, 정서적으로 옭아맸던 어른이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당연하게 사랑은 없었다


 

영화의 색감은 매혹적이고 험버트 역할을 맡은 배우는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소아성애자와 다르게 신사적이고 잘생겼다. 오히려 이것이 관객들에게 더한 경각심을 심어준다. '소아성애자의 논리란 바로 이런 것이다, 모두가 그럴듯한 논리로 중무장해있지만 결국은 겉모습이 어떻든 범죄자에 불과하다'라는 메세지가 영화를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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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사랑은 없었다. 험버트에게도, 롤리타에게도, 퀼티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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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향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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