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평범한 사람들 속 조금은 특별한 삶을 살아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영화]

글 입력 2021.04.2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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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역전해 늙은 모습으로 시작한 한 사람의 일생을 오랫동안 옆에서 바라보고 그의 마지막을 지켜준 연인 데이지가 시간이 흘러 노인의 모습으로 딸과 함께 기묘한 그의 이야기를 일기를 통해 우리들에게 전해주며 영화는 시작된다. 처음엔 아픈 데이지를 대신해 딸이 그의 일기를 읽어주지만, 점점 이야기에 깊이 들어갈수록 일기장 속 벤자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난 이 영화를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땐 잠깐 보았을 뿐이지만 그가 만난 주변 사람들과의 짧은 이야기를 나지막하게 들려주는 장면들이 너무 인상 깊었다. 자신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느낌, 감정을 독백하면서 중간중간 상대방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와 대사, 그들이 주고받는 진심 어린 눈빛을 보며 나도 점점 그들의 이야기에 깊게 빠져들게 되었고, ‘영화의 첫 부분부터 다시 보자.’라는 생각과 함께 쉽게 접근한 영화였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만남과 선택, 그리고 죽음에 대해 깊이 있게 다뤄지는 이 영화가 조금은 어렵게 다가오기도 했다.
 
 
 
태어난 순간부터 어른의 몸에 갇혀 살게 된 벤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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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의 출생은 그야말로 남달랐다. 분명 아이의 몸을 지녔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백내장으로 앞도 안 보이고 듣지도 못하며 관절염이 아주 심한 상태였기에 죽음을 앞둔 80세 노인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의 친어머니는 벤자민을 낳다 그대로 돌아가셨고 벤자민을 본 아버지는 사랑하는 부인을 잃은 슬픔과 더불어 주름이 가득한 그의 기괴한 모습을 보곤 기겁한 채 달리고 달리다 도착한 집에 아이를 버리고 만다.
 
아이를 발견한 흑인 여성 퀴니만이 벤자민을 보며 “이 아기는 기적이에요. 좀 달라 보일 뿐이죠. 아무리 흉측해도 주님의 자식이랍니다.”라고 유일하게 말해준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함께 살아갈 아이라며 아이 이름을 벤자민이라 지어주고 소개한다.
 
벤자민이 살아가는 곳은 퀴니가 운영하는 양로원이기에 그의 곁엔 늘 죽음을 앞둔 노인 친구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보단 인간의 죽음에 대해 가까이 마주하고 있었기에 삶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여지가 많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할머니 : 참 별일이네, 머리숱이 더 많아졌어.
벤자민 : 사람들이 점점 늙어갈 때 난 점점 젊어진다면요?
할머니 : 그렇담 슬픈 일이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는 걸 봐야 하잖아. 끔찍한 책임이지.
벤자민 : 삶과 죽음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할머니 : 벤저민,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단다. 그러고 나서야 그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지.
어느 가을날 낯익은 손님이 찾아왔다. 내게 피아노와 그리움의 의미를 가르쳐준 분이다. 죽은 사람의 빈자리는 다시 새사람으로 채워졌다.
 
 
이 영화는 위 대사와 같이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 삶과 죽음에 대해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단 굉장히 서정적인 표현으로 섬세하게 보여주기도 했지만, 슬픔을 감정적인 행동으로 보여주기보다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친구와의 작별을 경험하게 된 벤자민은 17년을 함께한 이 집을 떠나 그가 보지 못한 세상에 나아가게 되는 결심을 한다.
 
 
 
그와 짧게나마 함께했던 소중한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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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태어났을 땐 그를 마음으로 품어준 어머니 퀴니와 그녀의 연인 티지, 그리고 나이 많은 노인 친구들이 그의 곁을 함께해주었다. 시간이 지나 17살이 되었을 땐, 언제나 자신감 넘치며 문신 예술가의 꿈을 이룬 선장 마이크와 함께 선원으로서 멀리멀리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보았으며, 그곳에서 한 여성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여성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틸다 스윈튼 배우인데, 그의 곁을 짧게나마 함께했던 인물들 중에서도 그녀와 함께하는 장면에서의 분위기가 가장 인상 깊게끔 아름답게 구현해냈다고 생각한다.
 
 
‘엘리자베스 애벗. 내 눈엔 명화처럼 아름다웠다. 그녀를 통해 첫사랑을 보낸다.’
 
 
그들은 우연히 만난 날을 계기로 밤마다 로비에서 만나 그들만의 시간을 보냈다. 마치 마법과 같은 신비로운 시간들이 밤이 되면 시작되듯 그들이 겪은 세상의 넓은 이야기들을 밤새 얘기하며 함께했다. 그러다 신데렐라가 12시 종이 댕-하고 치면 돌아가야 하듯 동이 트는 대로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항상 그에게 흐트러짐 없이 고고하고 우아한 그녀만의 분위기를 자아냈고, 벤자민에게 있어 그를 처음으로 사랑해 준 여자였다. 그들은 점점 가까워졌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선을 넘으며 매일 밤을 함께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너무나 황홀했던 만큼 이별도 한순간에 찾아왔다. 그녀는 ‘당신을 만나서 좋았어요.’라고 적힌 쪽지와 함께 홀연히 그녀의 인생을 향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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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엘리자베스 또한 벤자민만이 풍기는 분위기와 어딘가 남다른 눈빛에 호기심을 느꼈고 자석에 이끌리듯 그와 함께하게 되었을 것이다. ‘째깍째깍’ 평범하게 돌아가는 시간을 당연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주인공 벤자민만이 홀로 시간을 역전한 채 살아간다. 그래서 모두 그에게 신비로움을 느꼈던 것일까? 조금 남다른 인생을 사는 벤자민이기에 그에겐 다른 이들보다 색다른 만남이 훨씬 많이 이루어지지만, 또한 매번 짧게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수많은 만남과 함께 곧 다가올 이별을 늘 인지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려는 벤자민의 모습을 보면 매번 참 마음이 아프다.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가도 짧게 이어갈 수밖에 없다는 건 결국 죽음에 다가올수록 그의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이도 점차 하나둘씩 사라질 뿐이라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데, 그게 참 속상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만난 건 운명이 아니라 숙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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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이지와의 만남은 그녀가 7살이 되었을 때 이루어진다. 첫 만남부터 그들은 아이와 노인이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기에 사랑이라기보단 마치 운명처럼 서로에게 깊은 호기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들에겐 시작부터 너무나도 다른 서로의 인생이 있었기에 점점 성장하면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때때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순간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때마다 조금씩 서로에 대한 미묘한 감정들이 생겨났지만, 우리의 삶이 한 순간의 기회와 선택으로 결정되듯 그때마다의 아쉬운 타이밍으로 낭만적인 만남을 지속하지는 못한다.
 
그러다 우연의 우연이 만나 벌어지게 되는 일들이 필연이라 하듯 데이지에겐 피치 못할 사고가 일어났고, 발레리나였던 그녀의 인생은 그대로 산산조각 나고 만다. 자신에게 놓인 운명을 견딜 수 없었던 데이지는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모든 것을 거부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이내 그들은 다시 재회하게 되었고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달래주듯 끝없는 깊은 사랑을 서로에게 표현하고 또 표현한다. 매 순간이 새롭고 신비로웠으며 늘 둘이서 행복한 시간을 함께했다.
 
 
데이지 : 내 피부가 늘어져도 사랑해 줄 거야?
벤자민 : 내가 여드름 생겨도 사랑해 줄 거야? 어둠이 무섭다고 울어도?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어. 정말 슬픈 일이지.
데이지 : 영원한 것도 있어.
벤자민 : 잘 자, 데이지.
데이지 : 잘 자, 벤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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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세상에 마치 둘만이 존재하듯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르게 흘러가는 서로의 모습을 은연중에 두려워한다. 그러다 벤자민이 49살, 데이지가 43살이 되었을 때 그들이 거울을 보며 하는 말이 있다. “이제야 만났네. 중간에서 만났어. 이제야 서로 맞는 것 같아.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데이지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이 상황을 함께 둘이서 헤쳐나가보자 하지만 사실 해결책이 없는 문제이기에 벤자민은 행복함과 동시에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그에겐 그들이 전부였기에 ‘선택’을 하는 벤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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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했던 “중간 지점에서 만났네.”라는 장면은 가장 뭉클하면서도 앞으로 그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견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들은 서로를 죽도록 사랑하지만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인생에 있어 짧은 찰나의 순간들이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서로를 같은 나이대의 시각으로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점차 사라질 뿐이기에 이렇게나 다른 그들의 시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딸의 1살 생일날, 누군가 말한다. “순식간에 고등학생이 될 거요. 연애도 하고.”
 
그 말을 들은 벤자민은 이내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음을 느낀다. 사랑하는 데 있어 한쪽은 늙어가고 한 쪽은 어려지고. 그건 극복의 문제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아내에겐 기댈 수 있는 남편이, 아이에겐 든든한 아버지의 모습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그들이 함께하는 미래 속에서 벤자민은 아이와 연령대가 비슷해지는 아버지가 될 뿐이다. 벤자민은 부모로서 그런 모습은 보여줄 순 없다 느꼈을 것이고 그들을 위해 떠나는 선택을 한다. 생전 친아버지가 그에게 남겼던 보트와 단추 공장을 팔아 그녀가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였지만 그렇게 그는 계속 홀로 남겨지게 된다.
 
 
“살아가면서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건 없다. 넌 뭐든지 될 수 있어. 꿈을 이루는 데 제한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살아도 되고 새 삶을 시작해도 돼. 최선과 최악의 선택 중 최선의 선택을 내리길 바란다. 네가 새로운 걸 보고 새로운 걸 느꼈으면 좋겠다. 너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구나. 조금이라도 후회가 생긴다면 용기를 내서 다시 시작하렴.”
 
- 벤자민이 딸에게 남기는 편지
 

 

매번 어려지기에 기억이 흐려지는 와중에도 딸의 생일날마다 편지를 보낸 그의 모습을 통해 그가 딸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순 없어도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의 끝을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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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 예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노인이 된다면 되었다 한들 언제 죽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점점 중학생에서 초등학생을 거쳐  갓난아이가 되어 간다면, ‘내가 이제 곧 죽을 때가 다가오는구나.’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은 몰라도 자신의 마지막인 죽음에 대해 짐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오히려 거꾸로 가기에 항상 죽음과 가까워지는 자신의 시간에 대해 벤자민은 더 많이 생각하고 살아오게 됐을 텐데 그게 만약 나라면 점점 젊어지는 나 자신이 더 두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어느 날 데이지는 벤자민의 소식을 듣게 된다. 아동복지과에서 그를 돌보고 있음을 알았고, 데이지는 자신이 누군인지, 걷는 법조차도 잊은 채  아이가 되어가는 벤자민을 돌봐주었고,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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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봄. 아기가 된 그가 쳐다봤다. 날 알아본다는 걸 알겠더구나. 그러곤 눈을 감았어. 마치 잠들 듯이."
 

 

결국 아이의 몸으로 마지막을 맞이한 벤자민을 보았을 땐 ‘그를 기억해 줄 수 있는, 그의 곁에 머물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데이지뿐이었구나.’ 라는 생각에 슬펐다. 그는 참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떠나보낸 외로운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마지막을 데이지가 지켜줄 수 있어서 한 편으론 다행이라 생각한다.

 

데이지가 그의 인생을 마지막까지 품어주었다.

 

 

 

누군가는 어떤 인생을 살았다.



 

누군가는 강가에 앉으려고 태어나고 누군가는 벼락을 맞고 누군가는 음악에 조예가 깊고 누군가는 예술가이고 누군가는 수영하고 누군가는 단추를 만들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누군가는 그냥 엄마다. 그리고 누군가는 춤을 춘다.

 

 

노래와 함께 그가 읽어 내려가는 대사와 다시 거꾸로 움직이는 시계의 모습은 왠지 모를 쓸쓸함을 자아내며 여운을 남긴다.

 

그의 시작은 아기의 형태를 지닌 노인의 모습이었으며 그의 마지막은 나이를 먹은 갓난아기의 모습이었다. 인생의 끝에선 결국 아이나 노인이나 같다 생각한다. 노인이 되면 될수록 아기와 같이 떼를 쓰기도 하고, 외로움을 참지 못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그대로를 쏘아댄다. 그렇게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 하지만 슬프게도 똑같다 한들 아기는 이빨이 빠져도 어떤 모습이든 사랑스럽지만 노인의 모습은 그저 슬프다.

 

그렇기에 노인의 모습을 했던 벤자민도 처음엔 안타깝지만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를 만났기에 버려지게 되었다.

 

 

 

 

지금껏 그가 살아오면서 결정한 선택들은 결국 다 옳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다 언제나 사랑했던 그녀, 데이지를 향했고 그녀를 위한 선택을 했다. 나라도 내가 아버지가 된 이상, 아이에게 점점 생각도 몸도 마음도 어려지는 자신을 결코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끝없이 내 존재에 대해 되묻는 나로 인해 짐을 안겨주고 싶지는 않다. 그렇기에 참 쓸쓸하고 외로웠을 벤자민이 덤덤한 모습으로 체념하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씁쓸했다.

 

이 영화는 벤자민이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를 만든 눈먼 시계공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가 만든 시계가 다시 째깍째깍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끝이 난다.

 

데이지라는 우리와 똑같이 평범한 존재가 조금은 아이러니한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함께하는 이야기를 나타낸 이 영화는 그저 벤자민을 통해서만 그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다면 조금 뻔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데이지가 바라보는 시선과 그의 딸이 일기를 읽으며 그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설정이 조금 더 새로움을 더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조민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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